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것만을 선호하며 변화에 대한 두려움을 품고 살아왔다. 결과가 예측되지 않는 일엔 타인의 선례가 없다면 도전하지 않기. 코로나 때문에, 일 때문에 바빠서라는 이유는 핑계가 아니었을까? 낯선 땅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며 스스로를 한층 더 단단하게 만들고, 용기를 얻고 싶다는 마음으로 스리랑카 국제자원봉사에 지원하게 되었다. 모호한 미래에 대한 불안과 설렘을 갖고 도착한 스리랑카에서의 활동은 예상보다 더 깊은 울림을 선사해주었다.
우리 조는 4학년, 6학년, 10학년 학생들과 함께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첫 수업은 AI를 활용하여 스리랑카 이름을 한국 이름으로 바꾸고 한글 명찰을 만들어 자신의 이름을 한국어로 적어보는 작은 순간조차도 아이들에게는 신기하고 특별한 경험이었다. 나도 ‘켄달’이 되었다. 켄달과 학생들은 부채, 부부젤라, 염주 등 만들기를 통해 손끝에서 피어나는 색채와 이야기를 공유했다. 또한 ‘그림자 잡기’,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딱지치기’ 등 다채로운 전통놀이 속에서 손과 손을 맞잡으며 친밀해져갔다.
특히, K-POP 아파트와 신나는 와카와카 노래에 맞춰 춤출 때는 말이 아닌 몸짓과 표정만으로도 충분히 교감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서로 다른 문화의 벽을 허물고 하나의 리듬 속에서 하나가 되었다. 회향제에서 헤어짐에 아쉬워 울 때, 나를 진심 어린 표정으로 바라보며 토닥이던 아이들을 보며 때론 익숙하고 달콤한 위로의 말보다 더 강한 울림을 준다는 것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봉사수업이 마무리 되어갈 때 즈음, “요즘 경진이는 사진에 웃는 모습이 없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우리 조에서 영어로 학생들과 소통하는 역할로서 수업을 대부분 이끌어 나갔는데, 소통에 불편함은 없었지만 아이들과 오랜 기간 보았던 담임 선생님이 아닌 타국의 이방인이 있으니 호기심과 자유로움에 수업분위기는 한없이 가벼워졌다. 그 때마다 목소리는 나 혼자였고 다른 조원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조원들은 역시 나를 바라보며 내가 무슨 말을 해주길 바라였다. 마이크를 차고도 목소리가 안 들려서 소리칠 때가 되었을 때, 창민 선생님이 조원들에게 같이 나를 도와주라고, 나 또한 힘들면 조원에게 도와달라고 부탁하라고 말씀하셨다.
그 때 깨달았다. 책임이 눈을 가려 믿음을 잊어 버렸구나. 한국에서도 비슷하게 책임을 갖고 했던 일이 있었는데 혼자 해결하려고 하다가 실수를 했던 적이 있다. 그 모습을 보고 한 사람은 너무 용감한 행동이라고 하며 책잡았다. 당시는 잘 해보려고 한 거라 스스로를 다독이고 의아했는데, 나에겐 의지할 수 있는 많은 사람이 있고 함께 협력하면 쉽게 해결할 수 있구나. 내가 원한다면 언제든지 기대어도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겠다.
2년 전부터 스리랑카는 정기적 또는 수시로 정전이 잦다고 한다. 그 사실을 몰라 봉사단이 콜롬보로 문화탐방을 갔던 날, 우리는 원했던 밝고 화사한 분위기의 식당에서 시원한 에어컨과 차가운 음료수 대신, 땡볕의 야외에서 공복으로 개미와 싸워야했다. 그 순간에도 당황하거나 불평하는 대신 자연스럽게 그저 미소를 머금고 여유롭게 기다리며 대화하는 현지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안타깝기도 하고 대단하고 놀라웠다. 갈레에서의 탐방도 역시 밤에 노란 전구 빛으로 아름다웠던 동네가 잠시 정전이 되었다. 그 순간, 전구 빛에 띄지 않았던 별빛 가득한 밤하늘이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어두운 곳에서도 밝다고 생각하니 불이 꺼져 구경하던 상점, 음식점이 문을 닫아도 속상하지 않았다. 환경은 사람의 생활에 중대하게 영향을 미치지만 사람의 생각은 더 강력하다. ‘럭키비키’라는 유행어처럼 다함께 항상 긍정적으로 살자.
관리가 완벽하지 않은 숙소에선 가끔 쥐나 벌레가 나타났고, 돌아가며 아픈 친구들이 많았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봉사단은 서로를 챙기며 첫날 정했던 생활 약속은 어디 간 듯 먼저 나서 힘든 일을 도맡아 수행하고 협력했다. 함께 나누는 배려와 믿음이 만들어낸 유대감은 더욱 빛나고 단단해졌다. 내가 아프지 않고 밤마다 즐겁게 게임하며 배부르고 행복하게 지낼 수 있었던 이유였던 봉사단이 무척이나 고맙다.
익숙한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상 속으로 한 걸음 내디뎠던 만큼, 앞으로도 변화와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고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며 성장해 나갈 것이다. 선택의 순간에 조금 망설이더라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스리랑카에서 배운 따뜻함과 여유로움을 가슴 깊이 새기며, 내 삶 속에서도 그 여운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다. 강렬한 뙤약볕에 타버린 피부색과 벗겨진 살 껍질을 보며 이 모험을 추억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