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가만히 들여다보는 경전-절교하다

밀교신문   
입력 : 2019-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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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가 친구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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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는 말했습니다.
 
“벗이 멀리에서 나를 찾아오니 이 또한 즐겁지 않은가!”
 
이미 세상의 달달한 유혹과 쾌락에 흔들리지 않는 군자에게도 벗이란 존재가 안겨주는 행복은 포기할 수 없는 즐거움입니다. 벗을 뜻하는 한자어 우(友)는 손을 뜻하는 우(又)자와 우(又)자가 합해진 말이라고 하지요. 마음이 잘 맞는 사람과 손을 맞잡는 기쁨이 느껴집니다. 사는 동안 이런 벗을 만나지 못한다면 그 인생이 얼마나 삭막하고 각박하겠습니까.
 
그렇다면 벗이란, 내 인생에서 기쁨의 원천이요, 보람을 느끼게 해주는 존재라 해도 과언이 아닐 텐데, 뜻밖에 우리는 벗에 대해서 그리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는 내 친구야!”라는 말을 자주 하기도 하고 듣기도 했지만, 새삼 어떤 존재를 친구라고 불러야 하는지를 단 한 번이라도 진지하게 생각해봤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고대 로마의 현자이자 정치가인 키케로는 “자기가 얼마나 많은 염소와 양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어도, 자기가 얼마나 많은 친구를 갖고 있는지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라며 안타까워합니다. 가축이 많으면 부자이듯, 친구가 많은 사람도 인생 잘 살았다 할 수 있겠으나, 이 사람 저 사람 모두 다 좋다고 벗으로 사귀는 건 조심해야 한다며 키케로는 이렇게 덧붙입니다.
 
“가축 떼를 마련할 때는 조심하면서도 친구를 고를 때에는 왜 조심하지 않는가. 우정은 선한 사람들 사이에서만 가능하다.”
 
친구를 사귀는데 왜 이리 ‘선한 사람’을 강조하는 걸까요? 예로부터 성현들은 편하고 마음이 맞고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서 ‘친구’가 아니라, 나를 조금 더 나은 사람으로, 조금 더 반듯하고 착한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이를 진짜 친구로 여겼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멀리서 나를 찾아온 벗이 있다면 그게 바로 즐거움이 아니겠느냐고 말한 공자도 ‘논어’「계씨편」에서, 친구에도 내게 이로움을 안겨주는 벗과 손해를 끼치는 벗의 두 종류가 있다고 말합니다. 내게 이로움을 안겨주는 벗에 세 종류가 있으니, 곧은 사람(直), 미더운 사람(諒), 많이 공부한 사람(多聞)이요, 내게 손해를 끼치는 벗에 세 종류가 있으니, 겉치레에만 밝아서 곧지 못한 사람(便辟), 아첨하고 기쁘게 하는 데만 밝아서 미덥지 못한 사람(善柔), 말만 번지르르하고 보고 들은 것이 없는 사람(便佞)이라는 것입니다. 
 
어찌 사람을 내게 이롭거나 해로운 기준으로 나누느냐고 눈살을 찌푸릴 수도 있겠지만,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을 그다지 좋지 않게 여기는 불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초기경전인 ‘디가 니까야’에 들어 있는 「싱갈라경」에는 적어도 친구에 관해서는 잘 살피라고 조언하기 때문입니다. 친구인 척 하지만 친구가 아닌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경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네 종류 사람은 친구가 아니면서도 친구인 척하는 사람이니, 첫째는 무엇이든 가져가기만 하는 사람이요, 둘째는 말만 앞세우는 사람이요, 셋째는 듣기 좋은 말만 하는 사람이요, 넷째는 나쁜 짓을 할 때 동료가 되어주는 사람이다.
 
이 가운데 첫째, 무엇이든 가져가기만 하는 사람이란, 무엇이든 가져가기만 하고, 적은 것으로 많은 것을 원하고, 두려움 때문에 일을 하고, 이익을 챙기려고 봉사하는 사람이다.
 
둘째, 말만 앞세우는 사람이란, 과거의 일로 친절하게 대하고, 미래의 일로 친절하게 대하고, 무익한 말로 호의를 얻으려고 하고, 현재 해야 할 일에 난색을 보이는 사람이다.
 
셋째, 듣기 좋은 말만 하는 사람이란, 악한 일에는 동의하고, 선한 일에는 동의하지 않고, 눈앞에서 칭찬하고, 등 뒤에서 비난하는 사람이다.
 
넷째, 나쁜 짓할 때 동료가 되어주는 사람이란, 게으르게 만드는 술에 취할 때 동료가 되어주고, 때 아닌 때 돌아다닐 때 친구가 되어 주고, 구경거리를 찾아다닐 때 친구가 되어 주고, 게으르게 만드는 도박에 빠질 때 친구가 되어주는 사람이다.”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 뒤에 “이들은 친구가 될 수 없음을 알아야 하니, 슬기로운 사람은 험한 길을 피하듯, 이런 사람을 멀리 피해야 한다”고 당부합니다.
 
부처님이 들려주는 네 종류 사람은 언뜻 봐도 내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임은 분명합니다. 첫 번째인 ‘무엇이든 가져가기만 하는 사람’의 경우, 친구라며 다가와서 자기 이익만을 챙기는 사람을 뜻하지요. 늘 뭔가 가져갈 것이 없는지 살피고, 그냥 가져가기가 눈치 보이면 사소한 걸 생색내며 주고는 더 큰 걸 챙겨가는 사람입니다. 또한 세력 있는 친구에게 잘못 대하면 자신에게 불이익이 올까 두려워서 노예라도 되는 양 굴지만 진정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를 대하지 않습니다. 오직 자기 이익만을 노리고 친구에게 봉사하는 척 하는 사람이니, 이런 사람은 내게서 더 이상 챙겨갈 것이 없으면 나를 헌신짝 버리듯 버릴 것이 분명합니다.
 
두 번째인 ‘말만 앞세우는 사람’의 경우는 더 흥미롭습니다. 내 사정이 딱해서 찾아갔는데 그는 평소에는 나를 친구라 여기며 대했지만, 딱한 사정의 나를 보면 말을 싹 바꾸는 것입니다. “저런, 이 사람아! 어제 오지 그랬어. 어제는 내 사정이 괜찮았거든.”이라고 말하거나, “안타깝군 그래! 지금은 내 형편이 너무 좋지 않아서 말이지. 내일 오는 게 어떤가?”라고 말하여, 다음날 가면 또 내일로 미루거나,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무익한 말을 건네며 자신에게 이런저런 사정이 생겼다고 변명을 늘여놓으면서 외면하는 사람입니다. 필요할 때 따뜻한 말 한 마디, 그리고 넉넉하지 않더라도 마음을 담아서 정말 필요한 것을 건네주지 못하는 사람은 평소에는 친구인 척 굴지만 진짜 친구는 아니라고 알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세 번째인 ‘듣기 좋은 말만 하는 사람’이란, 살생과 같은 악업 짓는 일에는 동의하고, 보시와 같은 선업에는 동의하지 않으며, 내가 있을 때는 좋은 말만 하지만 내가 없을 때는 나를 험담하는 사람입니다. 나로 하여금 선업을 짓게 하기는커녕 악업으로 이끄는 데다 험담까지 늘여놓는 두 얼굴을 가진 사람은 피해야한다고 경에서는 말합니다.
 
네 번째인 ‘나쁜 짓할 때 동료가 되어주는 사람’에 대해서는 네 가지 경우로 나눠서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으니 굳이 더 말씀드릴 것이 없습니다. 술친구, 노름 친구, 하릴 없이 방랑할 때의 친구, 구경거리에 정신 팔릴 때의 친구는 마음이 잘 맞는 친구 같지만 역시 진실한 친구라 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전재성 역, ‘디가 니까야’ 참고)
 
이 경을 읽을 때마다 눈에 들어오는 구절은 ‘친구인 척 하지만 친구가 아닌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나에게 대놓고 거칠게 굴거나 나를 보란 듯이 무시하거나 하면 처음부터 그 사람을 조심하면 됩니다. 하지만 정말 우리 마음을 다치게 하는 사람은 친구인 것처럼 살갑게 굴지만 속마음은 전혀 그렇지 않은 경우입니다. 그래서 친구라며 다가올 때
 
무조건 두 팔을 벌려 환영하기 보다는 그 사람이 어떤 성품을 지녔는지를 잘 살펴야 한다는 말이 되겠습니다. ‘숫타니파타’에서는 이렇게 정리합니다.
 
“확고하고 선한 삶을 사는 지혜로운 친구를 얻을 수 있다면, 모든 위험을 극복하고 기쁘게 깨어 있는 마음으로 그와 함께 가라. 만일 확고하고 선한 삶을 사는 지혜로운 친구를 얻지 못한다면 정복한 왕국을 버리는 왕처럼 코뿔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우리는 참으로 친구를 얻은 행운을 기린다. 자기보다 낫거나 동등한 친구와 사귀어야 한다. 그런 친구를 만나지 못하면 허물없이 살며, 코뿔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일아 옮김, ‘숫타니파타’에서)
 
하루 종일 스마트폰으로 신호가 옵니다. 페친이니 트친이니 카톡 친구들이 보내는 메시지입니다. 우리에게는 이렇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친구가 있지만 과연 그들이 나를 조금 더 나은 사람으로 이끌어주는 이들일지 아니면 그저 친구 숫자만 불려주는 존재일지도 생각해봐야겠습니다. 어떤 이가 내 인생에 진정 이로운지를 잘 헤아리는 사람이어야 남에게도 진짜 벗이 되어줄 수 있기 때문이지요. 친구가 없다고 외로워하지 말고, 진짜 친구를 만날 때까지 외뿔 달린 코뿔소처럼 혼자 가는 배짱도 필요한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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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마옥경

 

이미령/불교방송 FM 진행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