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가만히 들여다보는 경전-비워내다(1)

밀교신문   
입력 : 2019-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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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의 전 재산은 두 날개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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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편하고 아늑한 곳은 집입니다. 내 사랑하는 가족이 있고, 내가 아끼는 물건들이 있고, 추억이 있는 곳. 그곳에 들어가면 더 이상 바깥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내가 가장 편안한 자세와 차림새로 내 맘대로 행동해도 좋습니다. 힘들고 지치면 우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집에 가고 싶어!”
 
집이란 말을 떠올리면 아늑한 보금자리가 연상됩니다.
 
그러나 막상 집에서 생활하다 보면 곳곳에 온갖 잡동사니들이 보이지요. 딱히 내버리기도 애매하고 처분하자니 귀찮은 물건들. 아무리 치워도 돌아서면 다시 어질러져서 결국은 치우기를 포기하고 그냥 살아가게 되는데요, 온갖 잡다한 것들이 마구 뒤섞여 있는 것을 잡동사니라고 부릅니다. 잡동사니라는 말은 뜻밖에도 조선 후기 학자 안정복의 책 이름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중국과 우리나라의 서적에서 온갖 중요한 사항들을 특별한 체계 없이 모은 이 책은 실제로 읽어본 사람들도 항목이 난잡하고 내용 구분도 혼동스럽다고 하는데, 이 책 이름이 바로 <잡동산이(雜同散異)>! 이 ‘잡동산이’가 지금의 ‘잡동사니’가 되었다는 것이지요.
 
온갖 사항들이 한 권의 책에 뒤섞여 있다면 그것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우리 삶의 터전이 잡동사니로 들어차서 숨 쉴 공간도 없습니다.
 
사실 집이란 게 이런 저런 물건들로 빼곡하게 들어차 있게 마련이고, 모든 물건마다 가족들의 손길과 숨결이 담겨 있다고 생각하면 아주 사소한 물건 하나도 함부로 대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과 달리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 정겹던 물건들이 어느 사이 우리 마음을 짓누르는 거대한 바위가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직장도 숨 막히고,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하는 일상도 짜증나고, 집마저도 힘겨워질 때 우리는 탈출을 감행합니다. 어디로 떠날까? 이런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은 날개를 단 듯 가벼워집니다. 꼭 필요한 물건들만 심사숙고해서 챙겨 넣은 캐리어를 끌고 여행지에 도착해서 호텔에 들어갈 때를 상상해보시지요. 문을 달칵 열고 들어가면 그 정갈한 방 안 풍경에 “우와~!”하고 감탄사를 터뜨립니다. 호텔방에는 무엇이 있던가요?
 
침대 하나, 아무 것도 올려있지 않은 화장대나 탁자. 역시 아무 것도 걸쳐져 있지 않은 의자가 전부입니다. 욕실도 같습니다. 물기 하나 없이 깨끗하게 청소되어 있는 욕실에는 꼭 필요한 목욕용품과 깨끗한 수건 두어 장이 가지런하게 놓여 있을 뿐입니다. 역시 딱히 필요하지 않은 물건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정말 꼭 필요한 것들만 나를 기다리고 있는 그 공간에서 더할 수 없는 아늑함을 느낍니다. 그게 참 묘합니다.
 
아무 것도 없는데, 왜 그런 곳에서 우리는 편안해지는 것일까요?
 
어쩌면 이 편안함은 우리는 평소 무엇인가가 있다, 있어도 너무 있다, 뒤죽박죽 얽혀진 채로 있다는 상황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스트레스를 받고 지내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 아닐까요? 가져야 기분 좋고, 늘어놓아야 행복해보이지만, 결국 그것들이 나를 힘들게 한다는 말이지요.
 
여행을 다녀오면 집안 정리를 하려고 팔을 걷어 부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그 정갈한 숙소에서 지내면서, 그리고 여행을 다녀보니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품목들이 이렇게 많지 않음을 체험한 여파입니다.
 
“자, 정리 좀 하자.”
 
우리는 이렇게 외치면서 집안 구석구석을 둘러봅니다. 하지만 ‘뭔가’가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서랍을 열었다가 도로 닫습니다.
 
“나중에 하지 뭐.”
 
그렇게 ‘나중’ ‘나중’을 중얼거리다가 1년, 2년, 3년…을 보내고, 결국은 대체 이게 언제 우리 집에 들어왔는지, 언제 마지막으로 쓰고 그냥 버려두었는지도 전혀 기억이 나지 않은 지경에 이릅니다. 물건을 정리하겠다던 그 ‘나중’은 과연 언제일까요?
 
한편, 정리한다면서 필요하지 않은 것을 과감히 버리는 사람을 보면 걱정스럽기도 합니다. 저렇게 아까워할 줄도 모르고…. 놔두면 언젠가는 쓸 데가 있는데…. 사준 사람 정성도 생각해야지….
 
이런 안타까움도 일리는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온갖 이유를 갖다 붙이면서 집안을 꽉꽉 채우고 있는 물건들을 정리하지도, 버리지도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합리화하려고 합니다. 생각해보시죠. 물건이 무어 그리 대단한가요? 쓰이기 위해 우리 곁에 있는 것인데, 지금 그 물건이 쓰이고 있나요?
 
게다가 지금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나중에’ ‘언젠가는’ ‘옛날에’라며 지나가버린 과거와 오지 않은 미래를 붙잡고 있다는 모습도 좀 우습기까지 합니다. 그러느라 지금 현재 그 사람의 삶은 잡동사니 소굴인데 말이지요.
 
한때 이삿짐센터에서 일을 한 브룩스 팔머가 쓴 책 <잡동사니로부터의 자유>에서는 우리가 얼마나 잡동사니, 아니 쓰레기 더미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그는 우리의 집을 채우고 있는 물건의 70% 이상 즉 3분의 2는 틀림없이 한 번도 쓰이지 않았거나 한 번도 쓸 데가 없는 쓰레기에 지나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지요. 무엇이 들어 있는지도 모른 채 평생 그 사람을 따라 다니던 짐 보따리들! 언제나 더 큰 집, 더 큰 공간을 원하던 마음은 따지고 보면 쓰지도 않을 이런 쓰레기들을 쌓아둘 공간이 필요해서 그랬던 것이고, 이런 쓰레기공간을 위해 은행대출까지 받고 있는 것이 현대인이라고 그는 말합니다.
 
우리가 잡동사니에 파묻혀 지내는 현실을 따끔하게 지적한 캐런 킹스턴의 <아무 것도 못 버리는 사람>이란 책에는 잡동사니가 우리에게 미치는 부정적인 힘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있는데, 몇 가지만 추리면 이렇습니다. ①피로와 무기력을 가져온다. ②과거에 집착하게 한다. ③몸을 무겁게 하고, 몸무게를 불린다. ④혼란을 부른다. ⑤모든 것을 미루게 한다. ⑥주변 사람과 불협화음을 일으키게 한다. ⑦인생을 정지시킨다. ⑧우울증을 동반한다. ⑨잡동사니가 많으면 짐도 많아진다. ⑩감성을 둔하게 하고 인생을 따분하게 만든다. ⑪노동력을 요구한다. ⑫허둥대게 만들고 중요한 일을 놓치게 한다. ⑬건강에 해가 되며 화재 위험을 부른다. ⑭불운의 상징이 된다. ⑮돈을 낭비하게 한다.
아무 것도 아닌 저 물건들이 알게 모르게 우리의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위협하고 내 아늑한 보금자리를 따분하고 우울한 공간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면, 이젠 행동을 해야 하겠지요.
 
물건 값 싼 맛에 하나 살 것을 몇 개씩 사게 되고, 총알보다 더 빠른 배송은 한밤중과 새벽에도 우리의 소비욕구를 자극합니다. 어느 사이 가격표를 떼지도 않고 장롱 어딘가에 쑤셔 박혀 버린 물건들, 그게 있는 줄도 모르고 또 같은 것을 사들이는 사람들.
 
“이런 소소한 소비에서 스트레스를 풀어! 난 소소하지만 확실한 이런 작은 행복을 누릴 자격과 권리가 있어!”
 
사람들은 이렇게 외치지만 결국 산더미처럼 쌓인 물건더미에 치여 또 다른 억압을 느끼며 허덕입니다. 다행스럽게도 이런 악순환에 지친 사람들이 안착하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적게 작게 지니고, 가진 것을 충분히 쓰고 흡족하게 살아간다는 삶의 방식인 미니멀리즘입니다. 미니멀리즘은 그저 관념상으로, 생각만으로 적은 것에 만족하는 게 아닙니다. 실제로 안방의 옷장과 이불장을 열고, 신발장을 열고, 부엌 씽크대 서랍을 열어서 그 속에 쌓아둔 물건들을 치워버리면서 ‘빈 공간’을 만들고, 그 과정을 통해 자신을 사로잡았던 물욕을 확인하며 반성하는 것입니다.
 

초기경전을 읽다보면 참 많이 만나는 구절이 있습니다.
“옷은 몸을 보호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식사는 배를 유지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어디를 가든지 입고 있는 옷과 발우 하나만을 가지고 간다. 마치 두 날개를 가진 새가 어디로 날든지 날개만을 유일한 짐으로 지니고 하늘을 날아가듯이! 이렇게 수행자는 입고 있는 옷 한 벌과 하나의 발우만을 지니며 어디로 가든지 이것들만 가지고 간다. 수행자는 이렇게 만족하며 산다.”
지금 사람들이 미니멀리즘을 표방하며 집안을 채우고 있는 물건들을 비우는 모습에는 바로 이와 같이 무소유와 소욕지족을 그토록 강조하던 부처님 가르침이 배어 있습니다. 비우고 또 비우니 마음이 푸근해진다는 체험담도 넘치도록 쏟아지고 있는 지경에 이르렀지요. 그런데 정작 사람들이 비운 것은 물건, 잡동사니가 아니었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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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마옥경

 

이미령/불교방송 FM 진행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