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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 세상을 살리는 납설수(臘雪水)

편집부   
입력 : 2010-02-11  | 수정 : 2010-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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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매와 나는 앙궁 우에 떡돌 우에 곱새담 우에 함지에 버치며 대냥푼을 놓고 치성이나 드리듯이 정한 마음으로 냅일눈 약눈을 받는다”(백석 '古夜' 부분)

예전에는 동지로부터 셋째 미일(未日)인 납일(臘日)에 내리는 눈을 특별하게 여겼다. 그 눈을 정성껏 받아 녹인 납설수(臘雪水)로 환약을 빚었다. 의서(醫書)에 “납설수는 염병과 모든 병을 다스린다”고 한 데서 생긴 풍속이다.

지난겨울에는 눈이 엄청 내렸다. 폭설과 한파로 인한 사건사고와 피해도 잇따랐다. 자연기후변화는 또 하나의 전쟁이다. 황사, 가뭄, 태풍, 장마, 지진, 폭설과 강추위 등은 분명 엄청난 피해와 고통을 안겨준다.

지난 1월 12일 일어난 아이티 지진만 해도 그렇다.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강진으로 아이티는 폐허더미에서 신음하고 있다. 내전과 쿠데타, 자연재해로 점철된 역사를 가진 가난한 나라 아이티의 이번 지진은 더욱 견디기 힘든 상처이다.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현장은 참혹하기만 하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말을 한다. ‘사방 백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경주 최부잣집의 지침과 임진왜란으로 피폐해진 백성을 구제했던 상주 존애원(存愛院)은 그 좋은 본보기이다. 그러나 나눔이 특정 계층만의 의무이던 시대는 지났다. 김밥 할머니와 떡볶이 할머니, 연예인과 스포츠 스타들의 나눔은 훈훈하다. 대학생과 직장인들이 생활비를 아껴 후원금을 내고, 전업주부와 노인들까지도 시간을 쪼개 봉사를 한다. 그들은 말한다. “기부와 봉사는 우리가 밥을 먹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설명절과 우수가 눈앞이다. 그러나 세상은 여전히 춥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찬바람을 맞으며 떨고 있는가. 나눔의 실천이 세상을 살리는 납설수가 되기를 “치성이나 드리듯이 정한 마음”을 가져본다. 햇빛에 반짝이는 잔설에 흑진주 같은 아이티 어린 아이의 눈물이 자꾸 겹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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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구하/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