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직은 계절의 흐름이 순조롭다. 끝이 없을 것 같았던 지난 여름은 잊혀진 계절이 되었다. 절기상으로는 입동(立冬)을 지났다. 영하의 기온을 몇 차례 나타냈다. 설악산에서 눈이 내린 지는 꽤 지났고, 한라산에서도 함박눈이 내렸으니 어느덧 겨울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내겐 아직은 가을이다. 가을을 더 붙잡고 싶은 마음에 깊어 깊은 가을이라고 부르고 싶다.
여름은 참으로 더웠다. 35도를 넘는 기온은 견디기 힘들지만, 일상이 되었다. 지난 여름 최고기온은 경기도 광주에서 관측된 41.7도였다. 최저 기온이 30도를 넘기도 했다. 사람의 몸으로서 견디기 힘든 날씨를 겪고 있다. 인체는 35도를 넘으면 신진대사에 이상이 생긴다. 열사병이다. 지병이 있거나 허약한 사람은 물론이고 건강한 사람도 쓰러뜨린다.
무더위는 일상을 바꿔놓았다. 인천에서 평생 농사를 지으며 살아온 70대의 한 농부는 깜깜한 한밤중에 밭일을 했다고 말했다. 낮에는 너무 더워서 도저히 일을 할 수 없었다. 헤드랜턴을 쓰고 고추밭에 약주고 고추를 땄다. 밤에 일하고 낮에 쉬었다. 일상을 바꾼 이들이 이 농부뿐이겠는가.
우리나라에서는 대체로 기후변화를 여름의 폭염과 열대야로 체감한다. 일부분일 뿐이다. 기온 상승으로 전 세계 빙하의 절반이 사라졌고, 그 속도는 빨라졌다. 만년설로 웅장했던 킬리만자로의 눈은 겨울 동안 잠깐 나타날 뿐이다. 빙하가 녹으면 그야말로 재앙이다. 해수면 상승, 식수와 농업용수 부족을 불러온다. 거주지를 옮겨야 하고, 물을 둘러싼 분쟁으로 이어진다. 지진 발생과도 관련이 있다. 빙하에 덮였던 지각의 무게가 가벼워지면서 지각판의 이동을 발생시킨다. 최근 지질학자들은 기후변화와 지진 발생의 연관성에 주목하고 있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에 제출한 과학자들의 보고서(2007)에 따르면, 21세기 말까지 4.5도 상승할 가능성이 가장 높고, 6도까지 상승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했다. 이 예측대로라면 인류는 파국을 피할 수 없다. 지구가 파괴되는 것은 아니다. 35억 년 전 지구에 생명이 출현했던 것처럼 새로운 생명의 질서가 자리잡을 것이며, 지구는 지금과는 판이한 세상을 만들어낼 것이다.
나타난 것은 언젠가는 사라질 수밖에 없다. 인류라고 하여 성주괴공의 흐름에서 비껴갈 수 없다. 문제는 인간종의 멸종이 아니다. 인간이 살면서 우리가 저지른 문제를 뻔히 알면서도 풀어내지 못하는 지혜 없음과 무능의 상태다. 인간은 지구에서 가장 지혜로운 존재라고 자임해왔다. 그러나 기후위기의 상황에서 인간은 전혀 지혜롭지 않다. 탐욕의 지배에 사로잡혀 있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있다.
행동경제학과 행복심리학 연구로 2002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대니얼 카너먼은 “아무리 심리적 각성이 높아진다고 해도 생활 수준의 하락을 꺼리는 마음을 극복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견해를 내놨다. 이 말을 불교식으로 풀이하면 욕망을 움켜쥔 손아귀를 펴지 못한다는 얘기다.
대니얼의 지적은 옳다. 자전거는 멈추면 넘어진다. 넘어지는 것이 두려워 계속 달릴 수는 없다. 넘어지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상황이 펼쳐진다. 인간은 욕망을 걷어내는 지혜를 전수해왔다. 일찍이 석가모니 붓다는 욕망을 알아차리라고, 그리고 넘어설 수 있는 지혜를 펼쳤다. 기후위기, 기후 파국의 시대에 불교가 더욱 활발발해야 할 이유다.
불교환경연대 운영위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