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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스승, 다시 만나다"

편집부   
입력 : 2013-06-05  | 수정 : 2013-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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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성 스님 탄생149주년 심포지엄

"용성 스님의 개혁운동은 승단정화운동과 계법중흥운동, 불교의례개혁운동, 선농불교운동이었다."

팔리문헌연구소장 겸 동국대학교 겸임교수 마성 스님은 "불교는 개혁의 대상이 아니다. 새로워질 것도 고칠 것도 없기 때문이다. 붓다의 가르침에는 잘못이 없으며 바꾸어야할 것도 없다. 다만 개혁해야할 것은 교단을 중심으로 하는 시대적이고 지역적인 불교현상이다"고 한 말(김영태 '불교혁신론서설'과 김경집 '한국근대불교사')을 인용해 용성 스님의 불교개혁운동을 네 가지로 대별했다.

용성 스님 탄생 149주년을 맞아 6월 4일 오후 2시 천도교 중앙대교당에서 '시대의 스승, 용성조사를 만나다'라는 주제로 열린 심포지엄에서 마성 스님은 '용성진종의 불교개혁운동'이라는 발표문을 통해 "용성 스님이 대각사상을 실현하기 위해 제시한 3대 교화지침은 불교의 생활화, 대중화, 지성화"였다면서 "이는 지금도 유효하며 모든 불교도들이 반드시 실천해야 할 사항"이라고 강조했다.

마성 스님은 이어 각종 자료를 인용하며 용성 스님은 당시 만연했던 대처식육 등으로 승단이 황폐화되어 가는 것에 비분강개하며 조선불교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으며(송현주 '근대한국불교 개혁운동에서 의례의 문제'), 건백서(建白書) 등을 통해 계맥을 지키기 위해 애쓴 율사로 '조선불교중흥율' 제6조로 추앙 받고 있다고 회고했다. 또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불교의례를 개혁하고 한글화와 찬불가 제작 및 보급 등에 앞장선 선구자이며 대각교를 통해 한국불교의 전통계승과 청정지계 생활을 바탕으로 자급자족하는 선농불교를 실현해 이상적 승단을 구현하고자 했던 인물이 용성 스님이었다고 덧붙였다.

마성 스님은 끝으로 "용성 스님의 일생은 조국과 불교를 되살리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그는 자신의 모든 역량을 조국의 독립과 조선불교의 중흥을 위해 바쳤다. 일제강점기 옥고를 치르면서도 조국의 독립과 피폐해진 조선불교를 바로 세우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시대의 스승이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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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불교대학 김재영 교수는 '용성선사의 불교대중화운동'이라는 발표를 하면서 △만인의 각인화-깨달음에 대한 이념의 선명화 △붓다 석가모니가 법신의 모호성을 탈각하고 역사적 실체로서 추구될 것 △관념불교의 구습을 발본하고 현장불교, 현장의 불교학으로 돌아가야 할 것 등 용성사상의 현대적 계승을 위한 과제를 제시했다.

동학민족통일회 공동의장 겸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임형진 교수는 '불교의 사회화-용성, 시대의 아픔을 함께 하다'는 주제의 발제에서 "용성 스님은 상구보리의 기간이 끝나자 바로 하화중생의 길로 들어섰다. 그래서 불교개혁을 주장하며 민족운동과 3·1운동에의 참여 등은 이를 위한 노력이었다"면서 "변호사를 대지 말 것과 사식을 취하지 말 것, 보석을 요구하지 말 것 등 옥중투쟁의 세 가지 원칙을 지키며 민족대표로서의 기상을 끝까지 지키고자 했던 그에게 불교계뿐만 아니라 전 민중은 지도자로서의 신뢰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고 헌사했다.

심포지엄에 앞서 이날 행사를 주관한 정토회 지도법사 겸 죽림정사 주지 법륜 스님은 "한반도의 위기상황과 양극화 심화, 공동체 붕괴, 자연환경 파괴행위 등 온갖 위기를 목도하고 있는 이 시기에 용성조사께서 100년 전 식민지시대의 아픔을 감당하셨듯이 우리 역시 분단시대를 감당해야할 몫이 있을 것"이라면서 "시대의 스승이신 용성조사님을 만나 우리 시대의 과제를 능동적으로 해결해갈 지혜를 함께 나누자"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