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수행풍토 제시하고 싶다"

편집부   
입력 : 2009-08-28  | 수정 : 2009-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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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일 기도 회향하는 봉은사 주지 명진 스님

"신도들의 관심과 성원으로 1000일 기도를 원만하게 마치게 됐습니다. 불교발전에 봉은사가 앞장서겠습니다."

조계종 봉은사 주지 명진 스님은 8월 25일 봉은사 다례헌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1000일 기도 회향을 앞둔 소감에 대해 이같이 밝히고 "1000일 기도를 더 하지는 않겠지만 남은 중노릇하는 동안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다보면 좋은 결실들이 나오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명진 스님은 "1000일 기도를 하기로 한 뜻을 밝힌 뒤 1000일을 채우지 못하면 어쩌나, 신도들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니 한동안 발등이 부어 고생을 했지만 마음을 내려놓으니 몸도 마음도 편해졌다"면서 "1000일 기도동안 큰병없이 회향할 수 있었던 것은 영험한 부처님과 저를 끝까지 믿어주고 관심 가져준 봉원사 신도와 불자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덧붙였다.

1000일 기도동안 가장 힘들었던 점에 대해 명진 스님은 "육체적인 고행이야 스님으로 당연하다고 생각되었지만 무엇보다 용산참사와 미국산 수입소고기 반대 촛불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 등 대사회적인 문제가 발생했을 때는 산문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고 밝혔다.

명진 스님은 80년대를 대표하는 운동권 스님 중 한 명이다. 보수색이 짙은 서울 강남 봉은사 주지로 임명됐을 때 신도들은 스님에 대해 고운 시선을 보내지 않았다. 그러나 스님이 4시 30분 새벽예불, 오전 10시 사시예불, 오후 6시 30분 저녁예불까지 하루 세 차례 1천배를 하며 정진해온 사이 많은 변화들이 일어났다.

스님을 따라 1000일 기도를 같이 하는 모임이 생겼고 예불에 동참하는 신도가 500여 명으로 늘어났으며 명진 스님의 일요법문을 듣는 신도도 최근에 1천명까지 증가했다. 이와 함께 봉은사 재정도 증가했다. 취임 첫해 86억 원이던 예산은 예산공개 후 매년 20%씩 늘어 2008년 122억 원으로 늘어났다.

"그동안 봉은사는 내분이 끊이지 않고 신도들도 불심이 많지 않았습니다. 모든 책임은 스님들에게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수행하는 풍토로 바꾸고 싶었습니다."

명진 스님은 1천일 동안 딱 한번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 참석을 위해 산문 밖을 나섰다.

이에 대해 "고 노무현 대통령의 영결식 추모집전을 맡은 것은 우선 권양숙 여사가 봉은사 신도이기 때문이었다"며 말문을 열었다. "김대중 대통령처럼 노환으로 돌아가셨다면 안 나갔을 겁니다. 그러나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이 가슴 아프고 또 그것이 개인적 친분뿐만 아니라 역사라고 생각했습니다. 역사의 흐름에 내가 같이 동참할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명진 스님은 1000일 기도가 회향되면 첫 행보로 용산참사 현장을 찾아 위로하고 9월부터 강원도 인제 용화선원에서 2개월간 정진할 계획이다.

첫 행보지로 용산참사 현장을 찾는 것과 관련해 명진 스님은 "1000일 기도를 하는 중에도 항상 마음속에 용산참사 희생자들에게 미안한 마음 갖고 있었다"며 "공권력 투입으로 용산참사가 일어나자마자 적은 돈을 보내드리고 과일, 떡, 쌀을 보내드려 가끔 위로를 전했지만 마음의 빚을 덜고 싶어 첫 행보를 용산으로 하겠다는 생각을 오래 전부터 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총무원장 선거와 맞물린 시점에서 선원입방과 관련해서는 "사판승으로서 게으르지 않게 수행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의 행동으로 봐줬으면 좋겠다"며 사실상 이번 총무원장 선거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뜻을 비췄다.

조계종의 가장 큰 문제점에 대해서는 "조계종은 선종을 표방하고 있지만 선종이 아니다"며 "천도제와 기도, 사찰관람료에 의존하고 하는 현실을 볼 때 '제사종' '지도종' '관람종'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명진 스님 1000일 기도 회향법회는 8월 30일 오전 11시 법왕루에서 봉행된다. 이날 회향법회에서는 박원순 변호사와 강천석 조선일보 주필의 축사가 있을 예정이며 경기도교육청과 서울 강남구교육청장에게 1000석의 쌀을 전달할 계획이다.

이재우 기자 sanjuk@milgyonew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