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밀교전개사 26

허일범 교수   
입력 : 2002-04-01  | 수정 : 2002-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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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의식전승 1. 진언집 편찬의 의의 우리들은 조선시대에 간행된 진언집을 통하여 우리나라에도 티베트나 일본 등지에 전파된 밀교의식과 상통하는 행법이 전승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그것이 어떤 형태로 누구에 의해서 전승되고 있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기 때문에 법맥의 상승을 확인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진언집류를 개간한 인물들을 중심으로 그 맥이 전승되고 있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다시 말해서 19세기 초까지 조선의 불교계에는 밀교행법의 절차를 이해하고, 진언과 관법을 정확히 구사할 수 있는 인물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 밀교의식차제의 성격을 가진 진언집은 조선시대 말기인 18세기 말에 용암선사가 편찬했고, 이것은 후에 그의 문하에 있던 백암선사에게 부촉되어 전라남도 화순에 있는 만연사에서 전승되고 있었다. 그런데 그 곳에 화재가 발생하여 거의 대부분의 내용이 소실되고 단편만이 남아 있던 것을 19세기에 접어들면서 영월대사가 다시 복원하여 간행하게 되었다. 그것은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으며, 조선시대 밀교의식의 전개상황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그 내용은 전체가 상하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상권은 결수문, 지반문, 점안문 등의 의궤로 이루어져 있고, 하권은 무량수주, 천수다라니, 수구다라니, 정본능엄주, 공작명왕주, 육자대명왕진언 등의 다라니와 의식에 필요한 간단한 진언들이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는 조상양도경의 진언과 밀교관법이 있다. 여기서 상권에 해당하는 불보살과 명왕에 대한 공양차제는 결수문에서 점안문에 이르기까지 거의 유사한 체계를 가지고 있다. 즉 수행자는 인과 진언과 관을 통하여 자신의 삼업을 정화하고, 도향을 온몸에 발라 몸을 정화하며, 삼매야계를 수지하여 불덕을 갖추고, 보리심을 발하겠다는 서원을 한다. 그리고 나서 쇄정의식을 통하여 수행처를 정화한다. 이어서 삼밀의 작법으로 수행단의 건립을 법계에 알리고, 단을 건립한 다음, 단상을 결계한다. 어어서 불보살의 봉청, 제존에 대한 공양, 회향의식의 순으로 전개된다. 이것은 구성상으로 보면 티베트나 일본의 밀교행법과 다른점이 없다. 그리고 하권에는 제존에 대한 공양의식에 필요한 다라니와 더불어 불보살상이나 명왕을 조성할 때, 존상조성의식에서 활용되었을 것으로 여겨지는 조상양도경의 진언이 수록되어 있다. 또 끝부분의 밀교관법은 짧은 내용이기는 하지만 수행에 들어 갈 때 수행자가 갖추어야할 호흡법, 착좌자세, 종자전성법 등의 체계적인 관법에 대해서 기술하고 있다. 이와 같이 진언집은 일정한 규범 없이 진언만을 나열해 놓은 것이 아니라 밀교의 의식절차에 입각하여 편찬된 조선밀교의 의식차제집이다. 2. 진언집의 내용과 특징 현재 우리나라에서 이와 같은 진언집의 체계에 의거하여 똑 같은 의식을 행하는 곳은 없다. 그러나 이와 유사한 의식은 현재 티베트나 일본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그것은 우리나라에도 여타의 동북아시아 지역에 전파된 것과 같은 밀교행법이 전승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신라시대 중국에 유학한 의림, 불가사의, 현초, 혜초와 같은 인물들이 선무외나 금강지의 제자가 되어 대일경과 금강정경계통의 법을 상승 받았고, 혜일과 오진은 혜과의 법맥을 계승했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공통적으로 정확한 행적을 알 수 있는 역사적 전거가 전무한 상태이다. 이들 중에서 선무외의 법맥을 계승한 불가사의만이 공양차제법에 관한 주석서를 남기고 있다. 그가 지은 공양차제법소는 대일여래에 대한 공양차제의식을 상세히 기술한 것이다. 그 내용은 단의 건립, 제존공양법, 실지성취법에 관한 내용인데 여기에는 진언집의 차제에서도 발견되는 작단, 결계, 삼부제존공양 등에 관한 기술도 있다. 여기서 작단이나 결계는 모든 밀교의식에서 공통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고, 삼부제존에 대한 공양은 대일경계통만이 가지는 톡징이다. 삼부란 만다라상에서 대일여래를 중심으로 사방사불이 머무는 불부, 자비의 상징인 관음보살과 그 권속이 머무는 연화부, 지혜의 상징인 금강살타 혹은 금강수와 그 권속이 머무는 금강부를 말한다. 이 삼부 제존에 대한 공양은 진언집에서도 매우 중시하고 있다. 그러나 공양차제법소의 내용이 전적으로 우리나라의 밀교의식에서 활용되었다는 증거는 찾아 볼 수 없다. 다만 진언집 속에 대일경계통의 삼부진언과 금강정경계통의 금강계 오불에 관한 진언이 있기 때문에 진언집이 편찬될 당시 이 두 경전의 내용이 채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뿐이다. 이와 같이 진언집의 행법차제는 한국, 중국, 일본의 동북아시아 삼국에 전파된 밀교의식과 상통하는 바가 있다. 즉 진언집에 수록된 수많은 진언들 중에서 상권은 삼부체계가 중시되고 있기 때문에 대일경의 행법차제를 근간으로 여타 밀교경궤의 진언을 채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하권은 능엄경, 화엄경, 금강정경, 조상양도경 등으로부터 진언집의 편찬에 필요한 진언만을 발췌하여 수록한 것이다. 따라서 상권의 경우 대일경과 금강정경을 중시하던 중국이나 일본의 진언차제와 유사점을 가지게 되었다고 생각된다. 한편 진언집의 서두에는 종자론에 대한 언급이 있는데 이것은 종자에 의한 관법을 통하여 불보살들을 초청하고, 공양하여 그들의 가피를 얻으려는 의식체계를 수립하기 위해서 제시된 것이다. 즉 수행자는 자신의 마음속에 불보살을 의미하는 종자들을 관상하여 그것을 전변시켜 나아감으로써 종자를 불보살의 모습으로 형상화시켜 나간다. 그것이 이루어지면 다음 단계로 수행자는 마음속에서 관상만을 통하여 자유자재로 불보살을 초청하거나 서원, 봉송을 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수행자는 이 과정을 통하여 불보살의 가피를 입게 되는 것이다. 진언집에서는 이 체계를 단순히 종자의 관법에만 국한시키지 않고, 종자와 네 종류의 지혜, 네 종류의 불신, 그리고 삼밀이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이 점 진언집에서만 찾아 볼 수 있는 종자론이라고 볼 수 있다. 이상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진언집은 조선시대 말기에 편찬된 것이지만 수많은 진언과 행법의 절차를 총망라하고 있으며, 불보살에 대한 공양의식 및 관법에 대해서 설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나라에서도 전통 밀교행법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것을 입증하는 귀중한 내용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