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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 스카라베

편집부   
입력 : 2009-08-28  | 수정 : 2009-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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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화과나무 아래 길게 늘어앉아 차례를 기다리며 이발을 했던 수천 년 전의 이집트 사람들. 벽화 속의 그들도 생전의 행적이 어떠한 평가를 받을까 걱정했던 모양이다. 그들은 ‘남겨진 심장’이 죽음 이후에도 생을 생생하게 증언한다고 믿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그런 믿음으로 미라를 만들 때 다른 장기는 빼내서 단지에 보관하지만 심장은 그대로 두었다고 한다. 남겨진 심장이 그동안 목도해온 제 몸의 행실을 심판하다니! 생각만 해도 두렵다. 안과 밖을 갖고 있고 빛과 어둠을 지니고 있는 삶 자체가 모순이고 위악이고 남루이고 비굴이거늘 두렵지 않을 자 어디 있으랴. 우선은 위로가 된다.

현대인과 비교해서 절대 우위로 선하고 순진하고 자연에 가까웠을 고대인들의 두려움이 나와 같았다니. 그래서 고대 이집트인들은 심장이 망자에게 불리한 진술을 하지 못하도록 주문이 적힌 녹색 돌을 망자의 심장에 올려놓았다고 한다.

심장 스카라베, 유리 진열장 안에 전시된 고대인들의 녹색 돌 부적을 들여다보며 문득, 최근에 잇달아 돌아가신 전직 대통령들이 떠올랐다. ‘남겨진’ 두 심장이 떠올랐다.

무게와 권위와 가식의 무거운 외투를 벗고 사람들 사이로 스며들었던 자연스럽고 따뜻한 온기. 가슴 깊숙이 지니고 있던 민주주의에 대한 열정, 분단된 조국에 대한 근심, 국민에 대한 진심이 저절로 새어나와 생전이나 사후나 국민들을 끌어당기는 마력을 지닌 두 사람. 도처에서 그들을 증언하는 심장을, 심장 스카라베를 느낀다. 자발적 슬픔의 노란 만장들. 굵고 뜨거운 황소 눈물방울들. 대통령의 부재를 슬퍼하는 입의 긴 행렬, 슬퍼하는 눈의 긴 행렬. 그것이 남겨진 심장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마지막 일기의 구절, “인생은 생각할수록 아름답다”는 말, “역사는 앞으로 발전한다”는 말은 잴 수 없는 깊이와 울림을 갖는다. 독재자의 음모로 트럭에 치어 허벅지 관절을 다치는 등 “몇 번이나 죽음의 마루턱 넘어”(고은 시인의 ‘당신은 우리입니다’ 중에서) 살아남은 심장 스카라베의 전언이기 때문이다.

어쩔 것인가. 남겨진 심장이 당신을 증언하다면?

권현형/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