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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로 살아가는 마음자세는…

편집부   
입력 : 2012-04-16  | 수정 : 2012-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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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각 정사 육군학생군사학교 위문법회

오늘 여러분들이 귀한 시간을 내 여러 종교 중에서도 발심으로 법당을 선택한 이상 이 자리가 부처님의 가피를 이어가고 좋은 법담을 나눌 수 있는 의미 있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불교라 하면 어렵게 여기는 경우가 많다. 불교는 교리도 어렵고 실천법, 수행법이 어렵다는 선입견을 가지는 것이 사실이다. 불교는 삶 속에서, 생활 속에서 실천해 나가야 하는 종교이다.

나는 어려운 교리를 떠나서 신행의 원칙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나와 처음 만나는 사람을 보았을 때, 그와 나의 차이점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공통점을 찾으려고 하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어떤 사람을 만나면 나와의 차이점을 먼저 찾으려고 한다. '저 사람이 나보다 직급과 계급이 높나?' '나보다 잘 사나, 못 사나' 그런 분별심을 많이 가지고 있다. 그런 면에서 만나는 모든 인연과 마주 했을 때, 나와 공통되는 면이 어떤 것인가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과 부합되는 실천법이라 생각한다.

나는 오늘 평생에 두 번 갖기 힘든 300여 분과 마주하고 있다. 그렇다면 평소에 내가 가지고 있던 신행의 습관을 일으켜 여러분과의 공통점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러분과 나와의 공통점이 무엇일까? 여러분과 나의 공통점은 유니폼을 입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여러분은 군복을 입고 있고, 나는 승복을 입고 있다. 또 다른 공통점은 앞으로 리더가 될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여러분들이 임관을 하고 나면 지휘관이 될 것이고, 나 또한 내가 속해 있는 심인당에서 주교를 맡고 있는 신행의 리더가 아니겠는가? 이렇게 보면 여러분들이나 나나 제법 많은 공통점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여러분들은 앞으로 어떤 지휘관이 되고 싶은가? 내가 대학을 다닐 때 법주사로 도반들과 수련회를 간 적이 있다. 여름이라 파리와 모기 너무 많았다. 우리는 파리와 모기를 잡으려 법주사 스님께 파리채를 좀 구해달라고 했더니, 스님께서 파리채 대신 잠자리채를 주시며 "법우님들 신성한 법당에서 파리채로 파리를 잡으려 하지말고 잠자리채로 잡아서 방생하세요"라고 하셨다. 여러분들은 지휘관이 되어서 부하들을 파리채로 잡겠는가? 아니면 조금은 번거롭더라도 잠자리채를 드는 마음으로 여지를 두면서 여유 있게 아랫사람을 품을 수 있는 지휘관이 되겠는가? 어느 조직에 가서든 잠자리채를 드는 마음을 가지는 그런 지휘관이 되었으면 한다. 그런 마음으로 사람을 품을 수 있는 사람이 진정한 불자 장교라 생각한다.

요즘 흥행중인 건축학개론이라는 영화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건축은 내가 살고있는 장소와 공간에 대한 애정과 이해가 생기는 그 순간에 비로소 시작된다'는 참 의미 있는 말이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불교학개론은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그 대사를 패러디 한다면 '불교는 내 삶과 내 자신에 대한 애정과 이해가 생기는 그 순간 부처님에 대한 마음이 열리고, 불자로서의 자기 중심이 생긴다'라고 말 할 수 있다. 자신을 폄하하고 세상을 굴곡진 시선으로 바라보는 요즘 시대에 자신에 대한 애정과 이해가 도모된다면 남에 대한 애정과 남에 대한 이해가 비로소 도모된다고 생각한다.

이웃종교와 다른 불교만의 독특성은 부처님이 되는 방법을 제시해 준다는 것이다. 내 스스로가 부처가 되는 방법을 터득하게 해준다. 어떤 종교도 신자를 그 종교의 창시자와 같은 수준까지 올라가게 허용하지 않는다. 부처가 되기 위한 가장 중요한 방법은 내 마음 그릇을 키우는 것이라 생각한다. 휴대폰 배터리를 예를 들면 오래 충전했다고 해서 오래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배터리의 용량이 커야 한다. 삶도 또한 마찬가지로 내가 어떤 일을 할 때에 투입한 시간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는 내 그릇이 커져야 한다. 내 마음 그릇을 키우기 위해서는 작은 내 마음의 그릇을 깨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행이 되어야 하는데, 수행은 규칙적으로 해야 한다. 마음 내어 오늘 이 자리에 왔듯이 앞으로도 규칙적으로 부처님 말씀에 귀 기울이고, 경전을 읽고, 법당에도 나온다면 남들이 보았을 때에도 깜짝 놀랄만한 자기 변화가 일어 날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신행을 하는 의미이고, 부처님 전에 나와서 복을 짓는 의미이다.

각자에게는 인생의 책들이 있다. 여러분들의 책에는 결론이 정해져 있는가? 아니다. 그 책의 지은이는 나다. 결론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드는 것이다. 내가 어떤 인을 짓느냐에 따라, 내가 어떤 업을 짓느냐에 따라 내 삶이라는 책의 결론은 결정된다. 이것이 부처님의 핵심적인 가르침이다.

타임즈의 인터뷰에서 기독교 신자인 기자가 달라이라마에게 당신의 주된 관심사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달라이라마가 "당신의 주된 관심사는 신(神)이지만 나의 주된 관심사는 업이다"라고 답했다. 어떤 좋은 업을 지을 것인가가 나의 주된 관심사라는 말씀을 하신 것이다. 촌철살인과 같은 대답이라 생각한다. 업에 대해 오해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여러분들은 깨끗한 집과 더러운 집의 차이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깨끗한 집이라고 해서 쓰레기가 없는 것은 아니다. 깨끗한 집은 쓰레기가 쓰레기통 안에 있고, 더러운 집은 쓰레기가 방바닥에 굴러다닌다. 쓰레기는 어디에나 있다. 어떤 사람을 보면 잘살고 행복한 것 같지만, 누구에게나 허물이 있고 약점이 있고 아픔이 있다. 우리는 나에게만 고통과 아픔이 있다고 생각한다. 문제의 양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문제를 바라보는 내 삶의 태도가 중요하다.

세상을 살다보면 내 뜻대로 되는 것도 있고 되지 않는 것도 있다. 표현이 어떨 지는 모르지만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 내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에게는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용수철과 같은 자기 내공 즉 내 마음의 자세가 필요하다. 내가 입고 있는 제복과 계급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한사람의 인간으로서의 내공과 자기 원력과 자기 중심을 세워 가는 것이 더 중요한 삶의 원천이 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 내공을 우리는 부처님의 말씀과 가피, 발심을 통해서 키워 나가야 한다. 그것이 현역이 되어서나, 예비역이 되어서도 신행자로서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길이라 생각한다.

정리= 김우이 기자 wooyi82@milgyonew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