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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 있는 자리, 선이 있는 풍경

손범숙 기자   
입력 : 2002-08-05  | 수정 : 2002-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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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한잔의 풍경 / 김창배 / 솔과학 스스로 체득한 '다선일미'의 경지 글 117편·그림 136점으로 표현 다산(茶山) 정약용이 말한 '차 마시기 좋은 때'가 있다. 아침나절 꽃이 피어날 때, 뜬구름이 비 갠 하늘에 곱게 떠 있고, 낮잠에서 갓 깨어났을 때, 맑은 달이 푸른 시냇가에 휘영청 비추일 때. 다산이 말하는 차 마시기 좋은 때는, 그때마다가 하나의 산수화요, 절로 솟는 시정(詩情)이다. 시가 있는 풍경화이다. (다신 정약용의 다시 '차 마시기 좋은 때의 풍정'에서) 차와 선을 뗄 수 없는 관계. 그러한 관계 때문일까? 담원 김창배 화백의 '차 한잔의 풍경'은 차와 선화(禪畵)의 아름다운 조화를 읽는 가운데, 차를 모르는 사람들조차도 '향긋한 차 한잔의 풍경에 빠지고 싶다'는 유혹에 휩싸이게 된다. 외국산 커피가 우리의 차 문화를 지배하고, 어디를 가든 다방이 마을을 지키고 있는 현실에 가슴 아파했던 김 화백은 몇 년 전부터 옛 다인들의 풍류가 살아있는 차 유적지를 답사하여 그 풍광을 스케치하고, 남녘에 산재해 있는 차나무 밭과 야생으로 자란 차나무를 그렸다. 차인들과 밤새워 차를 마시며 차이야기와 선 이야기, 살아가는 이야기로 밤을 지새던 모습, 달빛을 담아 차를 달이던 모습과 삶의 이야기를 먹으로 그린 것이다. 추사 김정희의 유배지를 방문해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고, 다산 정약용의 생가를 방문해 그곳에서 떠오르는 느낌을 글로 옮기고, 김시습의 글을 읽으며 떠오르는 풍경을 그리고… 김 화백은 스스로가 경험하고 체득한 그때 그때의 느낌과 감정을 117편의 글과 136점의 그림으로 표현했다. 김 화백에게 있어서 차는 고상한 취미의 수준을 넘어 마음을 닦는 하나의 수행이며, 화가로서 다인으로서의 중요한 선의 실천이 됐다고 한다. "예로부터 차는 잠을 쫓게 하고, 식욕을 증진시키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게다가 인간이 가지고 있는 물욕, 식욕, 성욕 등 3가지의 욕심을 정화하는 것 또한 차이지요." 또 한 잔의 차는 사람을 선정으로 몰입할 수 있게 해 주고 그 사람의 인생을 기름지게 할 수 있다고…. 아직 차를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아쉽다는 김 화백은 이 책을 통해 우리 차를 즐겨 마시고, 알고 마셔 올바른 차 문화가 널리 퍼졌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했다. 빗소리가 들리는 인사동 담원 갤러리에서 기자는 처음 만난 다인들과 함께 국화향 진한 차 한잔의 여유를 만났다. 그리고 청아하고 간결한 마음자리도 함께 얻은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