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만다라

끓이지 못한 된장찌개
여기 두 여자가 있다. 내 앞에 앉아있는 여자는 빨간 모자와 빨간 니트를 속에 입고 계절감 있는 재킷을 어깨에 가볍게 걸쳤다. 패션 감각뿐 아니라 색 감각이 뛰어난 게 느껴진다.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여자는 알고 보니 한국에서 손꼽히는 동양화 교수이자 협회 이사다. 최근에 사무실을 이전해서 활발한 작품활동을 하며 제자를 양성하는 데 열중이다. 몸에 살이 붙을 틈도 없이 꼬박 그림을 그리느라 밥 먹을 때를 놓치기 일쑤다. 내 옆에 앉아 있는 여자는 등장부터 요란하다. 양손에는 동네에서 유명한 빵집의 갓 구운 빵과 깨끗하게 씻어 온 포도, 꼭지를 딴 탐스러운 딸기는 바로 집어먹을 수 있도록 준비해왔다. 도착하자 마자 능수능란하게 테이블을 세팅하고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며 식사 준비를 돕는다. 남들에게 인정받는 커리어를 지금까지 유지한 여자와 남은 이력이라고는 가족들에게 수없이 밥해준 것 밖에 없는 여자는 뜻밖의 공통점을 발견한다. 바로 두 아이의 엄마라는 사실.여기 두 엄마가 있다.어느...
2021-04-09
가지 못한 길
“오랜 세월이 흐른 다음 나는 한 숨 지으며 얘기하겠지요. 두 갈래 길이 숲속으로 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사람이 덜 밟은 길을 택했고, 그것이 내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라고. 중학교 시절 나의 마음에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와 삶의 고개마다 인생을 생각하게 한 시이다. 적막한 시골 마을에서 접할 수 있었던 문화로는 교과서나 신문, 책 속에 실린 글귀가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한 편의 좋은 시는 두고두고 읽으며 때로는 오랫동안 가슴에 담고 살아가기도 했다. 그 시절에는 미래에 대한 설계를 한다기보다는 꿈을 꾸었었다. 삼등 열차를 타고 차창으로 스쳐가는 낮과 밤을 느끼며 책을 읽는 꿈을 자주 꾸었다. 누군가가 장래에 무엇이 될래? 라고 물으면 여류 소설가라고 말하면서 가슴이 두근거렸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너무나 아름답고 신비로워 차마 소리 내어 드러내기조차 조심스러웠던, 그러나 현실과의 타협 속에 아쉬움을 담아 떠나보냈던 꿈이 있었다. 신입생들의 진로 설계를 위한 상담을 하다 보면 자...
2021-03-23
춤추라, 아무도 바라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대학 다닐 때 학과 축제의 한 코너에서 캉캉춤을 춘 적이 있다. 유려하게 잘 표현된 방식은 아니었다. 서툴고 우스꽝스럽게 연출해 웃음을 자아내는 것이 목적이었다. 선배의 손에 이끌려 몇 가지 동작을 익힌 뒤 청춘의 패기로 한 장면을 장식했던 것이다. 그러나 살아가면서 필자는 막상 막춤을 추어야 하는 상황에서도 그 순간을 잘 표현하지 못해 당황했던 기억이 더 많다. 그래서 어디 한 번 춤을 배워볼까 하고 뜬금없이 생각해 본 적도 있다. 젊은 뇌과학자 장동선은 <대한외국인>이라는 퀴즈프로그램에 나와 건강한 뇌를 유지하려면 소통을 잘하고 감정을 잘 표현하되 이 모두를 잘하려면 춤을 추라고 강조했다. 그래 그런 거지, 하며 고개를 끄덕이자 온갖 기억들이 밀려든다. 이를테면 이탈리아 피렌체 여행을 갔을 때 석양이 머무는 베키오다리 위에서 탱고를 추던 연인을 보며 뜨겁게 박수를 보냈던 기억이 있다. 마치 젊은 단테와 베아뜨리체가 격정적으로 춤을 추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l...
2021-03-08
네가 없는 나의 하루는
외로움과 분노를 몸에 담요처럼 두르고 상대방을 주시한다. 매섭게 눈만 빼꼼히 내민 채 가득 땀이 찬 두 손을 공기도 통하지 못할 정도로 움켜쥔다. 새해 다짐 11번에 적힌 ‘순간적인 감정을 폭발시키지 않기’가 지켜지지 않은 순간이다. 명상, 호흡, 요가 등 희망찬 새해와 어울리기 위해 그간 수련해온 마음 다스리기가 와장창 무너지고 지난해와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돌아온 것에 속이 상한다. 그토록 바꾸고 싶고, 바뀌고 싶은 부분인데, 열두 시가 되면 반짝반짝 빛나던 모습에서 보잘것없는 행색으로 돌아오고 마는 신데렐라처럼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제자리걸음이다. 지난해 다양한 운동과 전문 마사지로 몸 건강을 열심히 챙겼다면 올해 나이 앞자리가 바뀌면서 마음 건강도 올해 목표에 포함했다. 매 순간 평온함과 내면의 소리에 집중하려 하지만 바다 앞에 쌓인 모래성처럼 작은 파도에도 쉽게 무너져 버리고 만다. 나만의 견고한 성을 쌓고 싶은데 잦은 외부 침략에 보이지 않는 멍이 가득하다. 좋은 날...
2021-02-16
엄마의 발
식사 후 엄마는 보행기에 의지해 걷는 연습을 하고 있다. 바닥이 미끄럽다고 양말도 마다하고 실내화도 신지 않은 채 맨발로 조심조심 걷고 있다. 뒤뚱 거리는 모습이 불안하여 설거지를 하면서도 신경은 온통 엄마에게 향하였다. 마주 바라보던 얼굴을 이제는 내려다봐야 될 정도로 키가 작아지고 허리까지 굽어진 엄마의 뒷모습에 가슴이 저려왔다. 네발로 걷다가 두발로 걷고 다시 세발로 걷는 것이 인생(人生)이란 것을 이렇게 가슴 아프게 깨닫는 것이 또한 인생(人生)인가보다. 어릴 적 친구들과 수수께끼 놀이를 하면서 재미로 주고받았던 말들이 이제는 가슴에서 녹아내려 한 줄기 눈물이 되어 떨어졌다. 엄마는 십분도 채 걷지 못하고 의자에 앉아 무거운 허리를 펴고 있었다. 지난 해 낙상으로 골절상을 입은 후로 엄마의 세상은 실내로 축소되었고 발이 감당해야 될 무게는 더욱 무거워지는 것 같았다. 엄마의 발에 실내화를 신겨드리자 발목과 발의 차가움이 손바닥으로 스며들었다. 차를 타기 위해 끓여두었던 물...
2021-01-25
세한도에 길을 묻다
새해가 밝았다. 새로운 희망을 말하기엔 코로나19의 시간이 아직도 엄혹하다. 어쩌면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게 돌아가는 것이 더 당연한 것처럼 느껴진다. 이 답답함을 잠시나마 덜어 보려고 국립박물관을 찾았다. 마침 추사 김정희의 특별전 소식과 함께 굴곡 많은 세한도(歲寒圖)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코로나19의 위세는 세한도를 향한 시민의 발길도 멈추게 만들었다. 세한도는 허름한 집 한 채와 소나무, 잣나무 네 그루가 전부이다. 추운 시절의 그림에 걸맞게 단순한 구도에 보는 것만으로도 쓸쓸함과 한기가 느껴진다. 원근법도 버리고 여백 가득히 대체 무엇을 담고 싶었을까. 그저 추사의 마음을 헤아려볼 뿐이다.사실 추사는 참 극적인 생애를 보낸 인물이다. 요즘으로 치면 금수저 집안 출신인데다 그의 학문세계는 청나라까지 소문이 날 정도로 빼어났다. 청과의 인연은 그가 24세 때 자제군관 신분으로 청나라를 다녀온 이후부터인데, 홍대용의 ‘을병연행록’이나 박지원의 ‘열하일기’만 보더라도 당시...
2020-12-29
엄마도 엄마를 사랑했으면 좋겠어. 날 사랑하는 것만큼
우연히 유튜브 알고리즘을 타고 한 강연을 봤다. 코로나 시대로 아이들이 잃어버린 것을 이야기하는 짧은 강연인데, 학생이 학교에 가지 못하고 늘 집에 있으니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게 되고 정체성이 흔들리면서 급기야 자존감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내용이었다. ‘직장인은 회사 가는데 학생은 학교 안 가고 집에서 쉬니까 좋겠네’라고 나조차도 가볍게 생각했던 적이 있는데, 아이들에겐 그런 시선이 불편하고 억울했을 터이다. 그 영상 바로 옆에 비혼 관련 영상도 추천 알고리즘에 포함되어 있었다. 자녀들이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배우자도 재택근무를 하면서 기혼 여성은 늘어난 집안일로 힘들어하지만, 미혼 여성은 삶의 만족도가 높아졌다는 인터뷰였다. 꼭두새벽에 나가 밤늦게 퇴근하느라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늘 부족한 게 직장인의 비애였는데, 24시간 붙어있게 된 게 어째서 축복이 아닌 울상으로 바뀌었을까? 나만 하더라도 올해는 성인이 된 이후 엄마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한 해 이자 집안일에 가장 적극...
2020-12-17
맨드라미 사랑
집으로 들어가는 아파트의 조그만 화단에는 자줏빛의 맨드라미가 아직도 피어있다. 처음에는 요즘 보기 드문 꽃이 피었구나 하고 생각하다가 찬바람이 부는 늦가을이 다가도록 피어있는 모습을 보면서 아마도 맨드라미가 나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꽃 모양이 수탉의 벼슬처럼 생겼다고 하여 계관화(鷄冠花)라고 부르는 맨드라미를 나는 어릴 적에는 좋아하지 않았다. 꽃이 예쁘지도 않은데다 흉측하게 생겨 바라보기조차 무서웠던 닭을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꽃에 얽힌 전설과 그 꽃말이 감동적이라 한 번씩 피어있는 모습을 볼 때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곤 했었다. 맨드라미 꽃에 얽힌 전설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주로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 충성을 다하는 신하 또는 닭의 이야기로 전해오고 있다. 옛날에 무예가 뛰어나고 성품이 곧은 무룡이라는 장군이 있었는데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무룡 장군을 간신 모리배들이 시기 질투하여 모함을 하였다. 무룡 장군...
2020-11-30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오늘은 노래에 대해 말을 걸어볼까 한다. 첫 번째 이야기. 필자의 큰 누인 어느 지방의 무형문화재로 우리 정가를 부른다. 다소 생소할 수 있겠는데 정가란 우리의 전통 성악으로 가곡이나 가사, 시조를 묶어 일컫는 말이다. 느린 가락에 매우 정적인 느낌이 있어서 옛 선비들이 즐겼던 장르이다. 정제된 형식의 가곡은 물론이지만 세줄 분량의 짧은 시조도 매우 긴 호흡으로 천천히 흘러간다. 영화 <해어화>에 나오는 ‘사랑이 거즛말이’를 감상해도 좋을 것이다. 따라서 정가는 흥보다는 멋의 음악이라고도 할 수 있다. 양반들의 풍류음악으로 인식돼 지금은 어느 정도 저변이 넓어졌으나 여전히 대중성은 낮다. 필자 또한 누이의 정기공연장을 몇 차례 찾긴 했지만 국어 시간 시조를 가르치면서도 시조창 한 곡을 제대로 전하지 못했다. 어쩌다 정가 영상을 보며 읊조리듯 따라 불러보기는 하지만 취향은 잘 변하지 않는다.또 하나의 이야기다. 대중가수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가 유행하던 시절에 가수의 ...
2020-11-12
조심스럽지만 전하고 싶은 말
재채기와 덕질은 숨길 수 없다는데 네이버웹툰에서 일하기 전부터 웹툰을 워낙 많이 읽는 거로 유명해서 웹툰을 추천해달라는 권유를 자주 받았다. 호기심으로 지나치듯 한 질문에도 외국인에게 인사동을 소개하는 마음으로 선호하는 장르, 연령대, 그림 취향까지 고려해서 추천해준다. 심지어 추천 이유까지 꼼꼼하게 적은 표를 만들어 줄 정도로 웹툰을 소개하는데 열정적이다. 웹툰을 한 번도 접해 본 적 없는 사람일수록 추천 작품 선정이 까다로운데, 인생 첫 작품이 웹툰 서비스에 대한 인상을 좌우하기에 인기 순위가 높은 대중적인 웹툰보다는 상대방의 마음에 꽂힐 만한 웹툰을 우선으로 여긴다. 최근에 어느 정사님과 차를 마시면서 종교와 관련 있는 웹툰이 있다면 읽어 보고 싶다는 의지를 비치셨다. 웹툰에 관한 관심이 감사해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웹툰을 당장 말씀드리고 싶었지만, 정성스럽게 웹툰 추천 표를 만들어서 드리고 싶은 마음에 신나는 마음을 억누르고 조금 더 생각해보고 답장을 드리겠다...
2020-10-27
간호사 그 아름다운 행보
하늘이 참 높고 맑다. 선선한 바람이 불 때쯤이면 저만치 바라보이는 구름, 달과 별들이 가을임을 알리고 있다. 머리도 가슴도 텅 비어 지는 느낌이다. 호숫가에 앉아 마스크를 착용한 등산객들을 보고 있노라면 아직도 바이러스와의 끝나지 않은 전쟁 속에 살고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그리고 그 전쟁의 일선에 서 있는 간호사들이 떠오른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지역 감염으로 확산되면서 간호사들은 드라이브스루 선별진료소에서도 일하게 되었다. 차에 탄 채로 동선을 따라 접수부터 문진, 체온 측정, 검체 채취, 소독 등 원스톱으로 진행되는 시스템으로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시작된 드라이브스루 선별진료소는 세계 언론이 혁신적 아이디어라고 극찬했다. 꽃샘추위의 칼바람이 피부 속으로 파고들 때 코로나19 바이러스 퇴치를 위하여 선별진료소 간호사들은 방호복과 N95 마스크, 모자, 장갑, 덧신으로 무장을 하고 일선에 섰다. 방호복은 벗는 과정에서 자칫 바이러스가 묻을 수 있기 때문에 한 번 입고 나면 근무...
2020-10-12
슬로리딩과 얼리어답터
송나라 문장가 구양수는 글쓰기의 비법으로 다독(多讀), 다작(多作), 다상량(多商量)을 강조했다. 많이 읽고 많이 써보고 많이 생각해보라는 말이다. 그런데 최근에 여러 권의 책을 많이 읽는 것과 한 권의 책을 천천히 깊게 읽는 방법 중에서 후자의 가치에 주목하기도 한다. 소위 슬로리딩이라고 하는데 교육 현장의 ‘한 학기 한 권 읽기’도 여기에 해당한다. 속도의 시대일수록 천천히 읽으며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자신의 생각을 말과 글로 표현하고, 자신의 삶과 이어지게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슬로리딩의 궁극적 목적은 주체적으로 생각하는 힘을 기르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풀리지 않는 문제 하나를 붙잡고 몇 시간을 골몰하는 친구와 잘 모르는 문제는 넘기고 제한된 시간 안에 문제를 풀어내려는 친구 중에서 전자의 경우는 단기전보다 장기전에서 더 큰 성과를 낼 수도 있다. 슬로리딩 만이 최선은 아니겠지만 한 권의 책을 천천히 읽으며 스스로 질문하고 스스로 해답을 찾기 위해 다른 책도 겹쳐 읽다 보...
2020-09-22
유치한 관계
어릴 땐 넓은 집이 부러웠는데, 커서는 남매간 우애가 좋은 집이 부럽다. 사회생활에서 어색한 침묵을 깨는 기본 질문 중 하나인 “가족관계는 어떻게 되세요? 동생 있어요? 첫째예요?”라는 평이한 질문에 동생과 사이가 좋다고 대답하면 그때부턴 대단한 사람을 만난 것처럼 순식간에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 우애를 중시하는 가족 분위기 때문 일수도 있고, 어릴 때 유달리 함께했던 추억이 많을 수도 있겠지만, 아무런 노력 없이 그런 관계가 하늘에서 뚝 떨어질 리 없다. 남동생과 유난히 사이가 좋은 신입사원은 게임을 하는 게 취미다. 최고의 게임파트너는 남동생이라며 남자친구랑 할 때 보다 오히려 훨씬 더 과격하고 적극적으로 즐길 수 있다고 한다. 비단 남매, 형제뿐 아니라 또래 사촌들과 유난히 사이가 좋은 집안에도 눈길이 간다. 영화 포스터 한 장면처럼 잔뜩 멋을 부린 여섯 명의 사촌이 스튜디오에서 다양한 컨셉으로 찍은 사진에는 그들만의 청춘과 젊음이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닮은 듯 안 닮은 듯...
2020-08-28
공감에 대하여
학교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멀리서도 눈에 확 들어오는 문구가 있다. ‘공감 교육’날마다 보는 문구이기 때문에 낯설지 않지만 막상 공감교육을 생각하면 어려워지는 문구이다. 나는 대학생이 되어 정신간호학 수업에서 공감의 의미에 대해 배우기전까지 공감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한 기억이 없다. 공감보다는 이해, 동정과 같은 단어를 더 많이 사용했던 것 같다. ‘공감(empathy)을 지향하고 동정(sympathy)을 지양하라’는 말의 의미가 가슴에 와 닿지가 않아서 수업 시간에 교수님께 동정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좋은 감정인데 왜 동정을 하지 말아야 합니까? 라고 끊임없이 묻고 물었다. Wispe라는 학자는동정에서는 타인의 고통을 감소시키고자 하는 자각이 강하고 같은 감정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여 객관적인 태도를 취하기 어렵다. 공감에서는 타인의 경험에 대한 비판단적 이해를 위한 자기자각이 강조되고 자기 자신은 타인을 이해하기 위한 도구로써 사용되지만 결코 자신의 정체감이 상실되지는 않는다....
2020-08-10
관계의 아득함
시인과 촌장은 ‘가시나무새’에서, 내 속에 내가 너무 많다고 노래한다. 내 속에 있는 수많은 내가 가시가 되어 당신의 진입을 가로막는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인간은 한없이 강한 듯 나약하고, 매우 온화한 듯 공격적인 존재다. 문제는 어떤 내가 항상성을 가졌는지, 어떤 내가 변심이 가득한지 알 길이 없다는 점이다. 나와 또 다른 나 사이에 수시로 전이가 일어나지만 나는 그것을 눈치 채지 못한다. 물론 스스로 완벽하다는 이들은 이 점을 잘 수용하지도 않는다. 이런 전제 속에서 본다면 ‘나’의 삶에서 가장 어려운 분야는 ‘타인’과 관계를 맺는 일이다.사람과 사람이 만나 길을 놓고 공장을 짓고 학문을 세우고, 그래서 생산성도 높이고 그렇게 모든 분야의 문화와 역사를 발전시켜온 것인데, 그런데 생각해본다. 무엇 때문에 사람과 사람 사이에 벽이 생기고 생채기가 나고 심지어 죽고 죽이기까지 하는가. 그것도 가장 가까운 가족이나 회사 동료 사이에서 관계가 어긋나 힘들어하는 사람이 꽤 있다. 가장 ...
2020-0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