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종교론이 회자되고 있다. 지구종교는 한마디로 지구를 공경하는 종교라 하겠다. 지구는 인간은 물론 생물과 비생물이 존재하는 공간이며, 이들이 상호작용함으로써 서로의 존재를 누리게 하는 터전이다. 불교에서는 지구를 기세간(器世間)이라고 표현했다. 지구를 물건 따위를 담는 그릇에 비유한 것이 재미있다. 세간은 중생들이 서로 의지하여 살아가는 세상을 말한다. 기세간이란 말에는 모든 사건과 현상, 물질의 생김과 변화, 소멸의 작용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즉 연기(緣起)의 원리가 담겨 있다.
우리가 일상을 살면서 지구를 그리 의식하지는 않는다. 지구는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우리의 생활 속에 없는 것처럼 스며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지구의 안위를 묻지 않을 수 없는 시기를 살고 있다. 아침에 집을 나서기에 앞서 공기질을 살필 때가 많다. 기상 상황은 지구의 안위를 나타내주는 지표의 하나이다. 오늘은 얼마나 더울지 추울지도 알아본다. 이게 지구의 상태를 헤아리는 일이다. 다만, 공기질이나 기온의 고저에 한정하였기에 지구에까지 생각이 미치지 않았을 뿐이다.
지구의 안위를 걱정할 일은 아니다. 지구는 지금보다 훨씬 뜨거웠던 적이 있었고, 반대로 차가웠던 적도 있었다. 땅속 깊은 곳의 폭발로 대륙이 갈라지거나 솟구치거나 가라앉은 적도 있었다. 그런데도 지구는 지금 이렇게 존재하고 있다.
정작 걱정할 일은 사람의 안위다. 지난해 우리는 장기간의 폭염으로 힘든 날을 보냈다. 열사병으로 쓰려졌고, 잠을 이루지 못하는 열대야를 견뎌내야 했다. 태풍이 우리나라를 비껴간 것은 천만다행이었지만, 기상학자들은 지난해 여름이 시원한 여름으로 기록될 것이라는 우울한 예측을 내놨다. 기온의 상승은 반갑지 않은 폭발적 결과를 내장하고 있다. 국지적인 폭우와 가뭄은 생명을 위협하며 생존 기반을 파괴한다. 농작물 생산의 감소도 예상할 수 있다. 국가 간 분쟁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지구 열대화의 기후위기는 인간 삶을 불안케 하는 상수로 작용하는 것이다. 기후위기는 인간 생존의 위기다. 전혀 과장이 아니다. 음모론은 더더욱 아니다. “현재 기후변화 현상이 진행 중이고, 공포스러운 상황이다. 하지만 이는 단지 시작에 불과하다.” 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의 말이다.
종교를 비롯한 여러 분야에서 ‘지구’를 끌어들여 중심으로 삼는 까닭은 생태계 파괴로 인한 기후위기, 인간 생존 위기의 현실을 넘어서려는 의지이다. 지구를 달리 보아야 한다. 내 발 밑의 존재가 아니라 마땅히 인간의 공경을 공경받아야 할 존재로서 지구를 생각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법학, 경제학, 넓게는 인문학 분야서도 지구 중심의 생각들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종교는 그 이름에 값하듯 늘 큰 전환을 말해왔다. 무릇 종교라고 하면 마땅히 그래야 한다. 2500년 전 석가모니는 당시 인도 사회의 모순을 넘어서는 전망을 제시했듯이,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을 살아야 한다고 호소한다.
불교는 애초부터 지구종교였기에 ‘기후 고통’을 이겨내기 위한 역할이 주어졌다. 불교의 핵심적인 가르침인 연기는 지구적·생태적 사고의 원천이다. 그러므로 지구를 공경함이 없는 불교는 불교의 가르침으로부터 꽤 멀리 벗어나 있는 것이다. 불교라는 이름이 자랑스럽다면 마땅히 지구불교인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불교환경연대 운영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