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보살님께서 손수 농사지은 고구마를 정성껏 내어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전수님, 이건 밤고구마니까 지금 바로 드셔도 돼요. 그런데 호박고구마는 조금 두고 며칠 있다 드세요. 그러면 훨씬 더 달고 맛있어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속으로 다시금 되새겼습니다.
‘그래, 고구마도 시간이 필요하구나. 겉으론 완성된 열매 같아도, 그 속엔 아직 익어가는 시간이 남아 있구나.’ 수행의 공덕도, 불공의 응답도, 삶의 결실도 어쩌면 ‘삭히는 시간’을 거쳐야 비로소 참된 맛을 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흔히 ‘솥뚜껑 자주 열면 밥이 설익는다’는 말이 있는데 수행의 공덕도 다르지 않습니다.
자꾸만 “이쯤 되면 성과가 나와야 하지 않나?”, “왜 아직 기도한 일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하고 결과만 들여다보다 보면, 중심은 흔들리고 의심은 자라나게 됩니다.
공덕이 쌓이는 과정은 마치 뜸 들이는 밥처럼 보이지 않는 가운데 이루어집니다.
중간에 뚜껑을 열어 확인하면 열기만 빠져나가고, 밥은 속까지 익지 않습니다.
수행과 기도도 일정한 시간, 일정한 집중, 그리고 무엇보다 일정한 기다림이 있어야 비로소 그 깊은 맛과 향이 우러나는 법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여러 경전에서 ‘공덕’이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설하셨습니다.
그 자리에서 바로 드러나는 공덕이 있는가 하면, 세월과 기다림을 통해 비로소 나타나는 공덕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이 정성스레 불공을 하고 회향했을 때, 마음이 평온해지고 관계가 부드러워지는 등의 즉각적인 변화를 겪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즉시의 공덕입니다. 이러한 즉시형 공덕은 마치 생고구마처럼 단단하지만 단맛이 은근히 살아있고, 당장의 위안을 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어떤 불공은 그때는 아무 변화가 없는 것처럼 보여도 몇 달 뒤, 몇 년 뒤, 혹은 자녀나 후손의 삶에서 알 수 없는 좋은 인연과 길상으로 되돌아옵니다. 이것이 바로 숙성된 공덕입니다. 우리는 종종 당장의 변화에만 집중하여 “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지?” “기도했는데 왜 이 모양이지?” 하고 속단하곤 합니다. 하지만 고구마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밭에서 막 캔 고구마는 겉보기엔 완전한 열매처럼 보입니다. 그 속은 아직 전분이 가득하고 퍽퍽합니다. 하지만 며칠 묵히면, 그 전분이 천천히 당으로 바뀌면서 진짜 꿀고구마가 되는 것입니다.
숙성형 공덕은 결과까지 시간이 걸리고, 그 뜻이 완전히 드러나기까지 여러 계절을 거쳐야 할 때가 많습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인내, 정진, 지혜를 배우게 됩니다.
당장 먹을 수도 있었지만, 기다리면 훨씬 더 달아지는 그 뿌리채소처럼, 우리의 수행과 불공, 그 공덕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삶에는 삭히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익을 때까지 기다릴 줄 아는 마음, 다 익은 뒤엔 나누려는 손, 그 둘 사이를 잇는 고요한 신심이 우리에게 더 깊은 만족을 가져다줄 것입니다. 공덕은 곧 ‘시간과 함께 자라는 마음의 열매’입니다. 단순히 선한 일을 하고 멈추는 것이 아니라, 그 선한 결과를 돌려서 모두가 함께 나누는 방향으로 ‘익혀가는’ 것입니다. 공덕은 단지 ‘얻는 것’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얻은 것을 어떻게 익히고, 어떻게 회향하며, 어떻게 자신의 마음과 삶에 녹여내는가에 따라 그 공덕의 참맛은 결정됩니다.
마치 꿀처럼 달게 숙성된 고구마가 자신만의 간식거리가 아닌 가족과 이웃과 나누는 따뜻한 온기가 되듯, 우리 수행과 불공의 공덕도 익은 뒤에는 다시 바깥을 향해 열려 다함께 해탈의 길로 나아가길 서원해봅니다.
선법지 전수/유가심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