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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 인심

밀교신문   
입력 : 2024-07-31  | 수정 : 2024-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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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 가꾸기에 관심들이 많다. 나 역시 올봄에 텃밭을 가꿀 요량으로 시민농장 텃밭 신청을 알아보고, 지인과 함께 주변 산자락을 돌아다녔다.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텃밭은 너무 멀어 포기하고, 집 주변에 힘에 부치는 노인분의 텃밭을 갈아엎는 것을 도와드리고 약간의 땅을 얻었다.

 

여러 사람이 경작하는 텃밭 주변에는 농사의 잔여물과 비닐, 플라스틱통, 무단으로 버려진 각양각색의 쓰레기가 방치되어 있었다. 나는 쓰레기를 버린 사람들은 양심을 버렸다며 욕하고, 치우지 않는 행정관서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며칠 후 저녁 무렵 귀가하는 지인을 만났다. 옷도 깔끔하지 않고 땀도 흘린 채라 어디 다녀오시냐고 재차 물으니, 내가 지적한 쓰레기를 치우고 오신다고 하였다. 여러 사람들이 버려 장기간 방치된 것을 왜 몸소 치우시냐 하니, ‘아무나 치우면 되죠라고 말하셨다. 알아보니 쓰레기를 대용량 종량제봉투 18장에 담아 자가용으로 옮기고, 폐가구 등은 폐기물 스티커까지 부착하여 처리하시고 있었다. 알고 보니 비용을 들여 농사 쓰레기 투기 금지 표지판도 멋지게 제작하여 설치하는 수고도 하였다. 그런데도 또 버리는 사람이 있지 않겠냐는 말에 덜 버리겠죠”, 그의 대답이 걸작이다.

 

그는 본인 텃밭을 가꾸기보다, 연세 드신 분들을 위해 고라니 침입을 막기 위한 울타리를 대신 쳐주고, 종묘나 퇴비 사러 갈 때 운전을 해주기도 한다. 아프신 노인분을 위해 병원에 모시고 가기도 하고, 죽도 사다 드리며, 꽃구경도 같이하면서 말벗도 되어 드린다. 물론 일방적인 관계는 아니다. 농사 초보자인 그가 경험 많은 분들로부터 농사 노하우를 배우는 상부상조하는 관계이다. 도움을 받은 노인분들은 힘에 부치신다고 하면서 텃밭도 분양해 주신다.

 

그는 농사를 지으면서 수확하게 되면 채소를 포장해 아파트 1층 현관에 놓아둘 궁리부터 한다. 나누고 베풀 생각이 먼저다. 텃밭을 가꾸는 대부분의 사람은 나누어 주는 인심을 갖고 있다. 내가 가입한 동호회 회장은 자신이 밭에 심은 농작물들을 회원 누구나 마음껏 가져가라 하기도 한다.

 

남의 잘못을 지적하고, 남을 탓하고 욕하고 깎아내리는 건 쉬우나, 생색내지 않고 남을 위해 봉사하고 나누고 베푸는 건 쉽지 않다. 가끔 선한 일을 할 때는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기 마련이다.

 

그의 텃밭에는 오늘도 쓰레기가 모여있다. 이전보다 줄어들긴 했지만, 아직도 버려지는 쓰레기를 자신의 밭에 모았다가 한꺼번에 처리하려고 모아놓았다. 아직도 버리는 사람이 있냐고 나는 역정을 내는데, 그의 표정은 평온하기만 하다.

 

선한 사람과 사귀면 그 감화를 받아 자연히 선해진다고 하지 않았던가? 주변에 베푸는 사람이 있어 행복하고, 세상이 밝아 보인다. 이제껏 주위에 그런 분들이 많았는데 내가 여유가 없어서 제대로 돌아보지 않고, 매사 부정적인 생각으로 세상의 어두운 면을 바라보았던 건 아닐까? 또한 선한 일을 하더라도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하는 일은 없었는지 되돌아본다.

 

다른 사람들이 쓰레기를 버리지 않아, 앞으로는 그가 자신의 텃밭 농사에만 전념해 그의 텃밭이 풍성해지기를 바라며, 곧은 삼밭 속에서 자란 쑥은 곧게 자라게 되는 것처럼 선한 사람과 사귀면 그 감화를 받아 자연히 선해진다는 마중지봉(麻中之蓬)도 기대해 본다.

 

방건희/전 진선여고 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