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특별한 선물, 겨울

밀교신문   
입력 : 2025-10-31  | 수정 : 2025-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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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인가 했더니 느닷없이 한기가 닥쳐왔다. 장갑을 끼고 목도리를 해도 어색하지 않게 된 시절이다. 117일이 절기로는 겨울로 들어선다는 입동(立冬)이다. 이러니 추위가 오는 것 또한 어색하지 않은 일이다. 볕을 피해 다니던 때가 엊그제였는데, 등에 얹히는 햇살이 제법 따사롭게 느껴진다. 이렇게 또 한 계절이 가고 온다.

 

요즘 내 작은 텃밭에선 가을걷이가 한창이다. 고구마와 더덕을 캤다. 콩도 베어 말리고 있다. 고구마는 벌레 피해가 심하다. 온전한 게 별로 없다. 굼벵이가 죄다 파먹었다. 물빠짐이 좋지 않기도 하거니와 수확을 앞두고 하루걸러 내린 비에 간혹 썩은 것도 있다. 더덕은 그런대로 괜찮다. 시장에서 파는 것처럼 굵고 길쭉하지 않다. 잔뿌리가 많고 뭉뚝하다. 흙을 깊이 갈아주어야 뿌리를 길게 내리는데, 나의 텃밭은 호미 한 자루로 짓는 농사이니 보잘것없는 결실에도 만족한다.

 

가을걷이를 했다고 해서 한 해 농사가 끝난 것은 아니다. 김장에 쓸 배추와 무, 쪽파는 지금이 한창 자랄 시기이다. 마늘과 양파는 요즘이 씨앗을 심는 시기이다. 겨울이 왔다고 해서 농사는 결코 멈추지 않는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일대기 중에서 사문유관(四門遊觀)은 인상적인 장면이다. 어느 날 태자 싯다르타는 성문 밖을 나섰다. 늙고, 병들고, 또 죽은 사람들을 보게 되었다. 각각 동문과 남문, 서문 밖에서였다. 사람은 늙고 병들고 죽는다는 사실을 보았다. 누구든 눈이 있으면 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석가모니의 위대함은 당연한 것으로 보이는 현상에 질문을 던진 것이었다. “이 고통을 벗어날 수 없는가?” 이 질문이 있었기에 북문 밖을 지나는 출가수행자를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청년 붓다>의 저자 고미숙은 북문에서 출가 수행자를 본 것에 주목했다. 그 의미를 오행으로 풀이한다. “오행으로 보면 북쪽은 겨울이고, 검은색이고, 물의 기운이다. 하여, 결정적으로 지혜를 상징한다. 보이는 세계가 아닌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통찰, 그것이 겨울의 기운이자 물의 미덕이며 지혜의 파동이다.”

 

가을걷이를 마친 밭의 풍경은 스산하다. 푸르름이라곤 없다. 거뭇한 쭉정이 위에 내려앉은 잔설이 허옇고, 그 위로 찬바람이 휘파람 소리를 내며 어지러이 지나간다. 밤은 길어 깜깜하다. 흙은 얼어붙어 생명이 발붙일 곳이 없다. 겨울의 겉모습은 대체로 이렇다.

 

아니다. 겨울의 밭은 여름만큼이나 뜨겁다. 안으로 뜨겁다. 씨앗은 추위만큼 단단해진다. 마늘은 겨울 동안 뿌리를 내린다. 하얀 실뿌리를 땅에 깊숙이 드리운 채 눈과 찬바람을 이겨낸다. 맵고 아린 맛을 만들기 위해 웅크리고 있는 것이다. 겨울의 시간을 달구고 있는 것이다. 보리와 귀리 또한 그렇다.

 

겨울은 침묵의 터널이다. 침묵은 고요만이 아니다. 속과 깊이 마주하는 일이다. 세상에서 쉽고도 어려운 일이 나를 마주하는 일이다. 부처에게도 속지 말아야 하지만, 정작 속아 넘어가지 말아야 할 존재는 바로 나다. 그러자면 나란 놈이 어떻게 생겼는지 샅샅이 보아야 한다. 마침 겨울이 오고 있다. 잎이 떨어지니 가려졌던 줄기가 드러나고 있다.

 

계절의 순환은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오가지만, 겨울이 오는 것은 특별한 자연의 선물이다. 나와 대면하기에 더없이 좋은 시절이다. 바스락거리는 가을을 즐기면서 나는 이렇게 겨울맞이를 한다.

 

불교환경연대 운영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