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과 모험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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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 https://milgyonews.net/news/detail.php?wr_id=39731작성 : 밀교신문

얼마 전 호주 연수에 참여했던 한 교장에게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현지 초등학교 운동장의 큰 나무를 놀이터 삼아 오르내리는 아이들과, 이를 제지하기는커녕 자연스럽게 지켜보는 교사들의 모습이 무척 인상 깊었다는 것이다. 의아함에 이유를 묻자 "무엇이 문제냐"는 듯한 표정이 돌아왔다는 이야기는, 우리 교육 현실에 많은 점을 시사한다.
이 일화는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삼는 우리의 교육 환경을 되돌아보게 한다. 오늘날 우리 아이들의 놀이터는 어떤 모습인가. 만에 하나라도 사고가 날까, 역동성과 도전 정신을 자극하던 정글짐이나 회전 놀이기구는 대부분 자취를 감췄다. 그 자리는 파편화되고 단조로운 ‘안전한’ 시설물들이 채우고 있다. 체험학습이나 수학여행 같은 교실 밖 활동 역시 마찬가지다. 불의의 사고 소식이 들려오거나 작은 민원이라도 제기될까 두려워 아예 활동 자체를 취소하거나 대폭 축소하는 학교가 늘고 있다.
물론 아이들의 안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가치다. 하지만 모든 위험 요소를 원천 차단하는 방식의 ‘과잉보호’가 과연 아이들을 위한 최선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보호라는 명목 아래 만들어진 지나치게 안전한 울타리는, 역설적으로 아이들의 성장 기회를 박탈하고 더 큰 위험에 취약하게 만들 수 있다. 넘어져 본 아이만이 스스로 일어서는 법과 균형 잡는 법을 배우듯, 아이들은 작은 실패와 좌절을 겪으며 위험을 판단하고 대처하는 능력을 기른다. 모든 것이 통제된 무균실 같은 환경은 아이들의 자율성과 도전 의식을 억누르고, 장기적으로 문제 해결 능력과 회복탄력성 발달에 악영향을 미친다.
해답은 ‘균형’에 있다. 치명적인 위험은 철저히 방지하되, 아이들의 성장에 밑거름이 될 ‘계산된 위험(Calculated Risk)’을 허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아이들이 나무에 오르며 자신의 신체 한계를 시험하고 성취감을 맛볼 기회를 주되, 교사는 만일의 사태를 막는 최후의 관찰자 역할을 하는 호주의 사례는 좋은 본보기다. 수학여행을 무조건 취소하기보다, 철저한 사전 답사와 강화된 안전 교육을 통해 아이들 스스로 위험을 인지하고 대처하는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 더 교육적인 해법이다.
우리 사회가 아이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것은 위험이 완벽히 제거된 세상이 아니라, 위험을 현명하게 헤쳐나갈 수 있는 능력과 용기다. 아이들의 안전과 성장은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 아이들이 마음껏 도전하고 때로는 실패하며 더 단단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교육 현장의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할 때다. 좀더 자신있게 학생들을 지도할 수 있도록 교사에게 힘을 실어줘야 하며, 고의성 없는 안전사고에 대해서는 면책권을 줘야 한다. 이제는 우리 아이들이 ‘안전한’ 아이를 넘어, ‘현명하게 모험하는’ 아이로 자랄 수 있는 사회적 환경과 교육 철학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신용식/진선여중 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