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봄이 찾아왔습니다. 부드러운 바람이 불고, 나뭇가지에는 연둣빛 새순이 돋아납니다. 긴 겨울을 지나 대지와 생명이 깨어나듯, 우리의 마음도 다시 살아날 준비를 합니다.
봄이 되면 농부들은 땅을 일구기 시작합니다. 씨앗을 뿌리기 전,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땅을 살피는 것입니다. 겉보기엔 괜찮아 보이는 흙이라도 그 속에 생명이 살아 숨 쉬지 않으면 결국 좋은 농산물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좋은 농산물을 생산하려면 좋은 땅이 있어야 한다. 좋은 땅은 우리가 만들어야 한다. 좋은 땅을 만들려면 내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어느 농부의 말입니다. 이 짧은 말 속에 참 많은 진리가 들어 있습니다.
불교는 삶을 인연과 연기의 그물망 속에 있다고 봅니다. 나라는 존재는 홀로가 아닌 수많은 인연 속 한 부분입니다. 겉으론 혼자 살아가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관계 속에서 삶이 이루어집니다. 이 생각은 봄의 흙과도 닮아 있습니다.
흙 속에는 보이지 않는 미생물들이 살아 있습니다. 그 작은 생명들이 활동해야 뿌리가 숨 쉬고, 작물이 자라 열매를 맺습니다. 눈에 보이진 않지만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 그것이 우리의 내면이자 삶의 모습입니다.
불교에서는 이러한 본질적인 가치를 진리, 곧 ‘법(法)’이라 부릅니다. 눈에 보이진 않지만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나침반과 같습니다. 세상이 흔들리고 마음이 요동칠 때에도 변하지 않는 기준이 되어줍니다. 그래서 불교는 진리를 몸으로 하는 부처님, 곧 법신(法身) 부처님을 가장 근본적인 존재로 말합니다. 진리 자체로 존재하는 부처님입니다.
요즘처럼 바쁘고 치열한 세상을 살다 보면, 우리는 자주 현실적인 판단에만 의존하게 됩니다. 눈앞의 이익, 빠른 선택, 감정적인 반응들은 마치 척박한 땅에 무리하게 작물을 심는 것과도 같습니다. 처음에는 그럴듯해 보여도, 결국 뿌리가 금방 마르고 열매도 건강하지 못하게 됩니다. 이렇게 현실에만 매달려 살며 마음의 본질을 놓친 상태를 ‘중생’이라 합니다. 그런데 이 중생도 진리와의 만남을 통해 마음의 변화를 경험할 수 있다고 합니다. 마치 물가에 가까운 땅이 나무를 잘 자라게 하듯, 우리가 진리 가까이에 뿌리를 내리면 자연스레 삶도 건강해지는 것입니다.
이민을 간 교포들이 종종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미국 공항에 누가 마중 나왔느냐에 따라, 이민 생활이 결정된다.” 세탁소 주인이 마중 나왔으면 나도 세탁소를 하고, 식료품점 주인이 나왔다면 나도 식료품점을 하게 된다는 것이죠. 처음 만나는 ‘인연’이 인생의 방향을 결정지을 수도 있습니다.
한 보살님께서 삶의 방향을 잃고 방황하던 중, 친구의 권유로 처음 심인당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심인당이 낯설고 불사도 어색했지만, 불사 후 누군가 다가와 따뜻하게 “처음이시죠? 귀한 인연으로 만나뵙게 돼서 너무 반갑습니다.”라며 말을 걸어주셨다고 합니다. 별거 아닌 말 같았지만, 그 한마디가 마음에 깊이 박혀 그날 이후 보살님은 매주 심인당에 다니시며 귀한 인연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내가 누구를 만나고, 어떤 생각과 가치와 연결되어 있는지가 인생의 질과 깊이를 결정짓습니다. 그래서 진리와의 만남은 우리 삶의 가장 소중한 인연이며, 그 만남이 인생을 바꾸는 전환점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좋은 땅도 선한 마음도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돌보고, 닦고, 가꾸어야 합니다.
봄은 시작의 계절입니다.
우리 마음의 밭에도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씨앗 하나를 심어보는 건 어떨까요?
선법지 전수/유가심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