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각의 세계를 열다
뉴스 원문 정보
원문 : https://milgyonews.net/news/detail.php?wr_id=39503작성 : 밀교신문
6) 심인당 헌공불사와 화합승단
(1) 심인당의 신설
종단은 진각문화 창달과 보급을 위해 옛 건축부 부지에 진각회관을 건립하기로 했다. 진각회관 건립은 원의회의 결의(41,12.24)와 종의회의 의결을 거쳐(43,5.25) 추진되어 왔다. 원의회는 진각회관 건립은 10층 규모로 하고 다목적 다용도로 스승 후생복지로 사용하기로 했다. 진각회관 건립은 종의회가 원의회의 결정을 추인해 추진했으나, 그 과정에 많은 문제가 발생하여 늦춰졌다. 진각회관은 종단의 복지와 포교 활성화를 위해 대구시 대봉동 56-1번지 현지에서 건축 지진불사를 올리고 1,500평 부지에 지하 1층, 지상 8층의 건물을 짓기로 했다(48,11.19). 현대 대중화 사회에 부응해 지역 불교문화의 활성화에 크게 기여할 진각회관의 건축이 전 종도의 염원 속에 완공돼 무변법계에 헌공했다(50,10.17). 진각회관은 진각문화회관으로 최종 명칭을 확정하고 주차장, 사무실, 세미나실 등 다목적으로 사용하기로 하고 8층은 새로 개국한 대구불교방송이 사용했다.
총인원 종무원의 주거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총인원 뒤뜰에 성취관을 지어 헌공했다(51,11.17). 성취관은 지하 1층, 지상 4층의 건물로 종무원 거주처로 사용했다.
(2) 스승의 발자취
종단의 교화가 전개되면서 스승의 임명과 퇴임이 많이 이루어졌다. 젊고 유능한 스승이 교화에 나서고, 교화에 평생을 바친 원로스승이 퇴임해 기로원에 진원했다. 또한, 연로한 원로스승의 열반 소식도 이어졌다. 종단 교화 초기부터 종조의 무진서원을 받들어 교화하고 종조열반 후 종조의 유교를 실천하면서 교화에 정진하던 원정각 총인이 주석처인 밀각심인당에서 열반에 들었다(48,2.25). 원정각 총인은 울릉군 북면 천부동에서 탄생해 종조 회당대종사와 일생의 반려자로서 인연을 맺었다. 종조의 중생교화의 무진서원에 함께하여 창교의 어려움을 극복하며 중생교화에 매진한 후 종조의 열반 후 종도의 간청에 따라 종단의 최고 법통인 총인직을 수행하며 종조의 교법 유교를 실천했다. 교화 중에는 근검절약의 생활을 솔선수범하며 세속과 성직을 조화시키며 광제중생의 서원으로 교화에 정진했다. 세연이 다해 세수 90세, 법랍 48세로 종조 법통의 교계를 부촉하고 열반에 들어 법계에 귀향했다. 종단은 장의위원회를 구성해 장의 절차를 진행하고 고결식 후 다비의식을 거행했다(48,3.1). 장의위원장 지광 통리원장과 국내외 스승과 신교도가 운집하고 회당학원 이사장 손제석 등 종단 산하 각 기관의 구성원이 집결해 한국불교종단협의회 의장 서의현 및 불교계, 관계, 정치계 내빈 등 4,000여 명이 동참한 가운데 총인원에서 고인의 근검절약 정신을 받들어 장엄하면서 간결한 고결불사를 올렸다. 고결불사는 원정각 총인의 행장 소개와 육성법문을 듣는 추도묵념에 이어 장의위원장의 고결사 등의 순서로 진행해 스승을 잃은 심정을 가누며 생전의 업적을 회고했다. 장의절차는 고결불사를 마친 후 150여 명의 스승이 운구차로 이운해 고양시 벽제다비장에서 다비불사를 거행했다. 상주 손제석이 입회한 가운데 4명의 스승이 습골해 1차로 10과, 2차 54과 등 총 64과의 사리를 수습했다. 종단은 원정각 총인의 열반 49일 불공을 전국 심인당에서 여법하게 봉행해 회향 추념불사를 열반지인 밀각심인당에서 올렸다(48,4.14). 종단의 간부와 스승, 신교도 100여 명이 동참해 원정각 총인이 법계에 상주해 종단 교화의 법등이 되어 주시기를 서원했다. 이날 회향 추념불사에 동참하지 못한 신교도는 당해 심인당에서 생전의 위덕을 기리는 불사를 올렸다. 원정각 총인의 열반 49일 불공을 회향하고 종단은 서울, 대구, 대전에 사리 친견법회를 열었다. 원정각 총인 사리 친견법회는 서울(총인원 대강당)을 시작으로(48,4.19) 대전으로 이운해 법회(신덕심인당)를 열고(48,4.26) 또한 대구로 이운해 법회(불승심인당)를 5일간 봉행했다(48,4.27). 열반한 원정각 총인의 열반비와 탑을 생전에 교화한 밀각심인당에 건립하기로 했다(49,10.23). 신교도와 일반불자 35,000여 명이 생전 대정진의 결정체인 영롱한 사리를 친견하며 법열을 느꼈다.
원정각 총인의 열반 후 최정심인당에서 교화한 중덕(49,8.26), 관음심인당에서 교화 정진한 선덕심(50,8.23), 밀각심인당에서 교화 중에 열반한 혜강(51,2.3), 정제심인당에서 교화한 정정원(51,2.28), 보정심인당에서 교화한 법광(51,6.16), 관음심인당에서 교화하고 제16, 17대 통리원장을 역임한 장명(51,10.20), 각계심인당에서 교화한 대경(52,5.26), 법화심인당에서 교화한 총지정(52,5.26) 스승 등 많은 스승이 열반에 들어 법계로 돌아갔다.
한평생 교화에 전념하다 수행과 여생을 향수하던 안인정의 사회집 봉정 및 퇴임식을 봉행했다(50,3.21). 종조의 유지를 받들기 위해 극구 사양했지만, 따르던 스승과 신교도가 편집 출간한 사회집 ‘연꽃으로 물들이고’의 봉정을 강권해 올렸다. 또한, 기로진원을 앞두고 대안화의 후학들이 ‘회향의 죽비 소리’를 펴냈다(52,5.6). 대안화의 곁에서 교화 생활을 한 후학들이 펴낸 ‘회향의 죽비 소리’는 대안화의 행장, 교화일화, 설법모음의 3편으로 편집됐다. 사회집은 대안화를 ‘크고 편안한 빛’ 법호처럼 연꽃을 닮은 스승으로 묘사하고 있다. 특히 대안화는 “상불 앞에서는 불보살의 명호를 부르는 것이 맞는 법이요, 마음부처님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진언을 부르는 것이 맞는 법이다. 이 진언을 부르는 사람은 먼저 자기 몸이 건강해지며, 온 가족에 우환이 없어지고, 가난이 해탈되며, 조상이 천도되고 자손들이 잘된다”고 육자진언의 무량한 공덕을 설했다.
종단은 스승의 화합과 건강을 다지기 위해 주기적인 행사로 한마음수련회를 가졌다. 지광 통리원장의 취임으로 제3회 스승한마음수련회를 대둔산 국립공원에서 가졌다(46,9.27). 한마음수련대회는 1박 2일간 법락회와 등반대회 체육회 등 화합과 건강을 다지며 진행됐다. 성초 통리원장은 제천 청소년수련관에서 제10회 스승한마음수련대회를 가졌다(54,5.25).
한마음수련대회는 ‘젊은 층을 제도해야 한다, 자성학교 학생회 청년회를 활성화하자, 대중법회를 활성화하자’는 등의 주제로 법락회, 체육회, 분임토의 등으로 2박 3일간 화합과 건강을 다지고 21세기 교화방안을 논의했다.
종단 스승이 해외 심인당을 방문해 법회를 열고 해외 포교를 격려하는 기회도 자주 가졌다. 락혜 통리원장은 중국 흑룡강성 해동포교소를 방문해 해동촌의 농업촌장, 상업촌장, 당서기 등 촌내 유관 인사와 신교도들이 참석한 가운데 수요불사를 올리고 법문했다. 락혜 통리원장은 법문을 통해 “조국 독립을 위해 우국충정을 불태우던 선열들의 얼이 서린 이 땅에 심인진리를 뿌리 내리기 위해 여러분과 마음을 모아 용맹정진할 수 있어 감개무량하다”면서 향후 중국 포교 계획과 통일 후 북한 포교 등에 관해 의견을 교환하고 신교도들의 발심과 용맹정진을 당부했다(50,7.29).
락혜 통리원장은 중국 방문에 이어 미국 LA 불광심인당을 순방하고 자성일 불사를 집전하며 신교도의 수행을 격려했다(50,8.23). 자성일 불사를 마친 후 신교도와 대화의 시간을 가지고 수계관정불사, 청년회 한글학교, 자성학교 운영 등에 대한 건의를 들었다. 락혜 통리원장은 또한, 불광심인당 주교인 지현 정사의 안내로 LA 총영사관을 방문해 박태희 총영사와 환담하며 종단의 포교활동에 대해 공관의 관심과 지원을 요청했다. 또한 남가주사원연합회 소속 불교지도자들과 아침공양을 하며 교포 불자들의 종단 이미지에 관한 견해를 청취했다. 락혜 통리원장은 8일간 현지 방문을 통해 중앙일보, 미주 한국불교방송 등 현지 언론들과 인터뷰를 가졌다. 성초 통리원장은 종사 스승과 함께 미국 법광심인당 불광심인당과 캐나다 토론토의 현지 신교도 가정 방문을 하고 현지 교화의 어려움을 듣고 종단의 지원을 약속했다(54,11.16). 성초 통리원장은 임기 만료가 다가오면서 종교활동을 통해 국민화합과 국민 복지증진에 기여한 공로로 정부의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54,6.9). 기로원 스승의 수행을 본받고 법문을 듣는 한편 기로스승의 생활을 살펴보기 위해 교구청마다 기로원 방문을 정례화했다. 경주교구청은 기로원과 수도원을 차례로 방문하고 과일 등 준비한 공양물과 공양금을 전달하고 법담을 나눴다(52,6.15).
-진각종 역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