41.가만히 들여다보는 경전-약속하다(2)

밀교신문   
입력 : 2019-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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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의 약속이 가져오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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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긴 이야기를 들려드려야겠습니다.
 
부처님 살아 계시던 시절, 사밧티(사위성) 시에서 서로 다른 신앙을 품고 살아가던 두 친구 시리굿타와 가라하딘나 이야기입니다.
 
시리굿타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따르는 사람이고 가라하딘나는 자이나교 신자입니다. 자이나교는 철저한 불살생, 비폭력, 무소유를 주장하면서 고행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얼핏 보아서는 불교와 비슷한 것처럼 보이지만, 인간의 자유의지를 존중하고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길을 설파하는 불교와는 커다란 차이가 있는 종교입니다.
 
진리의 길은 하나요, 그 길에 어긋나는 주장과 신조들을 불교에서는 외도라고 부릅니다.
 
가라하딘나가 믿고 섬기는 자이나교 측에서는 이런 불교가 못마땅했고, 그래서 늘 견제했습니다. 무엇보다도 부처님과 그 제자들을 존경하고 공양 올리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자 불안해지기까지 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저 고타마 붓다라는 이와 그를 따르는 수행자들을 사람들에게서 멀어지게 할 수 있을지 그 방법을 고민했지요.
 
도시의 재력가인 가라하딘나가 자신들을 믿고 섬기는 것도 흡족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의 친구이자 도시의 또 다른 재력가인 시리굿타가 저 석가모니의 신자였기 때문입니다.
 
외도의 스승들은 걸핏하면 가라하딘나에게 불평을 늘어놓았습니다.
 
“아니, 왜 당신의 친구인 시리굿타를 설득하지 않는 것이오? 왜 그 친구는 우리가 아닌 저 고타마를 믿고 따르는 것이오? 왜 그 시리굿타가 고타마와 그 추종자들에게 공양물을 올리는 걸 그냥 내버려두는 것이오?”
 
스승들의 불평을 견디다 못해 가라하딘나는 친구를 찾아가서 물었지요.
 
“대체 그대가 고타마에게 공양을 올려서 얻는 이익이 무엇인가? 그래서 뭐 좋은 일이라도 생겼는가? 차라리 내가 섬기는 스승님들을 극진히 모시고 공양 올리는 게 더 나을 것 같은데…”
 
사실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틈만 나면 자신을 찾아와서 신앙을 바꾸라고 졸라대는 친구 가라하딘나가 이제는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한 시리굿타. 그는 되물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대의 스승은 대체 무엇을 알고 보는 사람들이오? 얼마나 지혜로운 사람들인지 그대는 내게 설명할 수 있겠소?”
 
마침내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일까요? 친구 시리굿타의 질문에 가라하딘나는 자기가 섬기는 스승들의 지혜로운 경지를 자랑스럽게 들려줍니다.
 
“오오, 정말 중요한 걸 물었구려. 벗이여! 그렇소. 내가 섬기는 스승님들은 참으로 지혜로운 분들이오. 그들은 모르는 것이 없는 분들이라서 과거와 현재, 미래의 모든 일을 아는 것은 물론이요, 몸과 입과 뜻으로 짓는 모든 업에 대해서도 환하오. 그리고 ‘장차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다, 그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라는 것까지도 훤히 꿰뚫어 아는 분들이오.”
 
시리굿타가 말했습니다.
 
“그렇게 훌륭하신 스승들이었는데 내가 몰라보았구려. 그토록 지혜로운 분들에게 내가 어떻게 공양 올리지 않을 수 있겠소?”
 
그러면서 다음 날 식사에 초대하겠노라며 그 외도 스승들에게 전해달라고 친구에게 부탁했습니다. 가라하딘나는 한걸음에 자신의 스승들에게 달려가서 이 기쁜 소식을 전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외도의 스승들 한 무리가 약속대로 시리굿타의 집을 찾았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구경하러 모여들었습니다. 시리굿타가 마침내 자신의 스승인 고타마 붓다를 저버리고 외도라고 여겼던 이들을 스승으로 모시고 극진한 공양을 올린다는 소문이 퍼졌기 때문입니다. 외도 스승들은 몰려든 사람들을 보자 더 흐뭇했습니다. 이로써 자신들의 위상이 한껏 높아지고 붓다는 추락했음을 증명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시리굿타의 집에 들어선 그들의 눈앞에는 산해진미가 푸짐하게 놓여 있었습니다. 하지만 집주인의 안내를 받으며 자리를 잡고 앉는 순간, 그들의 발밑이 푹 꺼지고 구덩이 속으로 빠지고 말았습니다. 눈앞의 음식에 정신이 팔려 발밑에 시리굿타가 파놓은 함정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지요.
 
시리굿타는 친구 가라하딘나에게 말했습니다.
 
“과거, 현재,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훤히 꿰뚫고 있다는 그대 스승들의 모습을 보시오. 당장 몇 초 뒤에 자기 발밑에서 벌어질 일도 알지 못해 이런 꼴을 당하지 않았소!”
 
온 도시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된 가라하딘나와 그 스승들은 그대로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어떻게든 복수를 해야 했습니다. 자신이 당한 것과 똑같은, 아니, 그보다 더 치욕스럽고 치명적인 복수를 하기로 마음먹습니다.
 
역시나 가라하딘나가 친구 시리굿타를 찾아와서 지난 번 친구와 나눈 대화를 되풀이했습니다. 시리굿타는 기쁘게 대답했습니다.
 
“내 스승이신 부처님은 아주 뛰어난 지혜를 지닌 분이오.”
 
“그토록 훌륭한 지혜를 가진 분을 내가 여태 모르고 있었다니 미안할 따름이오. 그 분에게는 언제나 5백 명의 제자들이 따르고 있다는데, 내일 아침에 부처님과 5백 명의 스님들을 우리 집에서 공양올리고 싶은데 나대신 약속을 받아주지 않으려오?”
시리굿타는 부처님을 찾아가 친구의 공양청을 전했습니다. 부처님은 가만히 미래의 일을 관찰했습니다. 그리고 내일 아침 자신과 제자들이 가라하딘나의 집 안으로 발을 내딛는 순간 어마어마하게 큰 구덩이에 시뻘건 숯불이 가득 담긴 함정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음을 알아차립니다.
 
지혜롭다면 이 공양을 약속해서는 안 됩니다. 그건 엄청난 몰락을 예고하기 때문입니다. 부처님 자신에게 죽음이 기다리고 있고, 불교 승가의 위상은 순식간에 땅에 떨어질 뿐만 아니라 부처님을 죽음으로 내몬 가라하딘나는 세세생생 씻을 수 없는 죄악의 과보에 시달리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부처님은 그 뒷일까지 관찰했습니다. 부처님은 숯구덩이로 발을 내디딜 것입니다. 공양을 약속했다면 물러설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보았습니다. 자신이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아름다운 연꽃이 피어나 자신을 받칠 것이며, 이 엄청난 계략을 꾸민 가라하딘나는 이것을 계기로 오히려 커다란 믿음을 일으키고, 성자의 첫 번째 단계에 들어설 것임을 말입니다. 비록 가라하딘나에게 소름 끼칠 정도의 살의가 있다 하더라도 이렇게라도 해서 부처님과 인연을 맺게 된다면, 이 약속은 받아들일 가치가 있다는 판단을 내립니다.
 
부처님은 이 모든 일을 지혜로 관찰한 뒤에 시리굿타가 전한 공양청을 받아들입니다. 그 뒷이야기는 짐작하는 그대로입니다. 부처님이 미리 내다보신 그 일이 그대로 펼쳐졌지요. 시뻘건 숯구덩이의 참사를 기다렸던 가라하딘나의 눈앞에 아름다운 연꽃이 피어올라 부처님을 받들었고, 아예 음식준비를 하나도 해놓지 않아 텅 비어 있던 그릇들에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고 정갈한 음식들이 가득 담기는 기적을 보게 되었습니다.
 
가라하딘나는 눈을 떴습니다. 그동안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했습니다. 이런 기적들을 제 눈으로 보고서야 비로소 부처님과 진리에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세상에는 이것만이 지혜요, 진리요, 깨달음이라고 외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1초 뒤 자신의 발 아래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는 이는 몇이나 될까요? 어쩌면 그걸 내다보는 능력을 갖고 있는 이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눈앞의 산해진미에 정신이 팔려 그런 지혜를 발휘하지 못하는 이들은 더 많습니다. 그런 지혜는 진짜 지혜라 부를 수 없겠지요.
 
가라하딘나가 제 눈으로 확인한 기적은 숯불구덩이가 아름다운 연꽃 밭으로 변한 것 이상입니다.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믿어왔던 것들을 반성하게 됐습니다. 믿는 게 다가 아닙니다. 믿어서 내가 달라져야 합니다. 부처님은 이런 믿음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러려면 ‘그냥 믿어온 것’들을 새로운 눈으로 봐야 합니다. 그래야 진짜 눈을 뜨게 되겠지요.
 
부처님이 침묵으로 받아들인 아침공양의 약속, 그 끝에는 눈이 있어도 정말 봐야 할 것을 보지 못한 한 사람의 개안(開眼)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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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마옥경

 

이미령/불교방송 FM 진행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