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았던 긴 추위도 끝을 보이고, 오지 않을 것 같았던 봄이 온다. 반복되는 계절 속에서 시간은 겹겹이 쌓여 나이가 들고 있다. 평상시에는 시간의 흐름에 무감각하다가,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흘러간 시간에 화들짝 놀란다. 바뀐 대화 주제 때문이다. 학원 숙제에서 대학 진로 얘기로. 남자 친구에서 남편 얘기로, 내 이야기에서 자녀 이야기로… 결혼을 앞둔 친구는 어떤 침대를 사야 할지, 축의금은 누가 받을지, 신혼여행은 어디로 갈지에 대한 질문이 쏟아지고 먼저 경험한 친구들이 “나는 말이야~”하며 대화를 이어받는다. 한차례 수다를 떨다가 새삼 바뀐 대화 주제를 곱씹으며 '아, 나이 들었구나' 깨닫는다.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어른이 되는 걸까? 나는 어른인가? 네이버 국어사전에 의하면 '결혼을 한 사람'을 어른이라고 정의한다. 단순히 정의하자면 나는 어른이다. 하지만 또 다른 설명에선 '다 자란 사람'이라고 적혀있다. 몇 년째 같은 키를 유지한 걸 봐서는, 나는 다 자란 사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신체는 다 자랐어도 정신적으로는 끊임없이 자라고 있다. 체력은 예전만큼 못 하지만, 여전히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세상을 탐구하고 있다. 어른이라는 이유로 체념하고 싶지 않고, 어른이라서 현실과 타협하고 싶지 않은 나는 잘 나이든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지 자문해 본다.
친구들의 일상 대화 속에는 새로운 가정에 대한 책임감과 안정감이 내포되어 있다. 막연히 열정만 가지고 하고 싶은 걸 쫓기엔 고려해야 할 요소가 많아졌다. 아쉬운 마음에 만약 대학생으로 돌아간다면 어떤 전공을 택할지, 어떤 진로를 가질지, 어떤 경험을 쌓을지, 지나오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을 토로한다. 늘 그렇듯, 더 많이 실패하고 더 많이 도전하지 못한 걸 후회한다. 그때는 할 수 있었지만 지금 주저하는 이유는, 지금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기엔 쌓아온 10년이라는 커리어를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학생 때는 애초에 포기할 커리어가 없었기에 무모해 보일지라도 도전할 수 있지 않았을까. 어른은 그런가보다. 뭔가를 선택하기에 앞서 기회비용을 따지느라 점점 더 선택이 어려워지는 존재.
아이와 어른이 똑같이 새로운 걸 시도했을 때, 아이라고 해서 더 빨리 배우는 게 아니다. 아이도 어른과 똑같이 어렵다. 다만 어른은 아이보다 더 빨리 포기할 뿐이다. 피아노를 같이 시작해도 어른은 금세 늘지 않은 자신의 실력에 실망하고 쉽게 포기한다. 살아오면서 수없이 많은 훌륭한 피아노 연주를 들었으니, 높은 기준치에 비해 늘지 않는 자신의 실력을 탓하고 재능이 없다고 으레 짐작해 버린다. 반면, 상대적으로 경험이 적은 아이는 비교할 대상이 없기에 그저 자신의 속도대로 나아가다 보니 어른보다 더 빨리 배우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결국, 나이가 들어가는 과정에서 스스로를 얼마나 잘 이해하고, 변화에 맞춰 살아갈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인 것 같다. 무언가를 포기하고 새로운 길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도전과 성장을 이어가는 마음가짐을 갖는 것이 진정한 어른이 되는 길일지도 모른다. 나이를 먹어가며 더 많은 책임이 따르고, 때로는 현실을 직시해야 하지만, 여전히 꿈과 호기심을 품고 살아가는 마음이 중요하다. 그러니 나는 지금도 ‘잘 나이 들고 있다’고 믿으며, 어른이라는 이름의 여정을 계속해서 걸어가고 싶다.
양유진/글러벌 서비스 담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