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마니반메훔’ 염송으로 매일매일 참회하는 삶 살아가”

밀교신문   
입력 : 2026-03-05  | 수정 : 2026-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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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원심인당 신교도 자재정 보살

 

7면 자재정 보살 (1).jpg

저희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께서는 조계종 신도였다가, 종조님을 뵙고 심인당을 다니게 되셨습니다. 자연스레 어머니께서도 심인당에 다니셨고 신심이 두터우셨습니다. 그 당시 제가 어린 시절 새벽 5시면 정송을 시작하시며 저를 깨우셨고 저는 잠을 못 이겨 눈을 비비고 앉아 염송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어릴 적 우리 가족은 대구 희락심인당에 다녔고,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로 취업했다가 다시 귀경하기까지, 희락심인당은 유년기와 청년기의 요람이었습니다. 5살쯤인가? 심인당 불사 시간에 염송하시는 할머니 앞에서 방석에 누웠다가 까무룩 잠이 들었고 깨어나 보니 불사가 끝나 텅 빈 법당에 무릎 덮개를 덮고 있었습니다. 눈을 비비고 마당으로 내려가니 보살님들이 두런두런 법담을 나누시다가 웃으시며 맞아주시던 기억이 제게는 힘들 때마다 떠오르는 따뜻한 장면입니다. 

 

전 국민이 경제적으로 무척 어려웠던 시절이라 밥 지을 때마다 식구 수대로 한 숟갈씩 절량미를 모았고 희사고에는 지폐보다는 동전이 많았던 기억이 납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어머니께서는 일말의 의심 없이 순수하게 믿고 용맹정진하셨습니다. 저와 남동생은 아버지가 안 계셔서 외할아버지 열반 후 외할머니와 어머니와 살면서 자연스레 어릴 때부터 염송하고 자성일에는 심인당에 가는 것이 당연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외할머니와 어머니는 경제적으로도 심적으로도 어렵고 고단했던 시절에 가난을 이기고 저희 남매를 키우시는데 사력을 다하셨고 비로자나부처님을 마음에 모시고 옴마니반메훔에 의지하시며 힘을 내셨던 것 같습니다.

어릴 때부터 저는 운이 무척 좋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유년기에 대구 계산성당 앞 대로를 건너다가 달려오는 차에 치여 깨어보니 병원이었습니다. 주변 말로는 너무나 크게 쿵 하고 부딪히는 소리가 나서 모두가 나와 볼 정도라고 했는데 저는 갈비뼈에 소독제 정도만 발랐던 기억이 날 정도로 멀쩡했습니다. 어머니 말씀이 제가 사고가 나기 전부터 불안함을 느꼈고 그때마다 열심히 불공하셨다고 합니다. 학창 시절에도 이상하게도 제가 마음만 먹고 도전하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일들이 모두 이뤄지곤 했습니다. 그때는 그것이 당연한 것 인줄로만 알았는데 지금 돌이켜 보면 외가와 어머니께서 자손을 위해 오로지 정진하셨던 공덕을 자손인 제가 마일리지처럼 쓴 것 같았습니다.

 

아찔한 순간은 또 있었습니다. 대학생 때 지방으로 여행을 가다가 남자 어른들이 목적지와 방향이 같다며 태워준 적이 있습니다. 인신매매가 뉴스거리가 될 때였는데 엉겁결에 타기는 했으나 갈수록 위협이 느껴졌습니다. 그 순간 부처님의 가피로 헌병 초소에서 차가 섰고 거기서 저는 내려 위기를 모면하게 되었습니다. 몇 해 전에는 큰 사고가 나서 병원에서는 생존율이 50% 미만이거나 장애가 생겨 다리를 절 수도 있다고 했지만 너무나 멀쩡하게 회복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저는 지금 서울 혜원심인당에서 불심을 키워가고 있습니다. 심인당에서 청효 정사님, 수정원 전수님께서 “‘옴마니반메훔’ 염송을 하는 불자에게는 험악한 일이 생기지 않는다”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 순간 지금까지의 온전한 삶이 부처님의 가피였음을 깨달았습니다.

제게는 우주와 같았던 친정어머니께서 돌아가시고 한동안 염송도 하지 않고 심인당에도 가지 않았을 때가 있었습니다. 우울증이 심하게 왔었죠. 어머니께서는 13년간 아프셨고 간암으로 열반하셨습니다. 어머니도 저도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삶의 덧없음에 의욕을 잃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평생을 열심히 심공하셨는데 왜 저렇게 모질게 아프셨을까?’ 의구심을 갖고 원망했습니다. 저는 어머니를 잃고 신심도 잃고 미래의 희망도 놓아버렸습니다. 가끔 호스피스 병동의 병실에서, 그리고 임종을 앞둔 임종실에서 어머니께서 무의식중에 입술을 움직여 ‘옴마니반메훔’ 염송하고 계셨던 모습이 떠오르면 그 순간까지도 저를 위해 염송의 끈을 놓지 않으셨던 것 같아서 죄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꿈속에서 어머니는 큰 법당에 깨끗한 옷을 입으시고 스승님 앞에서 설법을 듣고 계셨어요. 저는 창밖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었는데 어머니께서 웃으시며 안심하라는 표정과 함께 어서 가라고 손짓하셨어요. 그래서 저는 제 창고에 들어갔는데 아무것도 없고 거미줄만 무성했으며, 경전을 아무리 읽으려 해도 시야가 흐려져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때 깨달았어요. 그동안 제가 무사히 살아온 것은 어머니께서 저를 위해 열심히 염송하여 그 공덕을 제 창고에 쌓아 주신 덕분인 것을요. 원망만 하고 일상에 찌들어 그 공덕을 다 갉아먹었으니, 창고에 거미줄만 남았음을 꿈에서나마 보게 된 것이었지요. 어머니는 열반하시어 극락왕생하셨으니 제게 어서 심인당에 가보라 손짓하신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듭니다. 

 

꿈에서 깨어 주변을 살펴보니 어머니의 희사고가 보였습니다. 오랫동안 가득 차 있었던 희사고를 열어 희사금을 챙겨 서울 혜원심인당을 찾았습니다. 마침, 새해불공이 시작되는 때여서 불사를 지키고 나니 그 당시 혜원심인당 주교셨던 도진 정사님께서 자초지종을 물으시고 보살님, 각자님들께 저를 소개하시고는 새해불공을 함께 하자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우울증을 극복하기 시작했습니다. 가지관 전수님께서는 항상 저를 살펴 법을 세우고 정진하는 법을 알려주셨고, 도진 정사님께서는 수년간 중단했던 글쓰기를 다시 할 수 있도록 길을 알려주시고 독려해 주셨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패션 전문 기자로서 활동했고 지금도 기자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최근(2025년 12월) 35년 패션 현장 기자의 시선으로 에세이 ‘패션은 이렇게 재미있다’를 출간했습니다. 5년 전부터 책을 쓰고 싶었으나 단 한 줄도 쓰지 못하고 세월만 보냈습니다. 2024년 여름에 49일간 불공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잘하는 일로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실 것과 책을 출간하고 싶다는 서원을 했습니다. 그 이후 좋은 인연을 만나 마침내 제 책을 출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잠시 떠나 있었던 회사에서 다시 연락이 와서 현장을 뛰는 최고령 기자로서 활동하게 되었고, 출간 3개월도 안 되어 초도 인쇄 물량이 소진되어 2쇄를 준비 중이며, 2편 제작 준비도 하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저뿐만이 아니라 저와 주변의 인연 된 사람들까지 모두가 좋은 방향으로 결과를 보여주십니다. 그 과정은 반드시 저의 잘못을 깨닫고 깊이 참회하는 것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업장을 쌓아가면서 운이 좋기만 바라던 삶이 부끄럽습니다. 그리고 지금이라도 열심히 닦아갈 기회를 주심에 부처님과 스승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지금까지 제가 잘 살아왔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디선가 대우를 받으면 그럴 만했다고 생각했습니다. 불자로서 남에게 피해 주지 않고 진리를 깨달으며 살아왔다고 말이죠. 그런데 매일 정송하고 불공을 하면서부터 문득 그 생각이 얼마나 교만했던가? 그리고 힘든 상황이 생길 때마다 주변 사람들의 부족함을 지적하며 핑계와 자위를 해왔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또 말실수로 주변 사람들에게 알게 모르게 상처를 주었음을 깨닫습니다. 그럴 때면 희사와 염송을 하며 깊이 뉘우치고 다시는 같은 죄업을 짓지 않겠다고 부처님께 다짐합니다. 정사님께서 말씀하시길 “모르는 죄가 더욱 크다”고 하셨습니다. 모르면 참회를 할 수 없으니 죄업이 쌓여가겠지요. 그러니 깨닫고 참회할 수 있게 되니 감사합니다.

 

이제는 매일매일 참회하는 삶, 그리고 똑같은 죄업을 쌓지 않기를 서원하고 있습니다. 저 개인보다는 저와 인연 되는 분들이 무탈하게 부처님의 가피를 입기를 서원하고 있습니다. 이타자리가 당연한 삶, 진심을 깨닫고 실천하는 참 보살이 되기 위해 노력하려 합니다.

현대사회를 살아가며 업을 쌓고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많은 사람들에게 진각종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심인당은 인과를 알고 탐심을 버리고 참회하며 자신을 가꾸어 갈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가까운 인연부터, 어린 시절 심인당에 함께 다닌 남동생과 조카들, 그리고 아들 내외가 비로자나 부처님의 품에 들어올 수 있기를 서원합니다. 

 

저는 과거에 가난했던 어린 시절과 부친의 부재에 대해 원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려움에 직면할 때마다 자신을 동정하고 주변을 탓했습니다. 좀 더 신실했더라면 업을 쌓지 않고 순한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이제야 저희 어머니께서는 제가 살아갈 위대한 유산을 남겨주셨음을 진심으로 깨닫고 있습니다. 바로 저를 잉태한 순간부터 임종하시기 전까지 저를 위해 염송하셨고 저를 비로자나 부처님께 맡기신 것입니다. 주변의 원망보다 인과법을 깨닫고 자신을 참회해야 했습니다. 깊이 참회하고 깨닫게 해주심에 감사합니다. 보다 많은 분들이 옴마니반메훔을 염송하시어 해탈하는 삶을 함께하길 서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