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기고/ 마음에 연등을 밝히고

김용태   
입력 : 2003-05-27  | 수정 : 2003-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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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둘째 주 자성일 날, 그 날도 우리 식구는 어김없이 자성일 불사를 위해 심인당을 찾았다. 2층 심인당에 들어서자 뭔지 모르는 가득함이 느껴졌다. 그것은 다름 아닌 천장에 매달려 있는 수많은 연등 때문이었다. 해인만다라(본존)를 중심으로 소박한 작은 등과 큰 등, 순백색의 등이 어울려 있으며 그 뒤로는 팔각등이 심인당 전체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 장관을 대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빈 마음에 충만함이 파도처럼 밀려 왔다. 나를 포함한 신교도 모두가 2시간의 불사를 봉행하는 동안 이전과는 사뭇 다른 어떤 마음으로 흔들림 없이 불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법문 때 스승님은 "여러 보살님들과 함께 등을 제작하는데 고행이 있었지만 힘들게 만든 연등을 걸고 나니 내 마음 가운데 가득함을 느낄 수 있고 비록 부처님오신날을 봉축하기 위한 연등이라 후에 없어지지만 그러나 우리네들은 항상 마음에 등을 켜고 살아가야 한다"고 하시면서 스승님의 소원이 내년에는 천등(千燈)을 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나는 이따금씩 천장을 바라보고 염송을 하면서 부처님의 그윽함과 잔잔함을 체득하였다. 비록 작은 등에 켜질 부모님과 가족의 이름표가 매달린 연등이 빨리 보고 싶어졌다. 심인당을 나오자 내 눈과 가슴에는 온통 연등들로 가득 차 있었다. 청명한 봄의 하늘이 가깝게 다가왔다. 불교경전 중 '현우경'에 적혀 있는 '빈녀 난타'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부처님이 영취산에 계실 때의 일로 밤이 깊어 다른 등들은 다 꺼졌으나 난타라는 가난한 여인이 지극한 정성과 발원으로 밝힌 등불만이 밤이 깊어도 끝까지 밝게 빛나고 있었고, 이것을 본 부처님께서 '이 여인은 등불공양의 공덕으로 성불할 것이며 수미등광여래라 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이 이야기에서 느끼듯이 비록 가난한 여인의 등불이지만 '정성을 다한 공들인 불사가 진정 아름다운 성불'이라는 것을 우리 인간들에게 제시해 주고 있다. 나도 이와 같은 마음으로 등을 달고자 한다. 연등의 유래를 잠깐 살펴보면 '고려사' 공민왕 13년 조에 '우리나라 풍속에 4월 8일이 석가모니 탄신일이므로 집집마다 연등을 다는데 이 날이 되기 수십일 전부터 여러 아이들이 종이를 잘라 등대에 작대기를 매달아 기를 만들고 두루 장안의 거리를 누비면서 쌀이나 돈을 요구하며 그 비용을 삼으니 이를 호기(呼旗)라고 한다'고 했으며 이 풍속은 조선조에도 널리 유행했다고 한다. 부처님의 말씀에 이런 글귀가 있다. '하늘 위 하늘 아래 모든 생명 존귀하다. 세계의 고통받는 중생들을 내 마땅히 편안케 하리라'(天上天下 唯我獨尊 三界皆苦 我當安之) 부처님오신날을 맞이하여 심인당 신교도들은 부처님의 탄생을 경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참나'를 찾겠다는 초발심을 내고 부처님의 가지원력과 회당 대종사님의 무진서원을 굳게 세워 실천하도록 해야 하겠다. 중생의 병의 종류에 맞춰 약을 주셨던 부처님과 같이 우리 신교도들은 이 시대에 사는 인간들의 고통에 맞게 처방을 해 주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작금의 우리 사회가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 이면에는 빈부격차와 정신적 혼돈 등으로 아직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들은 진정으로 '나'를 아는 마음의 등을 밝혀야 하겠다. 선륜심인당 신교도·심인고등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