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어가는 것은 그다지 기쁜 일만은 아니다. 숙면을 해 본 지도 오래되었다. 잠을 자는 동안도 안전하지 못하다. 목에 담이 걸려 너무 아파 눈을 떴다. 오른쪽 목을 사용하기가 어려웠다. 며느리인 나는 좀 부실하더라도 사랑어른의 조찬을 차려야 한다. 그래야 내 마음이 편하다.
담 걸린 목이 회복되어 가는 중에 고속도로에서 차량 추돌사고를 당해 온몸이 아프다. 여름방학이라 대구에서 서울병원 진료를 위해 차량으로 움직이다가 난 사고였다. SRT를 못 구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다행히도 방학이라 각자님이 큰마음 먹고 드라이브하자며 동행해, 진료받고 돌아오는 길에 난 사고였다. 막상 사고를 당하니 어안이 벙벙해 그날 하루는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당연히 통증은 안중에도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교통사고로 인한 진료를 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사실 입원할까, 고민하다가 집에 홀로 계신 사랑어른이 걸렸다. 출근도 해야 하고, 거의 동시에 떠오른 것이 출근. 어떤 결정 앞에서 항상 갈등을 겪게 만드는 사랑어른과 출근, 일과 가정 그리고 치료 중 어느 하나도 소홀할 수 없는 일하는 여성의 문제에 봉착했고, 그런 상황에서 대체로 선택하는 길을 나 또한 따를 수밖에 없었다.
최악의 일은 그날 저녁에 벌어졌다. 딸애가 집에 권연벌레가 너무 많다며 잠을 잘 수가 없다고 원망을 한다. 후다닥 아이 방을 살폈다. 그제야 눈에 들어온 온 집안의 권연벌레, 보이는 대로 잡았는데, 말린 꽃, 방향제 등등 먹잇감이 될 것 같은 곳에는 벌레가 창궐했다. 애의 말에 따른 나의 부산스러운 조치로 그날 밤을 견디고 버텨냈다.
다음 날 아침이 되니 어제 잡았던 벌레보다 더 많은 벌레가 집을 포진했다. 발원지를 찾아야겠다고 온 집을 뒤집었다. 예상한 바와 같이 사랑어른의 방이 온상이었다. 담이 걸려서, 사고가 나서 청소가 미흡했던 2주 사이에 에어컨을 상시 가동한 대프리카의 습하고 더운 방에서 사랑어른이 흘려놓은 흔적들이 권연벌레의 먹잇감이 되어 그들만의 파티를 하고 있었다. 방 청소를 하고 해충방지약도 치고 방에 있는 침대 시트 등을 세탁했다. 건조기용은 제외하고 빨래를 널기 위해 베란다로 가서 빨래를 느는데 베란다의 38도의 열기가 얼굴 가득 ‘헉’하며 다가왔다. 그때 아픈 목과 온몸의 통증이 더위와 3박자가 되어 나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외마디의 ‘엄마’라는 그리운 외침으로 눈물이 앞을 가렸다. 세상에 덩그렇게 혼자 버려진 것 같았다. 하늘에 계신 엄마가 내 서러움과 외로움을 가져가셨다. 통증까지 고스란히. 더위가 너무 심해 땀도 가득 흘러 눈물인지, 땀인지 혼돈될 것 같아 가족들에게 들킬 우려가 없어 자연스럽게 화장실에 가서 세안했다.
맑아진 뇌리에 범천왕이 찾아오셨다. 진각교전 응화방편론에서 ‘범천왕도 제석천도 부모효양하면 집에 계시고, 부모효양은 제불성현의 도움도 이끈다’고 했다. 이 구절을 읽으며 부모공양하는 것의 복이 이렇게 큰 것은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 아닌가 했던 반문이 내가 사랑어른과 함께함으로써 고속도로 추돌사고에서도 범천왕이 날 도우셨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고요함은 밖에서 찾지 말고 자신 안에서 찾으라는 부처님 말씀이 더욱 사무친다. 홀시아버지를 굳이 사랑어른이라 지칭하며 30년의 모심으로 응어리진 마음이 부처님 말씀 안에서 또 제자리로 돌아가 평온에 젖는다.
장덕희 교수/위덕대 사회복지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