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더니 살림하는 재미에 푹 빠졌네” 신혼집을 둘러본 엄마가 말했다. 손자국 하나 없는 깨끗한 냉장고 표면, 햇살이 내리쬐는 창가에 나란히 놓인 통일된 화분, 물기 없는 싱크대와 향긋한 향기로 반겨주는 화장실. 친정과 사뭇 다른 풍경이다. 집안일이 천성인가 싶을 정도로 보이지 않는 곳까지 구석구석 닦고 물건별로 제자리를 찾아주는 게 요즘 나의 일상이다.
부모님과 같이 살 때는 내 방만 관리했다면 이젠 주방, 거실, 세탁실, 베란다 같은 공동구역까지 영역이 확장된 만큼 책임감도 커졌다. 한 곳에만 짐이 쌓이지 않도록 각 방의 역할을 분명히 하고, 1+1로 구매하거나 사은품으로 받은 것들을 잊지 않도록 재고 관리에 특별히 더 신경 쓴다. 하나의 가정은 하나의 기업이다. 나는 이 집의 오너라는 마음으로 내 살림을 예뻐해 주며 하나뿐인 직원을 위해 쾌적함이라는 집안 복지에 신경 쓴다.
살림의 위상이 높아진 건 유튜브도 한몫했다. 유명 연예인이 아니어도 누구나 집 내부를 소개할 수 있다. 개성과 취향을 살린 인테리어 영상이나 집에서 요리하고 먹는 영상이 매일 추천 된다. 요즘 신혼부부들은 어떻게 꾸미고 무엇을 쓰는지 궁금할 땐 <유부남> 채널을 즐겨 보고, 예쁜 것보다 실용적인 살림 노하우를 배우고 싶을 때는 <전국 살림 자랑> 채널을 참고한다.
내 집 마련이라는 꿈은 마음속에 있었지만, 내 공간을 처음부터 아껴줬던 건 아니었다. 밤에 어차피 또 덮어야 하는 이불을 왜 아침마다 개야 하냐고 투덜거리는 사춘기 소녀였다. 이불을 개는 행위를 오늘 하루도 무사히 잘 보내고 집에 돌아오자는 염원을 담는 의식으로 여긴 뒤로 내가 머문 자리를 되돌아보게 됐다. 반복적인 행위가 더 이상 귀찮거나 의미 없지 않게 됐다. 나를 반겨주는 공간을 통해 나를 존중하는 법을 배우게 된 것이다.
살림은 조금만 소홀해도 금세 티가 난다. 정리를 마친 공간을 보고 있으면 커다란 보석함이 내 손에 쥐어진 느낌이다. 이 속에서 일어나는 나의 일상을 빛내기 위해 오늘도 닦고 쓸며 정리한다. 내 보석함에 들어온 모든 것은 하나의 보석이다. 한 가정의 일상을 능숙하게 꾸린 딸을 보며 어쩌면 엄마는 드디어 딸이 결혼했다는 것이 실감 나지 않았을까.
양유진/글러벌 서비스 담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