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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봉사는 없다"

편집부   
입력 : 2013-04-30  | 수정 : 2013-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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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아침 정송을 끝내고 빗자루를 들고 앞마당과 길을 쓴다. 길을 쓸다 힘들 때는 허리를 펴고 쓸고 지나온 길을 바라다본다. 그러면 어느새 입가엔 미소가 번지고, 마음은 쓸고 지나온 길과 같이 깨끗하다 못해 청량해진다.

그 마음으로 또 다시 허리 굽혀 빗자루를 움직인다. 아침 정송을 마치고 하루를 시작하는 나의 모습이다. 그런 재미를 대구에서는 기사님에게 빼앗겨 버렸다. 그러다 여기에 와서 다시 되찾았다. 심인당 뒷길에서부터 시작하여 도로변 길까지 쓸면서 이웃 주민들과 인사를 한다. '안녕하셔요?' 하면 '수고하십니다', '참 깨끗이도 쓸고 계시네요'하며 지나가는 동네 아주머니들의 인사가 아직까지도 익숙하지 않아 서로가 겸연쩍어 하는 모습들이다. 그래도 지금은 꽤 많은 어르신과 아주머니들까지, 이웃들과 인사를 나눈다.

처음엔 온갖 담배꽁초, 가래침까지 그렇게 많았던 쓰레기가 청소하는 횟수를 거듭할수록 길거리에는 쓰레기가 적어지고 깨끗하다. 그래도 나는 오늘도 끊임없이 길을 쓸고 있다. 아무리 거리가 깨끗해 보여도 빗자루가 지나간 곳과 쓸지 않은 곳을 선명하게 볼 수 있는 마음의 눈이 밝아졌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도 끊임없이 복을 쌓아가고 있다.

우리 심인당과 이웃집과의 거리가 너무 가까워서 이웃집 사람들의 이야기소리가 심인당 사택에서 악을 쓰는 소리보다 더 잘 들린다. 내가 이웃사람들의 소리를 옆 사람이 하는 이야기 소리로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우리의 불사소리가 밤일을 하고 와서 주무시는 그 사람들의 잠을 깨우고도 남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심인당에서 펜스도 쳐보았고 스티로폼으로도 막아 보았던 스승님들과 보살님들의 애쓰신 노력이 눈에 보인다. 그러나 물리적으로 소리를 막는다는 것은 어렵다는 것을 알고 이웃사람들과 친해지기로 했다. 친해지면 조금이라도 더 이해를 할 수 있겠고, 진언염송이 좋아질지도 모르지 않겠는가? 그래서 생각한 것이 '동네 길을 우리 안방과 같이 깨끗하게 쓸자'고 생각해 빗자루를 들었던 것이다.

처음에 봉사활동을 통해 하고 있는 나의 모든 행동들이 이웃을 위해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우리는 지금도 수많은 형태의 '봉사활동'이란 이름으로 사회 이곳저곳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돕고 내가 가진 것을 나누며 선행을 하고 있다.

이러한 봉사활동이 거듭되면서 오히려 우리가 그 일로부터 기쁨과 감사함을 느끼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지나가면서 인사라도 하면 반갑고 시원한 음료수라도 들고 나오시는 할머니를 보면 '그래도 아시는 구나'하고 위로를 받았다.

지금은 그렇게 인사를 받는 게 쑥스럽고 음료수를 받아 마시는 게 죄송스럽고 미안하다. 언젠가부터 쓰레기를 한 톨도 밖으로 버리지 않고 집안으로 가져 들어오게 되고 가래침을 치우고 쓸면서 더럽다는 생각이 없어졌다. 아! 내가 지금 내복 짓고 있구나! 이곳이 복 밭이고 이웃주민들이 복 밭인데 그 복으로 내가 이렇게 건강하게 활동하고 내가 이렇게 기쁨으로 가득하고, 내가 이렇게 교화를 잘 할 수 있는 것인데 어찌 이웃을 위해 길을 쓸고, 어찌 내가 하는 이 행동을 봉사라고 할 수 있으며 그들을 돕고 있다고 할 수 있겠느냐? 그들이 모두 나의 복 밭이었던 것을! "이 세상에 봉사는 없다. 모두 다 나의 복 밭이고 내 복 짓는 것이다"라고 오늘도 심인당에서 법을 전하고 있다.

종조님께서 "내가 짓고 내가 받는 것을 깨쳐 아는 것이 심인공부다"라고 하신 말씀이 더욱더 내 가슴에 져며 온다.

경당 정사·아축심인당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