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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불편

편집부   
입력 : 2010-03-30  | 수정 : 2010-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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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그게 참말이가?”

오랜만에 만난 후배는 정색을 했다. 나에게 자가용이 없다는 게 통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그러더니 차가 있어야 가고 싶은 곳을 맘대로 갈 수 있다며 하루라도 빨리 차를 마련하란다. 사실 나는 운전면허시험을 본 적도 없다. 후배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은 내가 당연히 운전을 할 줄 안다고 여긴다. 그래서 운전면허증조차 없다는 사실을 전혀 믿지 않는다.


나는 신용카드도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신용카드로 물건을 구입하고 나서 다음에 통장에서 빠져나가는 돈은 속이 쓰리다. 또 당장 현금도 없으면서 신용카드를 사용하고 통장관리를 해야 하는 등등의 뒷감당에 자신도 없다. 현대의 대량소비사회에 살면서 “안 쓰면 되지”하는 생각은 힘이 없다. 온갖 매체를 통해 부디 소비해주기를 간절히 요청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주체적이지 못한 충동과 무절제한 소비를 하게 된다. 그래서 신용카드를 없애버린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손 전화를 없앤 적이 있다. 한시도 숨 돌릴 틈 없이 사람과 일에 끌려 다니다가는 내 삶마저도 잃어버리겠다는 생각에서였다. 내 스케줄을 홀가분하게 짜고 시간에 좇기지 않아 나는 무척이나 가벼워지고 여유로웠다. 문제는 주변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온갖 불편을 호소하며 나에게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키라고 항의하기도 했다. 결국 석 달쯤 뒤에 두 손 들고 손 전화를 다시 쥐어야했지만 이 물건이 나는 여전히 무겁다.

현대인의 필수물건목록을 꼽으라면 많은 사람들이 자동차, 신용카드, 손 전화를 들 것이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 그에 따른 대량폐기의 무덤 위에 현대문명이 있다. 따라서 환경파괴나 에너지자원 고갈 같은 위기에 직면하고 있음은 불편한 진실이다. 과학기술의 진보와 빠르게 진행되는 기계화 덕분에 우리의 생활은 더없이 편리해졌다. 그러나 그 편리함으로 과연 우리는 행복한가. 정말 소비자는 왕인가. 나는 결코 불편을 감수하지 않는다. 다만 그 불편이 가져다주는 수많은 가치와 행복을 즐거이 누릴 뿐이다.

황구하/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