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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태 양부대법의 전개에 대하여

정유제 기자   
입력 : 2003-12-16  | 수정 : 2003-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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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치온/ 회당학회 홍보이사-진각종 종학연구실 상임연구원 대일경이 성립된 이후 금강정경 성립 중국에는 동시대에 전해져 함께 학습 '금강정경'과 '대일경'이 인도에서 성립할 때는 전혀 다르게 성립됐다. '대일경'이 먼저 성립되고 이어서 '금강정경'이 성립된 것이다. '금강정경'이 성립된 이후에 금강정경계의 밀교가 계속 전개되어 '대일경'의 유행 시기는 비교적 짧았다. 그러나 이들이 중국에 전해진 것은 거의 동시대였다. 또한 같은 장소에서 유포됐으므로 그 당시의 분위기는 양부대경을 함께 학습하는 분위기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사실 양부대경을 함께 학습하는 모습은 선무외나 금강지, 일행과 불공 등에서 매우 짙게 나타난다. 특히 불공에 와서는 '대일경'과 '금강정경'을 이원론적으로 파악하고 양부대경이라는 양계구도가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그 예로 불공이 번역한 만다라의궤에 보면 태장과 금강계를 양부구도로 들고 태장은 이(理), 금강은 지(智)로 나누어 이와 지가 둘이 아님의 관계에 있음을 설하며 좌우의 양손과 다섯 손가락에 이지와 오불의 오지를 대비시키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중국에서는 '금강정경' 이후의 인도경전이 적극적으로 수용되지 않은 관계로 오히려 '대일경'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인도에서는 없었던 양부대경이라는 개념이 등장하게 됐다. 이러한 상황은 만물을 이치로 보는 중국의 고대사상이나 불교에서 이와 지 또는 이사 등이라고 하는 이원론적 견해가 '대일경'과 '금강정경'에 적용되어 나타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비밀만다라부법전'에 의하면 불공은 양부대법은 불법을 호지하고 국가를 옹호하며 유정을 이익케하는 것으로 일존의 불보살이나 일부의 전적조차도 얻기 힘든 것이어서 양부를 전부 습득한 자는 인도 전역에서도 찾아보기 드문 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와 같이 중국밀교는 선무외에 의한 '대일경'과 금강지에 의한 '금강장략출경'의 번역과 함께 금태를 함께 학습하는 시기를 거쳐 일행에 의한 '대일경주소'의 작성, 불공에 의한 다수의 경전과 의궤의 번역이 성행한 수법의 시대에 금태사상의 이원론적 전개가 가능했으며 이후에 혜과, 의진, 법전 등에 의해 금태의 수법정비로 펼쳐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법문사 지하궁전의 발굴과 함께 지하궁전의 편성이나 공양물의 배치, 장식을 비롯한 모든 것이 금강과 태장 양부를 결합한 것으로 밝혀짐에 따라 지하궁전의 만다라세계를 조직하고 계획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고승 지혜륜에 주목하게 되는 것이다. 지혜륜은 당나라 말기 의종 대부터 희종 때까지 활약한 밀교승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앞으로 그의 밝혀지지 않은 행적과 사상은 양부의 전승과 함께 연구의 과제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