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하광덕 스님은 조계종 총무원장직무대행, 중앙종회 법규분과위원장 등 주요 소임을 맡아 정화불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종단의 기틀을 바로 잡는데 힘썼으며, 특히 1962년 대한불교조계종 출범과 재건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광덕 스님은 종단활동 뿐만 아니라 인재양성에도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다. 1963년 대학생불교연합회가 창립되자 초대 지도법사에 취임해 대학생 전법의 기초를 닦았으며, 1964년 봉은사 주지에 취임했을 때는 사내에 대학생수도원을 개설해 젊은 인재양성에 힘을 쏟았다. 대불련의 초창기 활동 중 주목할 대목은 구도부와 대학생수도원의 결성을 손꼽을 수 있다. 사찰에서 생활하며 출가자처럼 수행하는 조직이었던 수도원은 광덕 스님의 전적인 지원과 지도로 설립됐다. 1965년에 설립된 수도원은 1971년까지 6년여 동안 유지됐고, 50여 명의 입사생이 배출됐다. 이때 배출된 대학생들이 이후 다양한 분양에서 활동하며 한국불교계의 동량이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