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한국의 육자진언

공주 마곡사 대웅보전
공주 마곡사는 신라시대 창건되었다고 전한다. 그 이후 폐사되었던 것을 고려시대 보조국사가 중창하였으며, 조선시대 들어와 임진왜란 때 다시 폐사되었다. 이후 1651년에 와서 대웅전, 영산전, 대적광전 등이 중건되었다고 한다. 대웅보전은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약사여래불과 아미타불을 모시고 있다. 건물 규모는 1층이 정면 5칸, 측면 4칸이며, 2층은 정면 3칸, 측면 3칸이고, 지붕은 팔작지붕이다. 건물은 다포 양식으로 조선시대 2층 구조의 건물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건물 내부 천정의 우물반자에 육자진언이 새겨져 있다.
2019-07-26
익산 숭림사 보광전
익산 숭림사는 고려후기인 충목왕 때 창건된 것으로 전한다. 보광전은 숭림사 가람의 중심 금당으로 규모는 작지만 17세기 이전 건립된 건물로 추정되고 있다. 보광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규모이며, 지붕은 맞배지붕이다. 공포부는 다포양식으로 결구되었으며, 측면에는 공포를 배치하지 않았다. 건물 내부 천정의 우물반자에 육자진언을 새겨 넣었다.
2019-07-08
홍천 수타사 대적광전
홍천 수타사는 신라 성덕왕 때 일월사로 창건되었으며, 조선 선조 때 현재의 자리로 옮겨 지으면서 사명(寺名)을 바꾸었다고 한다. 이후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자 1636년 대적광전을 중건하여 법등을 이어 나갔다. 현재 대적광전은 수타사의 중심 법당으로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로 지붕은 팔작지붕이다. 공포부는 다포양식을 적용하였다. 대적광전은 강원도에서 조선후기의 대표적인 건물이며, 건물 내부 천정의 우물반자에 육자진언을 새겨 넣었다.
2019-06-26
부안 개암사 대웅보전
개암사는 백제 때 창건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고려시대 원감국사에 의하여 크게 중창되었다고 한다. 이후 조선후기에 여러 번의 중수를 거치면서 법등이 지속되었다. 대웅보전은 울금바위를 등지고 남향으로 건립되었는데, 기단은 2중이며, 정면 3칸, 측면 3칸의 건물 규모로 다포양식이며, 팔작지붕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웅전은 1636년 계호대선사가 중건한 것이며, 그 이후 1783년과 1913年에 중수가 있었다. 건물 내부의 천정을 층급 천정으로 구성하였는데, 우물반자에 육자진언을 새겨 넣었다.
2019-06-05
김제 금산사 대장전
김제 금산사는 백제 법왕 때 창건된 사찰로 전해지고 있다. 금산사 대장전은 조선 후기인 1635년 다시 지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원래는 미륵전 앞뜰에 세워 불경을 보관하던 건물이었다. 이후 1992년 현재의 위치로 옮겨 지어 불상을 봉안하여 법당 역할을 하도록 했다. 대장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건물로 지붕의 형태는 팔작지붕이다. 건물 내부 천정은 우물천정인데, 그곳에 연화문을 새기고 육자진언을 새겼다.
2019-05-15
강화 전등사 대웅보전
강화 전등사는 고구려 아도화상이 창건하였다고 전하지만 알 수 없으며, 고려시대까지의 연혁은 전하는 내용이 거의 없다. 다만 조선후기인 1605년과 1614년 큰 불로 전소되었다고 한다. 이듬해 중건을 시작하여 1621年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고 한다. 대웅보전은 1621년 중건된 건물로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팔작지붕이다. 공포는 다포양식으로 구성되었다. 이 건물은 조선 중기 이후의 건축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대웅보전 내부의 천정 우물반자에 육자진언을 새겼다.
2019-04-23
창녕 관룡사 대웅전
창녕 관룡사는 통일신라시대 창건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관룡사 대웅전에는 석가모니불, 아미타여래불, 약사여래불을 봉안하고 있다. 이 건물은 1965년 발견된 기록에 의하면 1401년 초건되었는데, 임진왜란 때 불타 버리자 1617년 중창하였다고 한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규모로 지붕은 팔작지붕이며, 공포부는 다포양식을 적용하였다. 건물 내부의 공포부와 천정 등에 여러 진언 다라니를 새겨 넣었다.
2019-04-08
의성 대곡사 대웅전
의성 대곡사는 고려말기 원나라에서 고려를 방문했던 指空이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 이후 임진왜란 때 전소되자 1605년 탄우화상이 중창하면서 대곡사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건물로, 지붕은 팔작지붕이며, 공포부는 다포양식이다. 대웅전 내부 천정의 우물반자에 육자진언을 새겨 넣었다.
2019-03-25
강진 무위사 극락보전
강진 무위사는 신라 진평왕 때 원효대사가 관음사라는 이름으로 창건하였으며, 그 이후 여러 번에 걸쳐 중창과 중건을 거듭하면서 어느 시기에 무위사로 바뀌게 되었다. 무위사 중심 법당인 극락보전은 1430년(세종 12년)에 건립되었으며, 정면 3칸, 측면 3칸 건물이다. 건물은 지붕이 맞배지붕이며, 기둥 위에만 공포가 마련되어 간결하고 세련된 기법을 보여주고 있다. 극락보전 안에도 불상을 비롯하여 화려한 단청들이 돋보인다. 이 건물은 조선 초기 양식을 갖추고 있는 건물로 주목 받고 있다. 천정의 우물반자 안을 연화문처럼 장식하고, 연꽃에 육자진언을 새겨 넣었다.
2019-02-26
안동 봉정사 대웅전
안동 봉정사 는 신라 신문왕 때 의상 대사가 창건했다고 한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의상 대 사가 법력으로 영주 부석사에서 날린 종이 봉황(鳳凰)이 이곳에 내려 앉아 봉정사(鳳停寺)라 불렀다고 한다. 대웅전은 조선전기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는 귀중한 건물이며, 정면 3칸, 측면 3칸이며, 지붕은 팔작지붕이고, 공포부는 다포양식이 적용되었다. 건물 정면에 툇마루를 설치한 것이 특징적이다. 건물 내부 천정에 다양한 범자체를 활용하여 진언다라니를 새겼다.
2019-02-07
순천 송광사 국사전
순천 송광사는 승보사찰로 우리나라 3대 사찰 중에 하나이다. 송광사는 신라시대 창건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고려시대 16국사가 배출된 유서 깊은 사찰이다. 송광사 국사전은 고려후기부터 조선초기까지 있었던 16국사의 영정을 모시고, 그 덕을 기리기 위하여 세워진 건물이다. 고려 공민왕 때 창건되었으며, 이후 여러 번에 걸쳐 중수가 이루어졌다. 국사전은 정면 4칸, 측면 3칸의 규모이며, 지붕은 맞배지붕이고, 공포부는 주심포 양식이다. 건물 내부 천정을 정자형(井字形)으로 구성하였는데, 우물반자 안에 육자진언을 새겨 넣었다.
2019-01-03
통영 안정사 가엽암 진언도(統營 安靜寺 迦葉庵 眞言圖)
통영 안정사는 669년(문무왕 9년) 원효대사의 제자였던 봉진 스님이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후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조선 인조 때 벽봉화상에 의하여 중창되었다고 한다. 벽봉화상은 1641년 강원도 영은사 팔상전을 창건하기도 했다. 가엽암은 기와에 새겨진 명문 등으로 보아 1647년을 전후한 시기에 대대적으로 중창된 것으로 보이는데, 그러한 사실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하여 중창 직전에 상량문과 자륜형 진언도 등을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진언도는 상량문과 함께 수습된 것으로 보아 상량문이 만들어진 1645년 필사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진언도의 외곽에 종자와 육자진언이 실담체로 둥그렇게 묵서되었다.
2018-12-10
불정심인과 육자진언 인쇄본
이 다라니는 한 장의 종이에 목판으로 인쇄한 것인데, 가운데에는 세로로 만다라(曼茶羅)와 불정심인(佛頂心印) 등을 배치하고 좌우에 법어로 쓴 육자진언을 새겨 넣었다. 만다라와 불정심인 등이 고식 수법을 보이고 있으며, 육자진언의 범자체도 고려후기에서 조선초기에 걸쳐 일반적으로 사용된 실담체(悉曇体)이다. 불정심인과 육자진언을 통한 기복적 성격으로 제작된 것으로 보이며, 불상 등에 복장물로 봉안하기 위하여 인쇄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다라니는 만다라와 불정심인, 육자진언등 신앙의 대상이자 밀교적 특성을 보여주는 여러 가지 도상(圖像)을 하나의 종이에 인쇄하였다는 점에서 학술적으로 중요한 자료이다.
2018-11-22
범자원상만다라(梵字圓相曼茶羅) 인쇄본(1322年)
이 다라니는 1322년 조성된 천수관음상의 복장물로 봉안된 것임을 남아있는 발원문을 통하여 알 수 있다. 발원문을 비롯한 다라니만 전해지고 있으며, 불상은 남아있지 않다. 또한 불상이 있었던 사찰도 알 수 없는 실정이다. 불상은 발원문에 의하여 1614년 개금되었음을 알 수 있다. 현존하는 범자원상만다(梵字圓相曼茶羅)라는 처음 불상 조성 시에 봉안되었던 복장물로 보인다. 범자원상만다라는 한지에 만다라를 도장처럼 찍어 배열하였다. 이중에서 육자진언이 새겨진 만다라는 자륜(字輪) 형태로 배치되었다. 당시 다양한 형태로 범어로 된 진언 다라니를 새기는 방식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만다라는 개인이 소장하고 있다.
2018-11-06
대비로자나성불경등일대성교중무상일승 제경소설일절다라니
이 다라니는 원래 전체가 47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불상이나 불탑의 봉안물로도 제작되었다. 다라니에 새겨진 전체 진언 수는 원래 약 510개 내외로 구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다라니의 권말에 국왕이 수를 누리고, 나라가 태평하기를 바라며, 법계는 두루 깨달음을 얻고, 고통을 벗어나서 즐거움을 얻고자 하는 기원과 함께 널리 다라니를 유포하고자 하는 의도가 담겨있다. 다라니에 새겨진 여러 진언 중에 육자진언이 있다. 이 다라니는 고려시대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어, 상당히 빠른 시기의 육자진언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자료이다. 이 다라니는 위덕대학교 회당학술정보원에 소장되어 있다.
2018-1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