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교에서 ‘새로운 시작’은 거창한 의식보다 매 순간의 마음가짐에서 비롯되는 발보리심에서 시작된다. 특히 우리 일상의 식사, 공양의 시간 또한 수행의 장이 된다. 공양 전 한 번의 감사의 마음을 담은 합장은 단순한 예를 넘어, 내가 지금 받는 이 음식이 수많은 인연과 도움으로 이루어졌다는 은혜로움에 대한 자각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며칠전 식당에서 겪은 일은 이러한 일상의 수행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저녁식사를 맛있게 하고 있던 우리 가족들 뒤편 테이블에서도 음식이 나오는 순간, 연세 지긋한 손님들이 큰 목소리로 식사 전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기도문이 식당 전체에 울려 퍼지자 식사 중이던 우리 가족은 서로 눈을 마주쳤고, 중학교 2학년 큰딸이 “우리도 길게 다시 할까?”라며 장난 섞인 제안을 했다. 그러나 곧 “아멘”이라는 단 한마디가 들리며 상황은 자연스럽게 마무리 되었다.
우리는 식사 전 “잘 먹겠습니다.”, “감사히 먹겠습니다.”라는 짧은 말과 한 번의 합장으로 식사전 기도를 마쳤다. 공양게를 길게 하지 않아도, 형식에 얽매여져 있지 않아도 이는 불교적 관점에서 결코 가볍지 않는다. 발우공양 때처럼 공양게를 단순히 외우는 것보다 매 끼니마다 감사의 마음을 잊지 않는 것이야말로 수행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병오년 새해가 다가오고 있다. 사람들은 해가 바뀌는 시점을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순간’으로 본다. “나날이 새로운 데 새것이 들어온다”는 실행론 말씀처럼 우리의 일상도 매 순간순간이 새로워질 수 있다. 외부 환경만이 아니라, 우리 마음도 항상 새로운 인연을 받아들여 변화해야 한다는 뜻이다. 마음이 굳어 있으면 들어오는 새로움을 포착하지 못한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늘 새로움을 발견하고, 감사의 마음을 지니려는 수행적 태도를 다시금 되새겨볼 때다. 한 해의 시작은 달력이 바뀌는 날에 있는 게 아니라, 오늘 식사를 앞두고 짧게 합장하며 감사하는 마음을 내는 바로 그 순간에 있다.
이처럼 새로운 해를 맞이하며 우리는 거창한 결심보다 “오늘 이 순간의 소중함을 자각하는 새 마음”이라는 가장 근본적인 수행을 되새겨야 할 때이다.
천혜심인당 주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