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가만히 들여다보는 경전-비워내다(3)

밀교신문   
입력 : 2019-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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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속 잡동사니 44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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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춘다(Mahā Cunda)라 불리는 스님이 있습니다. 지혜가 으뜸가는 사리불 스님의 속가 동생입니다. 한 사람의 수행자로서 갖춰야 할 것은 다 갖췄지만 이 스님은 언제나 배우려는 자세를 지녔고, 자신에게 가르침을 안겨주는 스승에게 한없이 커다란 흠모를 품었습니다. 그래서 구족계를 받아 정식 스님이 되었어도 스스로를 ‘사미’라 불렀습니다.
 
어느 날 조용한 곳에서 홀로 명상에 들어 있던 춘다 스님이 명상에서 일어나 부처님을 뵈러 갔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여쭙습니다.
 
“세존이시여, 이 세상에는 온갖 견해들이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막 참선을 시작하는 수행자에게서 이런 세상의 견해들이 비워질 수 있겠습니까?”
춘다 스님의 이 물음으로 짐작해보면, 아마도 조용한 나무 그늘 아래에서 선정에 들려고 했지만 이 스님 머릿속에는 바깥에서 들려온 온갖 주의주장들, 그에 따른 사념들이 가득 차 있었던 건 아닌가 싶습니다. 번뇌를 가라앉히려고 참선 자세를 취했지만 고요와 집중의 선정은커녕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게 이리저리 생각에 끌려 다니던 자신을
 
발견하고서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부처님을 찾아뵌 것은 아닌가 짐작합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참선은 지금 여기에서 행복하게 머무는 것을 말한다. 참선으로 온갖 잡념들이 없어지는 건 아니다.”
 
초기경전인 '맛지마 니까야'에 들어 있는 「버리고 없애는 삶의 경(Sallekha Sutta)」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부처님은 이어서 지금 여기에서 행복하게 머무는 참선의 8단계를 일러주십니다. 그런데 8단계 선정은 번뇌를 없애는 단계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행복하게 머무는 경지라고 말씀하실 뿐입니다.
참 흥미롭습니다. 그동안은 번뇌가 많으면, 이런저런 생각으로 마음속이 편치 않을 때면 참선을 해야 하나…라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라는 것이지요. 참선을 제대로 하고 싶으면 그런 복잡하고 건전하지 못한 상태에서 멀리 떠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것이 선정의 첫 번째 단계에서 밝히고 있는 ‘멀리 떠남에서 생기는 기쁨과 희열’입니다.
 
그렇다면, 앞서 춘다 스님이 궁금했던 온갖 잡념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부처님은 우리가 뭉뚱그려서 말하는 ‘잡념’, ‘번뇌’를 하나하나 밝히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부처님이 일러주는 번뇌가 무려 44가지나 됩니다. 어쩌면 이보다 더 많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말하는 108번뇌도 있지 않던가요? 이제 44가지나 되는 번뇌를 하나씩 살펴보기로 하지요.
 
첫째는 잔인함입니다. 둘째는 살생, 셋째는 주지 않는 것을 빼앗음, 넷째는 삿된 음욕, 다섯째는 거짓말, 여섯째는 이간질, 일곱째는 거친 말, 여덟째는 꾸밈말입니다. 아홉째는 탐욕, 열째는 성냄입니다. 그리고 열한째는 그릇된 견해입니다.
 
이 열 한 가지는 누구든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몸으로 짓는 악업 세 가지와 입으로 짓는 네 가지 악업, 그리고 나머지 세 가지는 뜻으로 짓는 악업니다. 그런데 열한째 항목을 보면, 어리석음이라 해야 할 텐데 ‘그릇된 견해’라고 하고 있습니다. 바보처럼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방향으로 생각하고 고집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초기경전에서는 이 탐진치를 없앤, 뜻으로 짓는 세 가지 선업을 탐욕이 없음, 성냄이 없음, 바른 견해(正見)라 규정합니다. 그러니까 몸과 입과 뜻으로 짓는 열 가지 불선업(不善業, 惡業)이 44가지 번뇌의 처음을 장식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어서, 열두째는 그릇된 생각, 열셋째는 그릇된 말, 열넷째는 그릇된 행위, 열다섯째는 그릇된 생계, 열여섯째는 그릇된 정진, 열일곱째는 그릇된 기억(念), 열여덟째는 그릇된 집중(定)입니다. 이 일곱 가지에 앞의 열한째 번뇌인 그릇된 견해를 더해보십시오. 이 여덟 가지에 상대가 되는 것이 팔정도(八正道)입니다. 그렇다면 열한째부터 열여덟째까지는 팔사도(八邪道)라 해야 할까요?
 
뒤이어 열아홉째는 그릇된 지혜, 스무째는 그릇된 해탈입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팔정도만을 알고 있지만 아라한이라는, 최고의 성자 자리에 오르는 이들은 여기에 두 가지를 더해서 열 가지 바른 길(十正道)를 이룬다고 합니다. 그 두 가지가 바른 지혜와 바른 해탈입니다. 이 두 가지에 상대가 되는 것이니 그릇된 지혜와 그릇된 해탈이 팔정도 뒷부분에 자리하게 된 것이지요.
 
부처님께서 이렇게 44가지나 되는 번뇌를 하나씩 말씀하시지만, 이 구성과 차례도 잘 살펴보면 언제나 제자들에게 당부하셨던 내용들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어서 다음 번뇌도 살펴보겠습니다.
 
스물두째는 해태와 혼침, 스물셋째는 들뜸, 스물넷째는 의심입니다. 이 세 가지에 앞에서 등장한 탐욕과 성냄을 더하면 ‘다섯 가지 장애(五障碍)’ 또는 ‘다섯 가지 덮개(五蓋)’라는 다섯 가지 번뇌가 됩니다. 중생의 마음을 푹 덮고 있는 무거운 덮개를 말합니다. 이 덮개만 없애버리면 마음이 맑고 밝고 가벼워져서 지혜를 향할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음을 푹 덮어서 세상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만드는 이 다섯 가지 번뇌를 아주 잘 설명하는 비유가 있습니다. 가장 먼저 탐욕은 온갖 색색깔 염료가 진하게 섞인 물이 담긴 그릇과 같다고 말했습니다. 성냄은 물이 부글부글 끓어서 거품이 마구 일어나는 물그릇과 같고, 해태와 혼침은 이끼나 수초가 잔뜩 낀 물그릇과 같고, 들뜸은 바람에 물결이 쉴 사이 없이 일렁이는 물그릇과 같으며 의심은 혼탁한 흙탕물이 담긴 물그릇과 같습니다.
 
이런 물그릇에는 아무리 자기 얼굴이나 사물을 비춰보려고 해도 볼 수가 없습니다. 마음이 이와 같다면 어떤 일을 당했을 때나, 명확하고 정확하게 판단해야 할 때 우리는 합리적이고 상식적이며 이로운 판단을 내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이 다섯 가지 덮개를 없애야 한다고 초기경전에서는 강조합니다. 그때 비로소 참선의 첫 번째 경지로 들어가며 선정을 제대로 닦아야 마음이 지혜로 향하기 때문이지요.
 
부처님은 우리가 비워야 할 번뇌를 이어서 계속 말씀하십니다.
 
스물넷째는 악의, 스물다섯째는 원한, 스물여섯째는 저주, 스물일곱째는 횡포, 스물여덟째는 질투, 스물아홉째는 인색, 서른째는 거짓, 서른한째는 기만, 서른두째는 고집, 서른셋째는 자만입니다. 서른넷째는 충고하기 어려움, 서른다섯째는 나쁜 벗, 서른여섯째는 게으름, 서른일곱째는 불신, 서른여덟째는 부끄러워하지 않음(無慚, 스스로 돌이켜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것), 서른아홉째는 창피하게 여기지 않음(無愧, 남을 대할 때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것), 마흔째는 적게 배움, 마흔한째는 게으름, 마흔두째는 마음을 챙기지 못함, 마흔셋째는 지혜 없음, 마지막 마흔넷째는 자기 견해를 굳게 지켜 놓아버리지 못함입니다.
 
이 44가지 잡념은 그냥 없어지지는 않습니다. 부처님은 이런 잡념들을 ‘버리고 없애라’, ‘마음을 잘 기울여라’, ‘피해라’, ‘이 번뇌를 없애도 좀 더 나은 존재가 되어라’, ‘이 번뇌를 완전히 없애고 벗어나라’라는 다섯 단계를 반복해서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렇게 권하시지요.
 
“여기 한가한 곳이 있다. 나무 아래 깊은 그늘이 있다. 이곳에 앉아서 선정을 닦아라. 게으름을 피워 나중에 후회하지 말아라.”
 
속가의 삶은 집안을 가득 채운 물건들을 비워내서 홀가분하고 자유로움을 만끽하며 살면 됩니다. 하지만 물질만 비워내면 소용없습니다. 우리는 또 무엇인가를 들이고 채우려 하니까요. 그러니 집안의 잡동사니를 비웠다면 이제 마음을 살펴봐야합니다. 꽉꽉 채워진 마음속 잡념들을 하나씩 찾고 불러내서 그것들을 비워내야 합니다. 이걸 비우지 않는다면 우리는 또다시 잡동사니의 수렁에 휘말릴 것입니다. 마음속 번뇌 때문에 그토록 물건들을 들이고 또 들였기 때문이지요. 집안의 텅 빈 공간에서 아늑함과 자유로움을 만끽했다면, 진짜로 비워내야 할 마음의 잡동사니, 44가지 번뇌를 털어내야겠습니다. 마음의 자유를 얻어야 진짜 자유일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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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마옥경

 

이미령/불교방송 FM 진행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