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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사방 모두 꽃

편집부   
입력 : 2010-04-29  | 수정 : 2010-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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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사방 꽃불 번지는 봄, 옥연사를 찾았다. 옥연사는 조선전기 시인 정치가 사상가로 영의정을 지낸 소재 노수신 선생의 사묘재실이다. 이곳 유장각에 보관되던 유품들은 종가의 기탁으로 거처를 상주박물관으로 옮겼다. 궤에 갇혀 숨 막혔을 고서들을 비롯해 목판 등 많은 유품이 비로소 바람을 쐬고 빛을 보게 된 것이다.

소재선생은 20여 년 동안 유배생활의 고통과 비애를 학문으로 승화시켜 '숙흥야매잠해', '인심도심변', '집중설' 등을 남겼다. 당시 성리학자 일반은 인욕(人欲)을 불선(不善)으로 보고 금욕을 주장하고 있지만 그는 인욕을 긍정하였다. 거기서 더 나아가 그것을 자신의 심학(心學)으로 이루어냈으니 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양명학자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조선 500년 동안 정주학을 으뜸으로 하는 학문분위기 속에서도, 이단으로 배척되던 육왕학, 도교 불교의 사상까지 긍정적으로 이해하는 호방한 학문태도를 보였다.

그의 시 '별사내옹(別四耐翁)' 가운데 "산하대지의 백 가지 천 가지 꽃이(山下大地百千花)/다 평범한 백성의 집에 있다(盡在尋常百姓家)"는 구절은 "산하대지가 모두 법왕의 몸"이라는 불가의 말과 일치한다. "평범한 사람이 모두 부처이자 성인" 이라는 것이다.

옥연사 앞마당은 숙연한 가운데 모처럼 흥성흥성하였다. 햇살은 수백 년 동안 걸어오느라 부르튼 책들을 어루만지고, 새소리도 유품들 위로 낮게 내려와 앉았다. 천지간을 운행하는 바람은 그렇게 여린 숨결 다시 펄럭이게 하고, 이윽히 세상 저편 봄볕까지 끌어당겨 왔다. 사람 인(人)자 맞배지붕 옥연사, 대숲그늘 걷어내며 환하게 피었다.

모든 사람이 더할 것 없는 완전한 본성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믿음, 존재하는 모든 것을 차이나는 그대로 다 인정하는 소재선생의 정신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뜨겁게 다가온다. 참으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부처"요, 이 세상사람 모두 꽃이 아니겠는가.                                                                           

황구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