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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장보살신앙 연구/무통 스님

편집부   
입력 : 2012-03-13  | 수정 : 2012-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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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학년도 위덕대 박사학위 논문

한역의 연대가 명확한 지장보살 관련 최초 경전의 전거를 통해 그의 중요한 정체성의 하나인 대원의 본존으로서 지장보살이 대비천제보살임을 밝혔다.

대승불교의 대표적 보살로 주지하고 있는 문수ㆍ보현ㆍ관음ㆍ대세지보살 역시 중생을 향한 대비심이 지대하고, 그들 역시 대비천제적 서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구경성불이 예정돼 있고 당래에 성불하여 받을 여래명호를 부처님이 수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밀교 만다라에 수용된 금강당보살(金剛幢菩薩)은 그 이름처럼 오른손으로 간(竿)의 끝에 기(旗)를 단 당(幢)을 가지고 허공 가득히 나부끼는 모습을 보여서, 당(幢)을 보는 자 모두가 그 복덕을 입고 불(佛)의 위신력을 입게 하는 보살임을 알 수 있다. 즉 총림입구의 당간주(幢竿柱)에 깃발을 올려 법을 드러내듯이 자신의 대원력(가치)을 십분 드러내 모든 중생들에게 즉,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발휘하게끔 하는 것이 금강당보살, 곧 지장보살이다.

따라서 금강당보살과 동체인 지장보살의 대원이 곧 중생 개개인의 대원이고, 제각기 자신의 깃발을 힘써 올리고 살아갈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지장보살은 폐불훼석(廢佛毁釋)의 법난으로 불법의 소멸과 승단의 위기를 경고하여 각성을 촉구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비록 파계한 비구일지라도 출가의 계덕과 위의를 옹호하여 참회의 공간을 열어 놓았다는 사실이다. 이는 지장신앙에 있어 참회가 매우 중요한 포인트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지장신앙의 경우 '삼국유사'를 통해서 신라 진평왕대(579∼632)에 원광대사에 의한 점찰법회의 시행이 곧 중국으로부터 지장신앙의 전래를 뜻하며 특히 원광대사의 점찰보는 삼국시대 지장신앙의 대중화로 전개되는 단초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 후 통일신라대에는 지장신앙의 양상이 다양하게 전개된다.

지장신앙은 이처럼 각 시대의 상황에 따라 변용을 거듭하면서 그 명맥을 이어 나갔으며, 조선시대에는 숭유억불의 정책에도 왕실 내부적으로 사후문제에 있어서는 결국 지장보살신앙이 자리하고 있음이 조선왕조실록을 통해 구체적으로 확인된다. 그리고 본 논문의 핵심이면서 지장보살의 최초 원류신앙이라고 할 수 있는 지장보살다라니신앙의 유용성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이는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지장보살의 대원력이 증명되고 대원행으로 지옥 항류(恒留)는 물론 육도중생의 현세이익증장이 다라니문을 통하여 이루어짐을 확인할 수가 있다.

'대방광십륜경', '대방등대집경' 등 지장보살이 최초로 등장하는 경전에서 그가 설하고 연관된 '중덕구경기별주술다라니=구족수화길상광명대기명주(衆德究竟記?呪術陀羅尼=具足水火吉祥光明大記明呪; 일명 츰부다라니)', '불퇴전지다라니심주(不退轉地陀羅尼心呪)', '작세수택심다라니(作世水宅心陀羅尼)', '수풍마니궁다라니(水風摩尼宮陀羅尼)', '마도대다라니(磨刀大陀羅尼)', '당장대다라니(幢杖大陀羅尼)' 등의 지장보살 다라니문을 밝혔으며 이들을 드러내어 지장신앙 영역의 폭을 넓히려는 목적과 명분을 상위에 두었다. 이는 지장보살이 관련된 다라니문의 전거를 최초의 지장경전들에서 동원하였고, 그것을 지장신앙원류로 우선하여 지목하였다.

그 결과 지장보살의 다라니군이 집합되어 있는 전적들에서 지장보살의 본래 모습, 즉 그의 원류적 신앙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