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밀교전개사 25

허일범 교수   
입력 : 2002-03-16  | 수정 : 2002-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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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밀교의 교령륜신 1. 조선밀교의 명왕과 천신 일반적으로 명왕과 천신은 분명히 성격을 달리하고 있지만 조선시대 밀교에서 이들 두 존격의 관계는 별다른 구분이 없었던 것 같다. 인도나 티베트에서는 부처님을 대신하여 중생교화의 역할을 담당하는 존격을 명왕이라 했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수호하는 존격을 천신으로 규정했다. 따라서 밀교경전이 성립되면서 다양한 존격이 등장하는 만다라에서도 명왕은 교령륜신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며, 천신은 만다라세계를 수호하는 존격으로 등장하였다. 이와 같이 분명한 성격적 차이를 보이고 있는 명왕과 천신은 조선시대에 이르러 동질적 성격을 가진 존격으로 받들어졌다. 그 존격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방편으로써 나타나기도 하고, 도량과 불법을 수호하는 존격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조선시대 건립된 전통사원에 안치되어 있는 사천왕과 금강역사, 그리고 신중탱화중의 예적금강은 명왕에 해당하며, 그 외의 범천, 제석천, 색건나천, 나라연천 등은 천신에 속한다. 그런데 이들 존격들은 나름대로의 역할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 같이 도량과 불법수호의 역할을 담당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사천왕과 금강역사는 원래 불법의 수호를 위한 교령륜신의 역할이 주어져 있지만 사원에서 이들 존격은 도량수호와 더불어 불법수호를 담당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즉 교화하기 어려운 중생들을 불도로 끌어들이기 위해서 등장하는 교령륜신이 도량수호의 역할까지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티베트나 일본 밀교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예이다. 나아가서 조선시대 신중탱화는 교령륜신과 천신이 어우러져 있는 형태로 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교령륜신으로서의 예적금강과 천신으로서의 범천이나 제석천이 하나의 집단을 형성하고 있다. 이것 또한 조선시대 존격신앙의 특성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인도에서 성립된 경전 상에 등장하는 명왕과 천신 이외에 우리나라의 토착신인 산신도 도량 내에 모셔져 있다. 이와 같이 산신이 사찰에 모셔져 있는 것은 사원건립을 위한 토지를 수지한데 대한 감사의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즉 밀교경전에서는 수행도량을 확보하기 위해서 얻은 토지에도 신령이 깃들어 있기 때문에 마음대로 남의 토지를 범하지 않고, 그 곳의 토착신을 위무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수행도량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믿었다. 아마도 조선 밀교에서 산신의 수용은 밀교적 관점에서 보면 토착신에 대한 배려이자 그 존격에 대하여 역할분담을 부여한 것으로 보아야할 것이다. 따라서 조선시대 밀교는 명왕이나 천신, 그리고 토착신을 아우르는 공존공생의 신앙체계를 확립하였다고 생각된다. 만약 이와 같은 상호공존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았다면 명왕이나 천신 같은 외래의 존격들은 우리민족의 정서 속에 자연스럽게 수용되지 못했을는지도 모른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조선시대 신중들에 대한 신앙은 엄격한 구분을 지어 생각할 수 없지만 대략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것은 명왕과 천신과 산신이다. 즉 명왕은 교령륜신, 천신은 불법수호, 산신은 도량수호의 역할을 담당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2. 조선시대 교령륜신의 역할 우리나라 밀교에서 교령륜신의 역할이 부여된 존격으로는 사천왕과 금강역사, 그리고 예적금강을 들 수 있을 것이다. 티베트나 일본에 비하여 교령륜신에 대한 신앙이 미약했던 우리나라의 밀교는 불과 보살에 대한 신앙이 주류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현존의 전통사원에서도 분노형을 한 명왕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신라시대 사천왕사의 건립이나 고려시대 사천왕도량의 개설, 오대명왕이 인각된 금강령의 제작, 그리고 조선시대에 건립된 사천왕문의 사천왕상이나 금강문의 금강역사상, 신중탱화중의 예적금강 등은 단편적으로나마 명왕신앙의 일면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흔히 동북아시아 밀교에서 명왕신앙의 대표적인 예로 오대명왕 중에서 부동명왕과 항삼세명왕을 들고 있다. 이들 두 존격은 대일여래의 분노형으로 교령륜신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우리나라의 밀교에서는 이들 존격에 대한 흔적이 고려시대에 제작된 법구류에서 발견될 뿐, 그 외의 유물에서는 찾아 볼 수 없으나 티베트나 일본에서는 여타의 명왕들과 더불어 밀교신앙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원래 이들 존격이 등장하게 된 것은 힌두교의 제천들을 불도로 이끌기 위한 것이었다. 초회의 금강정경에 의하면 항삼세명왕에게 힌두교의 대자재천을 조복시키기 위한 역할을 부여하고 있다. 즉 석존이 성도했을 때, 금강살타는 매우 분노한 모습을 나타내서 세간의 천신들을 항복시켰지만 삼계의 주인 대자재천과 그의 비인 오마후신은 자신들의 위세를 믿고 여래의 가르침을 받들지 않았다고 한다. 거기서 금강살타는 매우 사나운 분노의 모습을 나타내서 대자재천과 오마후신을 절명시켜 버렸지만 금강살타의 발에 밟힌 공덕에 의해서 대자재천은 발사마찬나세계에 발사미사라이구사여래로 다시 태어나 성불했다고 한다. 성불한 대자재천은 사바세계에 다시 돌아 와서 금강살타의 가르침을 받들게 되었고, 그 때 대자재천부부를 항복시킨 금강살타를 항삼세명왕이라 일컬었다고 한다. 여기서 주목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은 교령륜신의 교화대상이 힌두교의 신이라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강력하다고 여겨졌던 대자재천을 조복시키는 위력이 항삼세명왕에게 부여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밀교경전에는 금강살타와 같은 불교 내부의 존격이 특정한 힌두교의 신들을 조복시키기 위해서 분노형으로 나타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힌두교가 존재하지 않은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사정이 달랐다. 이들 나라에는 힌두교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힌두교의 신들을 조복시킨다는 테마가 등한시되고, 힌두교신과 비교된 번뇌나 악의 퇴치라는 종교적으로 승화된 해석이 적극적으로 수용되었다. 따라서 조선시대의 명왕신앙도 이런 관점에서 이해되어야할 것이다. 즉 인도에서와 같이 명왕의 위신력으로 토착종교의 신들을 조복시키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토착신과의 역할분담을 통해서 토착신앙과 조화를 이루면서 중생들을 불도로 이끄는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