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가만히 들여다보는 경전-배려하다(2)

밀교신문   
입력 : 2019-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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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을 배려하는 부처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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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세게 일었던 불만과 비난의 소리가 한순간에 잦아들었고, 이때를 기해 부처님은 쏘나단다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자, 바라문 쏘나단다여, 앞서 두 가지 조건 가운데 한 가지를 제외하고 남은 한 가지만 갖추어도 그 사람은 바라문이라 불릴 자격이 있겠습니까?”
쏘나단다가 대답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고타마시여, 지혜는 계행을 갖추어야 하고, 계행은 지혜를 갖추어야 합니다. 이 두 가지는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것입니다.”

 

쏘나단다의 이 대답은 부처님이 바라던 것이었습니다.

 

부처님도 언제나 제자들에게 진짜 올바른 수행자가 되려면 계를 갖추어야 하고, 지혜를 얻어야 한다고 강조하기 때문이지요. 즉 부처님은 언제 어느 때나 누구에게나 강조합니다. 제대로 인생을 사려면, 제대로 수행을 하려면, 세상에서 가장 높고 귀한 사람이 되려면 계와 선정과 지혜를 차례로 닦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쏘나단다는 어느 사이 이와 같은 부처님 수행체계를 인정하게 된 셈입니다. 부처님은 논쟁이 이렇게까지 흘러간 것을 알아차리고 다시 그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자, 바라문이여, 대답해 주십시오. 그대가 말하는 계행은 무엇이고 지혜는 무엇입니까?”
쏘나단다는 솔직하게 대답합니다.

 

“저는 더는 알지 못합니다. 존자 고타마께서 제게 가르쳐 주십시오.”

 

부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이제 귀 기울여서 잘 들으십시오. 내가 그대에게 말하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부처님의 법문이 시작됩니다. 바로 저 유명한 계-정-혜-해탈-해탈지견의수행체계가 펼쳐지는 것입니다. 이 다섯 단계의 내용이 궁금하신 분은 <디가 니까야>를 펼쳐보시기 바랍니다. 그 속에 담긴 30여 개 경전 대부분이 이 다섯 단계를 아주 자세하게 들려주고 있으니까요. 역시 지금 이 내용이 담긴 <쏘나단다 경(Soṇadaṇḍa sutta)>도 <디가 니까야>에 들어 있습니다.

 

자, 이렇게 해서 부처님의 법문을 들은 쏘나단다는 합장하고 부처님에게 신자가 되겠다며 귀의합니다. 이쯤 되면 이렇게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부처님 승! 쏘나단다 패!라고 말이지요.

 

지난 호에 말씀드린 내용을 다시 음미해볼까요?

 

쏘나단다는 자기 마을 숲에 와서 머무는 부처님을 ‘손님을 맞이하는 주인’ 입장으로 나아가서 맞이하려 합니다. 하지만 부처님 앞으로 나아가는 그의 마음에는 이미 승부욕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뭔가 토론을 벌여서 그를 뒤따르는 대중들 마음속에 ‘그래도 역시 쏘나단다 바라문이 최고’라는 칭송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이미 쏘나단다의 마음은 부처님에게 어느 정도 기울어져 있었습니다. 자신의 입장을 이해해주었으면 하는 바람, 그래서 자신의 체면이 깎이지 않게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그것을 입증합니다.

 

부처님은 어땠나요?

 

그런 논쟁자의 입장을 처음부터 받아들였습니다. 부처님은 쏘나단다와 싸워서 이길 생각이 없었습니다. 이기고 지는 것이 부처님에게 뭐 그리 중요하겠습니까? 그저 상대의 마음속에 오래전부터 자리한 생각들을 함께 이야기 나누어서 그로 하여금 무엇이 옳은 길인지를 스스로 판단하게 인도하고, 그가 그 길을 잘 걸어가면 그만인 것이지요.
이런 부처님의 자세에 안도한 쏘나단다는 자기편인 대중의 원성과 비난마저 잠재우고 부처님에게 법문을 청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공양청까지도 올리고 부처님의 승낙을 받아냅니다.

 

이튿날 아침, 부처님과 수많은 제자들이 쏘나단다의 집에서 공양을 드셨습니다. 도시 최고의 부자요, 지체 높은 바라문이 정성스레 부처님을 대접했다는 소문은 도시 전체에 쫙 퍼졌을 것입니다. 어쩌면 그 도시의 모든 사람들의 관심은 이제 덕망 높고 지체 높은 쏘나단다가 얼마나 더 부처님에게 굽신거릴 것이냐에 쏠렸을 것입니다. 그 모습을 상상하며 어쩌면 대중은 벌써부터 고소해 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런 대중의 마음을 의식한 쏘나단다의 마음은 불편했습니다. 결국 그는 부처님에게 이런 양해의 말씀을 드립니다.

 

“부처님, 제가 여러 사람들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 부처님을 뵙고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드린다면 사람들은 저를 업신여길 것입니다. 그러면 제 명예는 무너질 것이요, 그리되면 제 재산도 흩어질 것입니다. 우리 바라문들의 재산은 명예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제가 사람들 사이에 있다가 합장을 하면, 제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절을 올리는 것이라 여겨 주시기 바랍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제가 터번을 벗으면 부처님께 머리 숙여 절을 올리는 것이라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수레를 타고 가다가 몰이막대를 높이 들어 올리면 그것만으로도 제가 수레에서 내려 절을 올린 것이라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수레에 앉은 채로 제가 양산을 내리면 그 역시 제가 수레에서 내려 머리 숙여 절을 올린 것이라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쏘나단다의 꼼수가 고단수입니다. 끝까지 자신의 입장을 내세우며 부처님에게 양해를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부처님은 그 조차도 기분 좋게 받아들입니다. “부처님은 기꺼이 받아주신 뒤 쏘나단다에게 법문을 들려주시고 그를 기쁘게 하신 뒤에 떠나가셨다”고 경에서는 말합니다.

 

이 경을 읽을 때마다 부처님에게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첫째, 부처님은 대화와 토론과 논쟁의 달인이라는 생각에 감탄합니다.

 

논쟁이란 승부를 가리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기고 지는 것을 가르는 것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논쟁에서 패한 자는 자신이 지금까지 믿고 설파해왔던 모든 주의주장을 거둬야 합니다. 사람들의 정신과 마음을 지배하고 커다란 영향을 미쳐왔던 지금까지의 자기 삶을 포기해야 할 뿐만 아니라, ‘저렇게 논쟁에서 패하는 별 볼 일 없는 사람이었어?’라는 대중의 실망과 조롱도 감수해야 합니다. 사상가나 종교인에게 있어 대중의 이런 반응은 거의 사형선고와도 같습니다. 그래서 다른 종교인, 다른 사상가와 논쟁이 벌어지면 거의 죽기 살기로 맞서야 하고 이겨야 합니다.

 

그런데 <디가 니까야>에서 만나는 부처님에게서는 이런 치열한 승부욕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토론 상대를 적으로 만들어서 내 편, 네 편으로 나누려는 분쟁의 심리도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상대방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어 반가워하는 느낌마저 엿보입니다. 상대방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상대방이 원하는 방식을 수용하는 아량도 보입니다.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이 없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어서 저 사람을 굴복시켜서 무릎을 꿇리고 내 편을 만들겠다’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절대로 펼쳐질 수 없는 광경입니다.

 

상대방의 입장을 존중해서 그의 마음에 다가가기. 그리고 그 스스로가 자신의 잘못을 알아차리고 바른 길로 들어서도록 하면 그만인 것입니다.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이 이보다 더 두터울 수가 없습니다. 배려라는 말, 상대방을 나의 짝(配)으로 여기는(慮) 마음이지요. 논쟁에 나서는 부처님의 가장 큰 무기는 이처럼 배려가 아닐까 합니다. 상대방이 그걸 느끼는 순간 이미 상대는 적이 아니라 벗이 되기 때문입니다.

 

둘째, 세속의 체면마저도 존중해주는 부처님의 배려심에 감탄하게 됩니다.

 

부와 명예와 권력에는 초연한 출세간과 달리 세간은 위신과 권력이 큰 힘을 갖습니다. 특히 책임 있는 자리에 앉은 사람에게는 낯이 깎이지 않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쏘나단다는 솔직하게 자신의 처지를 말씀드렸고, 부처님은 그의 입장을 백퍼센트 공감 하고 배려했습니다.

 

세상을 꺾고 항복시키려는 전투의지를 불태우기 보다는 상대방 입장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으로 알뜰하게 보살핀 부처님, 어느 누군들 그분에게 마음을 활짝 열지 않겠습니까. 분명 부처님 눈에 비치는 세상의 모든 중생은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중한 벗이고, 그 모두가 절실하게 수행으로 나아가려는 도반이었을 것입니다. 그가 진정으로 행복해지고 그가 진정으로 아름답게 완성되면 그뿐입니다. 내 권속으로 만들어 내 앞에 무릎 꿇을 일은 전혀 없습니다. 이것이 세상의 중생을 바라보는 부처님 마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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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마옥경

 

이미령/불교방송 FM 진행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