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해, 몸에 독소가 가득 쌓인 채 운동도 산책도 게을리했다. 여기저기 몸에 탈이 나기 시작했고, 결과는 참담했다. 고지혈과 혈압의 수치가 고위험군에 포함돼 있었다. 몸 관리를 소홀히 한 탓이다. “미련 없이 떠나자”를 수없이 반복했다. 제주 오기 전까지 나의 몸 상태가 그러했다.
최근 제주를 조금씩 알아가며, 나의 최대 관심사는 오름과 동네 책방, 곶자왈(원시림 숲)로 자연스레 옮겨갔다. 특히 심인당에서 한 달에 한 번 실시하는 오름과 숲길 탐방도 인상 깊었다. 제주에는 크고 작은 오름들이 384개와 독립 서점인 동네 책방 또한 100 군데가 넘는다고 한다. 제주서 살게 된다면 제일 먼저 하고 싶었던 일은 동네 책방을 투어 하는 것이었다. 그 꿈이 꿈처럼 이뤄졌다. 6개월 사이 틈틈이 오름과 동네 책방을 찾아다니면서 느낀 것은 아름다운 만큼 4.3 사건의 슬픈 역사를 간직한 섬, 그런 제주서 살고있는 나는 지금 축복이다.
6월 21일 식재심인당 오름 탐방팀 보살님들과 각자님들이 참석한 가운데 서귀포시 남원읍에 자리한 머체왓 숲길 탐방이 있었다. 머체왓은 제주어로 ‘돌과 나무가 우거진 밭’을 의미한다. 탐방 전 일기예보를 검색해 보니 비 소식이 잡혀있었다. 20일부터 전국에 장마 소식이 있었으니, 걸을 수 있을 만큼만 비가 오기를 서원했다. 다행히 짙은 안개를 동반한 안개비가 간간이 내려 오히려 걷기에 딱 좋은 시원한 날씨였다. 궂은 날씨에도 저마다 일상에서 벗어나 천천히 숲길을 걸으며 오래된 나무 속에 서 있는 오래된 영혼을 좋아한다던 어느 시인을 떠올리기도 했다. 편백나무와 삼나무, 동백나무 숲과 길이 있는 그곳에 일상에 지친 우리의 몸과 마음이 그리고 우리의 유월이 있었다. 이곳에 와서 사람과 자연의 조화로운 공생 공존을 통해 훼손 없이 다음 세대로 이어지기를 자연과 생태계의 파괴는 다름 아닌 지구의 파멸과 죽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돌아오는 길 식당서 만난 망초나물 무침은 취나물과 조금 비슷한 특별한 맛이었다. 물망초의 꽃말이 ‘나를 잊지 말아요.’라는 그래서 영원히 기억되기 위해 식탁에 오른 망초나물 무침 처음 맛보는 특별한 맛 잊지 않을게.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좋은 삶이란 각자 개인차는 있을지언정 삼업이 삼밀로 바뀌는 지점에서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반짝이지 않아도 하루를 열심히 살아낸 풀꽃을 좋아한다. 자신의 상처를 먼저 돌보고 타인의 상처를 살피는 사람을 좋아한다.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 시작되는 나무를 좋아한다. 연꽃 속 물고기가 얼굴을 내밀고 말을 걸어오는 것을 상상하기를 좋아한다. 시를 읽는 것도 좋지만 삶이 곧 시인 것을 더 좋아한다. 불경을 외우는 것도 좋지만 삶이 곧 수행인 것을 더 좋아한다. 희망도 좋지만 절망인 줄 알면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삶을 더 좋아한다. 부처님 법을 따르고 오계를 지키는 것도 좋지만 기본에 충실한 삶을 더 좋아한다. 첨단의 미래도 좋지만 오래된 미래를 더 좋아한다. 화살기도도 좋지만 오래된 기도를 더 좋아한다. 장미보다 쑥부쟁이를 더 좋아한다. 편리한 아파트도 좋지만 툇마루가 있는 낡은 집을 더 좋아한다.”
누군가는 계속 그 뒤를 이어서 맑고 향기로운 세상을 꿈꾸는 삶을 살아간다면 우리의 삶은 더 이상 지루하거나 무미건조한 삶은 아닐 것이다.
이 숲길 끝에 또 다른 길이 있어 우리는 매번 오늘도 쉼 없이 수행하며 걷는다. 우리의 미래, 오래된 미래는 자연과 숲 그리고 동네 책방에 있다. 그러나 언제나 삶에 겸손하듯 부처님 법답게 살고자 노력해야 한다. 그 어떤 것도 말고, 부디 그러하기를.
수진주 전수/식재심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