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보리수

마음에도 시력이 있다면
사람들은 눈이 나쁘면 안경을 맞춘다. 흐릿한 것을 또렷하게 보기 위해서다. 비가 오면 우산을 쓰는 것처럼 명쾌하고 단순한 일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이 흐릴 때는 그대로 두는 경우가 많다.같은 말을 들어도 어떤 날은 괜찮고, 어떤 날은 오래 마음에 남는다. 상대의 말이 달라서가 아니라 그날의 ‘마음 상태’가 달라서일 때가 더 많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늘 정확하게 보고 듣고 느끼고 있다고 믿는다.서운함도, 분노도, 불안도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그 마음이 정말 또렷한 상태인지에 대해서는 좀처럼 의심하지 않는다. 어쩌면 우리는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계속 해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마음에도 시력이 있나보다.어느 날은 근시처럼 가까운 감정만 또렷하다. 지금의 서운함은 커지고, 고마운 장면들은 멀어진다. 또 어떤 날은 난시처럼 모든 것이 어긋나 보인다. 실제보다 더 날카롭게, 더 차갑게 받아들인다.마음이 흐려지는 까닭은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좋고 싫...
2026-03-26
우아한 거리 두기로 무엇을 또 잃고 있나
관계 속 갈등은 불편하다. 말을 꺼내자니 일이 커질까 두렵고, 덮자니 어금니에 낀 고기처럼 찝찝하고 거슬린다. 1대1 관계일 땐 그나마 다행이다. 관계를 함께 맺고 있는 사람이 많을수록 나와 당사자 외에도 보는 눈과 오가는 마음이 많으니 더욱 골치가 아프다. 개인과 개인이든, 집단 속의 관계든 갈등이 생겼을 때 고려되는 해결책 중 하나는 ‘손절’이다. 조금 더 우아하게 표현하자면 시간을 두고 서서히 거리 두기. 긁어서 부스럼 만드는 꼴 같아서, 나만 참으면 넘어갈 수 있는 일 같아서, 그리고 서서히 멀어져서 상대와 더는 부딪힐 일을 만들지 않으면 모두에게 윈윈인 상황처럼 보여서 조용한 거리감으로 상황을 해결한다. 타당한 선택이다. 나 또한 그런 적이 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요즘은 마음만 먹으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얼마든지 있고, 혼자서도 잘 살 수 있다고 착각하기 쉬운 시대라서 함께 문제를 들여다보는 불편함을 감수하기 보다는 다른 관계로 그 자리를...
2026-0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