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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탐라국, “이 좋은 햇볕 그냥 보내면 죄짓는 거다”

밀교신문   
입력 : 2025-03-25  | 수정 : 2025-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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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지에 살 때는 햇볕이 귀하고 고마운 줄을 미처 몰랐다. 나는 영국에 가본 적도 살아본 적도 없지만 내 짧은 상식을 총동원해 영국에 와 있다는 착각을 하곤 한다. 햇볕이 없는 날, 비가 오고 흐린 날에는 유독 심했다. 육지에 대한 향수병까지 생겼다. 스코틀랜드의 기후가 해양성기후라는 것을 떠올리며 제주도가 그와 비슷하지 않을까라는 상상을 자주 해본다. 시도 때도 없이 흐렸다 맑아지고 비가 오다 개는 날씨 탓에 어디 외출이라도 할라치면 반드시 우산은 필수다. 그래서 제주에선 햇볕이 귀한 대접을 받는다.

 

태곳적 사람들도 저녁에 불을 피웠겠지. 춥거나, 허기지거나, 구군가에게 도움을 구하고 싶을 때라는 김애란의 소설 <바깥은 여름>에 나오는 문장이다. 나는 이 대목에서 부처님의 따스한 마음인 등불이 보인다. 그것을 햇볕이라 해도 좋고, 불이라 해도 좋고, 희망의 등불이라 해도 좋다. 인간이기에 인간만이 품을 수 있는 생명의 빛 비로자나의 빛을 최근에 읽은 김애란 소설 곳곳에서 만났다. “지용이가 마지막에 움켜쥔 게 차가운 물이 아니라, 그때 권도경 선생님이 우리 지용이의 손을 잡아주신 마음에 대해란 지용이 누나의 편지 어쩌면 그날 그 시간, 그곳에선 죽음에 뛰어든 게 아니라, ‘에 뛰어든 게 아닐까.”라는 가슴 서늘한 문장도.

 

제주 와서 이 귀한 햇볕을 만나면 감사하다는 생각이 저절로 더 간절해진다. 육지에 있었으면 감히 상상도 못했을 작고 사소한 것들에 대해 새삼스레 생각한다. 2월 중순, 큰 맘 먹고 제주 민속오일장에 나가 보았다. 내가 상상했던 오일장보다 규모가 훨씬 컸다. 삶이 죽음이 아니라는 것을 생생히 느끼고 싶을 때 시장에 가보라는 누군가의 말이 문뜩 떠올랐다. 삶이 삶에 뛰어든 절박한 삶의 현장을 발견하려면 새벽 시장에 나가보라는 말이 있듯이 새벽 시장은 삶의 애환이 속속들이 묻어나는 살아 숨 쉬는 삶의 공간이란 의미일 것이다.

 

민속오일장이 처음이기도 했지만 내가 예상했던 것 외로 다양한 종류의 물품들과 시장 규모에 놀랐다. 무엇보다 보살님을 금방 찾을 수 있으리라는 나의 자만이었다. 결국 보살님의 도움을 받아 보살님 댁에서 운영하는 뻥튀기 가게를 찾을 수 있었다. 가게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 온 것 역시 뻥튀기 기계였다. 뻥튀기 기계는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옛날식 보다는 현대식에 가깝게 개조되어 있었다. 옛날식 그대로는 아니지만 뻥튀기를 직접 튀기는 가게는 점점 사라져 가는 추세이다. 그래도 내외분께서 친정아버님의 명맥을 이어 민족오일장의 향수을 재현할 수 있는 유일한 또 다른 풍경을 오래 볼 수 있기를 내심 바라본다.

 

햇볕 쨍한 어느 날 제주 이사 와서 얼마 되지 않아 동네 한 바퀴를 산책하며 깜짝 놀랐다. 음식점 간판마다 몸국이란 글자를 보며 사람 먹는 음식에 하필이면 몸이란 글자를 붙였는지 너무 무서워 저 국은 절대 못 먹지 싶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무섭기도 하지만 살짝 궁금하기도 했다. 심인당으로 돌아와 곧바로 몸국이 무엇인지 검색해 보았다. 제주 향토음식으로 몸은 모자반의 제주 방언이라고 설명돼 있었다. 언젠가 나도 몸국 배지근하다라고 말할 수 있기를.

 

나는 이런 문장을 쓴 적이 있다. “새해에도 따뜻한 햇볕과 손길을 부지런히 나누어 줄게라는 제주에서 또다시 시작하자. 부지런히 실천하자. 제주 사람들의 관용어처럼 이 좋은 햇볕 그냥 보내면 죄짓는 거다.” 햇볕 좋은 날 맨발로 세계를 유행하신 부처님을 떠올리며 종조님 기운 받아 어디로든 떠나시라. 그곳에 우리를 기다리는 유무형의 중생들을 위하여.  

 

수진주 전수/식재심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