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이 인생에게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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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 https://milgyonews.net/news/detail.php?wr_id=39838작성 : 밀교신문

가을 햇빛 아래 노란 잎과 붉은 잎이 바람에 흔들리며 하늘을 비행하듯 마지막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자연은 참으로 솔직하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색을 숨기지 않고, 사라지기 직전까지 가장 뜨거운 붉은빛으로 태연히, 그리고 담담히 존재를 드러낸다. 그때 한 장의 붉은 잎이 천천히 하늘을 가르며 다가와 속삭이듯 묻는다.
“넌… 정말 나처럼 너만의 색으로 살아가고 있니?”
그 질문에 나는 문득 어린 시절을 떠올린다. 그때 나는 부모의 색 안에서 자랐다. 부모님의 삶의 방식과 기대, 가치관이 나의 모든 결정에 자연스레 배어 있었지만, 그 시절의 나는 연초록빛을 띤 보호받는 아이의 색이었다. 순하고 부드러운 희망을 품은 색이었다.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린 뒤에는 가족의 색채 속에서 지냈다. 아이를 위해, 배우자를 위해, 가정을 위한 선택이 일상이 되었고, 언제나 ‘우리’라는 색이 우선이었다. 그 속에서 나의 색은 자연스레 묻혀갔지만, 돌이켜보면 그 시절의 나는 여러 겹의 꽃잎으로 둘러싸인 꽃분홍색이었을 것이다. 아름답고 따뜻했지만, 여전히 ‘나만의 색’이라고 말하기엔 부족한 색이었다.
직장에서는 대학 구성원으로서의 색이 나를 규정했다. 조직의 목표와 학교의 방향에 맞춰 움직이고, 학생과 동료를 배려하며 하루하루를 채웠다. 누군가의 필요를 먼저 생각하고 한 걸음 물러서는 삶이 어느새 너무나 익숙해졌다. 물론 그 삶은 의미 있었지만, 문득 돌아보면 그 속에서도 나는 늘 ‘누군가를 위해 나를 불태우는 붉은색’으로 존재해 온 것은 아니었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그리고 그 질문 앞에서 다시 한 번 마음이 멈춘다.
“과연 나는… 나만의 색으로 살아본 적이 있었던가?”
잠시 침묵이 흐르고, 마음속에 잔잔한 반성의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나는 늘 누군가를 위해 살아왔고, 누군가의 기대와 요구를 채우느라 바쁘게 움직였지만, 정작 ‘나의 본래 색’이 무엇인지 깊이 들여다볼 겨를조차 없었던 것은 아닐까.
<법구경>의 “一切行無常(일체행무상)”이라는 말처럼 모든 것은 흘러가고 머물지 않는다. 부모의 색, 가족의 색, 직장의 색도 결국 한 시절의 색일 뿐이다. 그러나 무상함 속에서도 여전히 빛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결국 ‘본래의 나를 찾아가는 과정’일 것이다. 또한 <유마경>의 “心淨則國土淨(심정즉국토정)”이라는 말처럼, 마음을 맑게 하고 나를 바라볼 때 비로소 내가 지닌 본래의 색이 무엇인지 선명하게 드러난다.
낙엽이 빛을 받아 색을 더 선명하게 한다. 사라지는 순간에도 낙엽은 자신이 가진 색을 온전히 드러낸다. 마지막을 향해 갈수록 그 색은 오히려 더 또렷해진다.
가을 단풍은 오래 머물지 않는다. 그러나 붉은 잎 하나가 던진 질문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인생 또한 오래 머물지 않는다. 영겁의 시간 속에서 우리의 삶은 한순간의 찰나에 불과하다.
“이제라도 너의 색으로 살아갈 준비가 되었느냐고?”
붉은 잎의 속삭임 같은 그 물음이 올가을, 내 삶의 방향을 다시 세우게 하는 조용한 울림으로 남는다. 그리고 나는 마음속에서 작은 목소리로 다짐해 본다.
이제는 나의 본래 색으로 살아가리라고.
장덕희/위덕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