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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라도 알아서 다행이야

밀교신문   
입력 : 2024-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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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 님은 참 단단한 어른 같으세요.” 평일 오후, 회사 밖 점심시간에 갑자기 들은 칭찬이 마음을 적신다. ‘이제 막 한 달 된 인턴 눈에는 내가 그렇게 보이는구나!’ 온기가 담긴 상대의 말에 우쭐한 마음이 든 것도 잠시, 지난날들이 떠오른다. 4년 전, 막내를 탈출한 나는 열정만 앞세워 상대의 속도에 맞추지 못해 멘토로서 미숙한 점이 많았다. 답답해 보였을 무언의 제스처는 공기를 타고 상대에게 불편함을 안겨주었고, 재촉처럼 다가갔을 것이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지는 못했지만, 지금 내 앞에 있는 한 사람에게 길잡이가 되어주는 든든한 어른이 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에 마음속으로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

연차가 쌓일수록 내 마음속에 헤아림이라는 단어가 깊게 새겨지고, 자주 되뇐다. ‘이 정도는 알겠거니하며 무심히 지나쳤던 것들에 대해 오랜 경험을 통해 알게 된 지식이나 이해의 깊이를 맞추지 않고 업무만 지시하면, 마찰이 생길 수밖에 없다. 혹여나 어른스러움에 꼰대의 흔적이 묻어난 건 아닌지 상대가 건넨 칭찬에도 화들짝 놀라며 퇴근길에 내가 뱉은 문장들을 하나하나 점검해 본다.

 

살다 보니 자연스레 알게 되는 걸 삶의 지혜라고 한다. 어릴 때 귀가 따갑도록 듣는 어른들의 말 속에는 앎의 지혜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남한테 피해주지 말고, 착하게 살라는 그런 뻔한 말. 도덕책에 여러 번 반복해서 나오는 당연한 이야기지만, 실천하기는 쉽지 않아 상상 속의 유니콘처럼 느껴지는 말. 조금이라도 손해를 보면 나만 억울해질까 봐 아등바등하며 책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애써 모른 척해왔다. ‘내 코가 석 자야.’ 비겁하게 합리화하며.

 

배가 나오면서 넉넉함도 더해져서일까, 주름살이 짙어지며 깨달음도 깊어져서일까? 은행에 돈을 맡기고 금리를 받듯이, 세상에 베풀면 복리로 돌아온다는 말이 이제는 어렴풋이 이해된다. 시기와 질투의 마음을 다른 사람을 깎아내리는 데 쓰지 않고, 자신의 가치를 더 높이 올릴 수 있는 동기부여로 바꿔 쓰고, 남과 비교하여 불행이 시작되는 길목에서 비교 대상이 아닌 자연의 일부로 바라보는 연습을 통해 내 삶이 단단해지는 걸 느낀다. 그렇다. 우리는 자연을 보며 감탄하고 감동하고 감사할 뿐, 나와 비교하지 않는다. 파란 하늘을 시기하지 않고, 붉은 노을을 질투하지 않는다. 나를 제외한 타인을 때로는 자연화하는 태도야말로 내 삶을 떠받치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줄지도 모른다. 잊지 말자, 감탄이 감동을 낳고, 감동이 감사를 낳는다는 사실을. 행복의 척도는 필요한 것을 얼마나 가지느냐가 아니라, 불필요한 것들로부터 얼마만큼 자유로워지느냐 임을. 우리는 살면서 불필요한 것들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었다는 사실을.

상대방의 행복 위에 내 행복을 쌓으며 세상한테 선한 영향을 주다 보면, 시간이 지나 나는 세상으로부터 더 큰 선물을 받게 될 것이라는 믿음과 앎이 생겼다. 그렇기에 나와 인연을 맺은 사람들의 오늘 하루가 평안하기를 바라며, 찰나의 만남에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위로와 응원을 진심과 함께 전한다. 당장 행동하고 실천하고자 새로운 해에는 복 많이 받으세요.” 대신 복 많이 지으세요.”라는 말을 건네기로 다짐한다. 꾸준히 복을 짓다 보면, 더 큰 복이 넝쿨째 굴러들어 온다는 것을 마침내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양유진/글러벌 서비스 담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