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꼭짓점을 위해

밀교신문   
입력 : 2026-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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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선혜심인당 현승 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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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0월 조카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머니가 돌아 가셨단다. 

학창시절 자꾸만 옆길로 빠지는 나를 붙잡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쓰시는 그 노력을 뿌리치고, 끝내 학교를 떠나는 나에게 “너 지금 가면 영원히 후회한다.”는 최후통첩에 무슨 개선장군이 된 마냥 “나는 후회 안 한다.” 큰소리 뻥치며 떠난 지 40여 년, 그러나 후회 않는다는 그 말 전부 거짓말이란 걸 고백한다. 왜냐하면 지금껏 나는 ‘탐·진·치’에 억눌려 있었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그것을 꼭꼭 숨기며 살아 왔으니까. 자책감에 기를 펴지 못하고 지내다 집사람을 만나서도 무슨 도둑고양이처럼 결혼을 하였으니까. 죽음은 누구도 피할 수 없다지만, 불과 두 달 전 같이 여행을 다녀왔는데, 그것이 결국 이별여행이란 말인가. 장례식에 가면서도 믿기지 않았다. 입관식을 할 때도, 화장을 할 때도 울고, 또 울어도 가슴만 답답할 뿐이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어머니를 따라 절에 다닌 인연으로 당시에 다니던 사찰의 스님의 가르침에 108배 불공만 했다. 왜 내가 불공을 하는지도 미처 모르면서, 내 생애 가장 열심히 하고 있었다. 앞으로도 이런 길고 긴 불공은 하지는 말자 생각하면서도 오로지 그렇게 집중하고 있었다. 천주교 신자인 누님은 이 모든 과정을 멀리서 지켜만 볼뿐 어찌하지 못하시며 안타까워했는데 결국 영원히 볼 수 없는 그 길을 떠나보내고, 내려오니 뭔가 이상했다. 단순한 허전함이 아니었다. 왜일까? 해결책을 찾기 위해 40여 년 전 세상을 떠나신 큰 누님, 둘째 누님 묘소를 다녀 보아도 알 수 없는 그 무엇을 마지막으로 어머니의 둥지를 찾고서야 비로소 불현듯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바로 부처님의 ‘두 번째 화살’이었다. 

 

불행 끝, 행복 시작이라는 꿈의 마지막 혼신의 노력을 하던 30여 년 전, 온 나라가 비상에 걸려 갈팡질팡하던 ‘IMF사태’가 발생했고, 그 불길은 나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계획한 모든 것이 눈앞에서 날아가는 것을 지켜보는 순간, 그것은 순간으로 끝나지 않았다. 이후 시간이 지날수록 깊이를 알 수 없는 우울증이라는 수렁으로 빠져 들고 있었다. 누굴 원망하고, 어디에다 하소연하며, 어떻게 화풀이를 해야 하나 갈피를 잡지 못하던 그때, 급기야 폭력을 쓸 준비 태세를 갖추던 내게 ‘두 번째 화살’이라는 부처님의 말씀이 머리를 두들겼다. 성당에 다니시던 누님이 내게 이런 깨우침을 주고, 떠나신 모양이구나. 생각하니 간절하기 말 할 수가 없다. 집으로 돌아와 이제 어찌해야 하나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곰곰 생각에 잠긴 어느 날, 새벽불공을 가기 위해 자전거를 타고 집을 나서는 아내의 뒷모습을 보고 문득 떠오른 것이 “근본을 바꾸자.”는 생각이었다. 그것은 조계종에서 진각종으로 자리를 옮기는 것이었다. 

 

누님이 돌아가시고 두 달이 지난 12월 어느 날 식사를 하며 은근히 집사람에게 “이제 나도 심인당에 갈까?”라는 그 말에 기다렸다는 듯이 아내의 눈이 동그래지며 동시에 일사천리로 일은 진행 되었고, 이듬해 2012년 새해대서원불공을 새로운 둥지인 선혜심인당에서 시작했다. 그때 선혜심인당에는 잊을 수 없는 덕운 정사님과 심법정 전수님이 계셨다. 특히 나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주신 잊어서는 안 되는 심법정 전수님은 거의 매달 집을 방문하여 불사를 해주셨고, 내가 심인당에서 불공을 할 때면, 더울까 선풍기를, 추울까 온풍기를 켜 주시며 살뜰히 뒤를 돌보아 주셨다. 

 

그러던 그해 10월의 어느 날 “각자님 다음 달 수계식이 있는데 참가하세요.”하신다. 절에 다닐 때도 어머니는 수계식을 많이 다니셨는데 나는 왠지 가지 않았다. 며칠 후 자성일 불사를 마치고, 계단을 내려오는데 다시 수계식 말씀을 하신다. 그때 다음으로 미루자는 나의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나의 어깨 죽지를 탁 내려치시며, “내일이 어디 있어요, 명단을 낼 테니 참가하세요.” 느닷없는 호통에 나도 모르게 승낙을 했다. 수계식이 진행되고, 마침내 ‘현승(現承)’이라는 불명이 적힌 계첩을 받아 드는 순간,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지금하고 있는 택시 운전을 계속 하라는 뜻이라 생각을 하니 20여 년 간의 길고 긴 우울증의 늪이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쳐가며 눈물, 콧물 아낌없이 쏟아내는 부끄러운 장면을 연출했다. 

 

과거도, 현재도, 미래의 마음도 또한 얻을 것이 없다는 금강경을 그렇게 수지독송하였건만 나의 능력 부족인지 결국 문자에 불과하다는 종조님의 말씀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눈앞에서 산산 조각난 나의 꿈, 그리고 나의 초라함에 진저리를 쳤었는데 이제 그 길이 최선이라 한다. 어쩔 수가 없지 하며, 지금껏 운행 중이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라던데 요즘은 노인들을 우선 태워 가면서 그들과 삶에 대해 얘기 하는 재미는 가히 명작이다. 이렇게 가벼운데 왜 그랬을까? 지금 전수님께 부탁드리고 싶은 말이 떠오른다. 허망하게 지나간 나의 꿈같은 시절을 돌려받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수계불사 이듬해 봄, 집을 방문하신 심법정 전수님은 노보살님들을 위해 심인당 차량 운행을 부탁하시기에 마지막 봉사의 기회라 생각하고 기꺼이 승낙을 하였다. 삶이었던 택시운전과 심인당 차량 운전을 하던 그해 가을에 덕운 정사님과 심법정 전수님은 수원 유가심인당으로 바람처럼 떠나가셨고, 이제부터는 온전히 홀로서기의 순간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14년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 소리 없이 지나가고, 2026년 새해가 밝아왔다. 올해는 말띠인 나의 해라 생각하니 왠지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지금 선혜심인당에 계시는 정원지 전수님께 이번 새해 불공은 산내 심수전에서 하고 싶은데 괜찮겠냐고 말씀드리자 돌아온 대답은 “그러지 마세요. 대중과 함께 하는 게 났습니다.”하고 단칼에 퇴짜를 맞았다. 그래서 선혜심인당에서 일주일을 처음으로 오로지 사분정진에 전념하였다. 그런데 무엇인지 알 수는 없으나 미진함이 보였다. 이어진 49일 불공에는 14년 전 절박하였던 순간으로 시계를 되돌려보며 꺼져가는 초발심을 일으켜 세우는데 집중을 하였다. 그러나 마음이 지쳤나, 몸이 늙었나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다시 엔진을 돌려보았다. 정원지 전수님의 응원을 등에 업고, 49일 불공을 다시 시작했다. 무서리가 내리고, 까만 밤을 뜬눈으로 지새는 정말 힘든 날들을 보내며 불공의 시간을 보내던 4월 어느 날, 모든 것이 그리고 모두가 제 자리에서 아무런 변고 없이 잘 돌아가고 있는데 문제는 경제가 아니라 바로 내가 문제라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는데 내가 정말 ‘제행무상’의 근본 진리를 잊어가며 습(習)에 젖어 들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무척이나 힘들었던 이번 불공이 한 차례  업그레이드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고 바란다. 14년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을 심인진리에 젖어 지내 왔으니 그나마 다행이지만 말이다. 

 

이 글도 처음 성제 정사님이 제안할 때 꽁무니를 뺏다. 자신이 없어서였다. 하지만 다시 생각을 고첬다. 이것도 수행의 일부라는 생각으로 쓰고 있다. 정신병자처럼 지내던 시절도, 또 하염없이 눈물 콧물 흘리던 순간도 업보요 인과의 산물이라 생각한다. 2년 전 위덕대를 다닐 때 교수님이셨던 위덕심인당 혜안화 전수님 수업시간에 “마지막 소원으로 4바라밀의 끝인 성소작지를 이루고 싶다”고 한 적이 있다. 비록 희망사항이겠지만 그 일환이라 생각하며, 용예로써 혹을 먼저 끊기 위해, 나에게는 스승 같은 집사람과 함께 전국 심인당 순례를 작년부터 시작하고 있다. 십년이면 끝나겠지 아주 만만디 작전으로 발걸음도 가볍게 걸어가고 있다. 만남과 헤어짐의 인연을 가진 정사님과 전수님들 그리고, 현재의 성제 정사님과 정원지 전수님, 모두에게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무엇보다 원찰이었던 홍원심인당을 떠나 오로지 한사람을 위해 선혜심인당으로 두말없이 아니지, “옳다구나, 잘됐다. 이때다.”하며 옮겨와 준 여의력 보살님! 이제 서로 당겨주고, 밀어주는 심인진리의 도반으로, 한편으로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서로의 등을 긁어주는 삶의 동반자로, 남은 여생 같은 곳을 바라보며, 잡은 손 놓지 말고 함께 걸어갔으면 참 좋겠네. 손 여사, 여의력 보살님, 건강하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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