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속 갈등은 불편하다. 말을 꺼내자니 일이 커질까 두렵고, 덮자니 어금니에 낀 고기처럼 찝찝하고 거슬린다. 1대1 관계일 땐 그나마 다행이다. 관계를 함께 맺고 있는 사람이 많을수록 나와 당사자 외에도 보는 눈과 오가는 마음이 많으니 더욱 골치가 아프다.
개인과 개인이든, 집단 속의 관계든 갈등이 생겼을 때 고려되는 해결책 중 하나는 ‘손절’이다. 조금 더 우아하게 표현하자면 시간을 두고 서서히 거리 두기. 긁어서 부스럼 만드는 꼴 같아서, 나만 참으면 넘어갈 수 있는 일 같아서, 그리고 서서히 멀어져서 상대와 더는 부딪힐 일을 만들지 않으면 모두에게 윈윈인 상황처럼 보여서 조용한 거리감으로 상황을 해결한다. 타당한 선택이다. 나 또한 그런 적이 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요즘은 마음만 먹으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얼마든지 있고, 혼자서도 잘 살 수 있다고 착각하기 쉬운 시대라서 함께 문제를 들여다보는 불편함을 감수하기 보다는 다른 관계로 그 자리를 대체하는 게 아닐까? “안 보면 그만이지” 같은 태도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질문이 하나 생긴다. 우리가 ‘손절’을 선택함으로써 상대방 외에도 잃고 있는 건 없을까? 관계에서 갈등이 불가피하다면 내 마음을 잘 표현하고, 상대방의 마음도 잘 들어보고, 서로 좀 더 이해하고, 조율할 수 있을 텐데, 관계를 좀 더 숙성시킬 연습을, 그럴 기회를 잃고 있는 건 아닐까?
오랜 앙숙이 아니고서야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고 싶은 의도에서 비롯된 갈등이 많지는 않다. 나와 상대방의 가치관이 다르고,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고, 이 차이를 서로가 잘 모르기에 비롯된 갈등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말을 잘하면 반은 간다. “나는 이런 사람이고, 저런 방식을 원했어. 내 의도가 너를 곤란하게 하려던 건 아니었는데 우리 조율할 부분을 같이 찾아보자.” 그리고 마음 상하게 해서 미안하다고 덧붙이면 더할 나위 없다. 이러한 솔직한 고백은 새로운 가능성을 향해 상대방의 마음을 활짝 열게 할 뿐만 아니라 이 과정을 함께 잘 소화하고 나면 평소에 느끼지 못하는 마음과 관계를 경험한다. 어렵게 말을 꺼낸 사람의 용기와 관계에 대한 의지가 전달되어 서로 간의 신뢰도 한 겹 두텁게 쌓인 기분이 들고, 무엇보다 서로를 진실하게 ‘정말로 만난 기분’이 든다.
손절이라는 우아한 거리 두기는 분명 깔끔하다. 하지만 사람과 사람이 부딪히며 생기는 열은 관계를 무너뜨리기만 하는 게 아니라 더 단단하게 익히는 온도일 수도 있다. 매끄럽고 안전하지만 서로가 서로를 더 알아갈 기회가 없는 관계보다 조금은 불편하고 울퉁불퉁하더라도 서로의 진심을 확인하며 한 뼘 더 깊어지는 만남이 있다. 어쩌면 우리가 흘려보낸 건 그 사람만이 아니라 관계를 다루는 내 힘과 더 깊어질 수 있었던 가능성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전소현/심리상담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