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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제순응·비판기능결여 주체세력 못돼"

편집부   
입력 : 2009-08-25  | 수정 : 2009-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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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과 불교' 주제 월례발표회

"조선후기 불교 교단은 자신에게 닥치는 세속권력의 부당한 횡포에 대해서조차 저항하지 못하는 체제순응적인 태도를 견지하였으며, 사회적인 비판세력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하지 못함으로써 끝내 적극적인 주체로 서지 못한 채 종속적인 위치에 머물고 마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러한 역사적 양상은 세속권력과의 관계를 늘 고민해야하는 오늘의 불교인들에게도 결코 외면할 수 없는 무거운 과제를 던져준다."

서울대 규장각 박해당 연구원이 8월 23일 오후 1시 30분부터 경기도 남양주시 봉인사에서 열린 제2회 광해군 추선기념 학술세미나에서 '광해군(1575∼1641)시대 대표적인 고승들의 국가의식'이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이 같은 주장을 제기했다.

박 연구원은 광해군시대 불교적 상황에 대해 "정치, 경제, 외교, 군사 등 각 분야의 난제가 첩첩이 쌓여 있던 시기였기에 불교는 국정운영상의 주요 논의대상이 되지 않았다"면서 "전란기에 펼쳐진 승군활동이 사회적 공익실현과 효율성을 입증함에 따라 승려노동을 적극 활용하는 방향으로 자연스럽게 전개된 것"이라고 했다.

박 연구원은 "이 시기 한국불교사에서 불교적 가치와 국가적 가치의 충돌문제를 가장 먼저 고민한 사람은 원광이었다"며 "원광은 불살생이라는 불교적 가치와 임금의 명령을 따라야한다는 국가주의적 가치 사이에서 갈등하지만 결국 불교적 가치를 접어두고 국가주의적 가치를 선택하게 된다"고 밝혔다.

박 연구원은 즉 "원광에게는 승려로서의 정체성보다 왕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이 더 앞섰던 것"이라면서 "한국불교의 국가주의는 그 뿌리가 매우 깊지만, 광해군시대의 승려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조선중기에 활동했던 보우"라고 밝히고 "불교를 신봉한 문정왕후가 장악하고 있던 세속권력의 후원 아래 불교의 부흥을 꾀하였던 보우는 불교에 호의적인 세속권력을 신성화하는 모습을 보이게 되는데, 문정왕후를 부처와 같은 위치로 격상시켜 찬양한 것은 그 대표적인 경우"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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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연구원은 또 "광해군시대 대표적 승려들의 국가의식과 그 연원, 전승에 대해 살펴본 결과 보우 이래로 휴정과 유정 등에 의해 계승된 근왕주의적이고 국가주의적인 의식을 지니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며 "이러한 태도는 국왕에 대한 충성을 강조해 불교 교단을 국가적인 목적에 이용하려는 의도를 명백하게 드러낸 조선후기의 세속권력에 의해 조장되고 강화됐다"고 덧붙였다.

박 연구원은 마지막으로 "광해군시대 승려들은 임금을 위해 충성하는 '근왕주의적'이고,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국가주의적'인 의식은 그 시대에 생겨난 것도 아니고, 그 시대로 끝난 것도 아니다"면서 "이러한 의식에 따른 행위는 임진왜란 당시 직접 전투에 참여해 살생을 저지를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출가 수행자인 승려들이 지켜야 할 기본적인 행위양식과 어긋나게 되고, 이는 필연적으로 불교적 가치와 국가적 가치의 충돌로 이어질 수밖에 없으며, 이는 가치의 선택과 그에 따른 정체성의 문제로 이어진다"고 밝혔다.

김선미 기자 sunmi7@milgyonew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