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교신문

33.가만히 들여다 보는 경전-격려

입력 : 2019-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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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 http://milgyonews.net/news/detail.php?wr_id=30655
작성 : 밀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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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데에는 힘이 듭니다. 그 힘을 혼자만 내기에는 벅찰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럴 때 누군가 옆에서 어깨를 툭툭 쳐준다면, 그 힘에 기대어 다시 한 번 살아갈 힘을 낼 수 있습니다.
격려가 바로 그런 일을 합니다.
 
“잘 했어.”라는 칭찬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잘 할 수 있어. 다시 한 번 힘을 내봐. 너는 충분히 할 수 있잖아.”라고 그에게 힘을 불어넣어주는 것이 격려입니다. 격려라는 말의 영어 단어 encouragement를 보면, 이 단어 속에 용기라는 뜻의 courage가 들어 있습니다. 사람을 기쁘게 하는 일에는 칭찬도 있습니다. 하지만 칭찬과 격려는 조금 다릅니다. 칭찬은 누군가가 멋진 일을 했을 때 주는 것인데, 격려는 거기에만 멈추지 않습니다. 칭찬이 밖에서 주어지는 찬사라면, 격려는 내면에서 힘을 내게 하여 그가 하려는 일을 완성하게 해줍니다. 행여 실수나 잘못을 했을 경우 그에게 움츠려들지 말고 다시 한 번 일어서라고 힘을 불어넣어주는 것입니다. 요즘처럼 자존감이 바닥까지 추락했다는 사람들이 많을 때 이 격려의 한 마디가 갖는 힘은 큽니다.
 
불교에서는 어떨까요?
 
경전 속에 등장하는 부처님 모습에는 뜻밖에도 사람들을 격려하는 장면이 자주 비칩니다. 단적으로 말해서, 법문을 들으러 온 사람을 “위로하고 격려하고 고무시켰다”는 문장도 많이 봅니다. 부처님은 중생을 늘 격려하신 분입니다. 자신의 잘못에, 자신의 어리석음에 위축된 자들에게 법문을 들려주어 그들의 마음에 기쁨을 일으키고, 자신 있게 살아갈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아주신 분이지요. 심지어 연로하여 삶의 마지막 자리를 찾아 나선 부처님 당신에게 소화하기 버거운 음식을 내어서 지독한 괴로움에 시달리게 만든 이에게도 부처님은 아난 존자를 보내 그를 위로하고 격려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해볼까요?
초기경전인 <디가 니까야>에 들어 있는 <대반열반경(마하빠리닙바나 숫따)>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완전한 열반을 자세하게 들려주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석 달 뒤에 완전한 열반에 들겠다.”
 
어느 날 부처님이 이렇게 언표하셨습니다. 이 사자후는 악마 빠삐만을 춤추게 했습니다. 진리의 스승 부처님이 더 이상 세상을 살아가지 않겠다고 선언하셨으니, 번뇌를 상징하는 악마 빠삐만은 제 세상을 만난 것만 같았지요.
 
어쩌겠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부처님이 영원히 세상에 머무시면서 중생들에게 감로법문을 들려주셨으면 좋겠지만, 모든 것은 덧없기 짝이 없는 법! 육신을 지닌 석가모니 부처님도 이 덧없음이라는 이치를 따를 밖에요.
 
석 달 뒤 완전한 열반(반열반)에 들겠다고 선언하신 이후에도 부처님은 길 위를 걷는 일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걷고 또 걸으면서 숱한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에게 소중한 진리를 나누어주었습니다. 80세의 고령인 부처님은 당신 자신의 몸 상태에 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난다여, 나는 지금 늙었다. 날이 갈수록 쇠약해져가고 있다. 이미 여든을 넘은 나는 마치, 다 부서진 수레가 밧줄로 간신히 유지되듯이, 지금 여래의 몸도 그와 같다.”
 
이 말씀을 보면, 생의 마지막에 이른 부처님 상태가 어떤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다 부서진 수레를 밧줄로 꽁꽁 묶어서 간신히 끌고 가듯, 부처님은 늙고 쇠약해진 몸뚱이를 간신히 지탱하고 계신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어느 안락한 오두막에서라도 부처님은 쉬셔야 했습니다. 하지만 부처님 일생에 ‘휴식’은 없었습니다. 한 사람이라도 더 만나 법을 들려주기 위해 맨발로 뜨겁게 달아오른 흙바닥을 걸어서 앞으로 나아가셨습니다.
 
그렇게 부처님께서는 말라 족의 도시인 빠바에 도착하였습니다. 그곳에 살고 있는 대장장이 아들 쭌다(Cunda, 춘다)는 부처님께서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한 달음에 달려갔습니다. 부처님은 쭌다에게 법문을 들려주시며 그를 독려하고, 고무하고, 기쁘게 하셨습니다. 쭌다의 마음에 커다란 기쁨이 자리했고, 그는 행복한 마음으로 부처님께 다음날 자신의 집에서 공양을 드십사 청했습니다.
 
그리하여 부처님은 다음날, 수많은 스님들을 거느리고 쭌다의 집을 찾으셨지요. 쭌다는 자기 손으로 직접 정성스레 음식을 만들어 부처님과 스님들에게 올렸습니다. 그가 특별식으로 준비한 음식은 쑤까라맛다바.
 
부처님은 쭌다가 정성스레 만들어 공손한 마음으로 올리는 이 음식을 받으시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쭌다여, 지금 이 음식은 내게만 주십시오. 스님들에게는 다른 맛좋은 음식을 주기 바랍니다.”
 
쭌다는 부처님의 말씀을 따랐습니다. 부처님은 쑤까라맛다바를 드신 뒤 다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남은 쑤까라맛다바는 구덩이를 파고 묻으십시오. 이 세상에서 이 음식을 소화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대장장이 아들 쭌다는 부처님 말씀대로 했습니다. 귀한 재료로 정성을 다해 만든 음식인데 땅에 묻으려니 어쩌면 좀 아깝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부처님의 특별한 지시인만큼 그는 그대로 따랐습니다.
 
부처님과 스님들의 공양이 모두 끝난 뒤 다시 쭌다를 위한 법문이 펼쳐졌습니다. 그리고 부처님은 그의 집을 나와서 다시 길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그 지독한 통증은 바로 이때 부처님에게 찾아왔습니다. “피가 나오는 이질에 걸렸다”라고 경에서는 말하고 있습니다. 80세, 연로한 부처님이 맨발로 뜨겁게 달아오른 길을 걸어 다니시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심한 이질에 시달립니다. 부처님은 오늘이 당신에게 지상에서의 마지막 날임을 알아차리셨습니다.
 
부처님은 힘겹게 발걸음을 옮겨 말라족의 꾸시나가라 근처 망고 숲에 이르렀습니다. 자리를 깔고 지친 몸을 누이신 뒤 아난 존자를 불러 이렇게 부탁하십니다.
 
“행여 누군가 쭌다에게 ‘그대가 부처님에게 드린 음식으로 부처님이 완전한 열반에 드셨다. 그대는 이 일로 아주 큰 불이익을 가지게 될 것이다’라고 말해서 그를 두려움과 회한에 빠지게 할지도 모른다. 아난이여, 그대는 대장장이 쭌다의 그 회한을 없애주어야 한다. 그대는 쭌다에게 이렇게 일러주어라. ‘벗이여, 그대는 부처님께 마지막 공양을 올렸습니다. 그 공양을 드시고 부처님은 완전한 열반에 들었습니다. 이 일은 그대에게 아주 커다란 이로움이 됩니다. 나는 부처님 앞에서 이렇게 들었습니다. 부처에게 올린 공양 중에 세상 그 어떤 공덕보다 훌륭한 공양이 두 개가 있다. 그것은 바로 부처님이 위없는 깨달음을 얻을 때 드셨던 공양과, 완전한 열반에 드실 때 드셨던 공양이다. 쭌다는 이 공양으로 장수하고, 훌륭한 용모를 갖추고, 명성을 얻고, 천상에 태어나고 권력을 얻게 될 것이다.’라고”
 
아난다 존자에게서 이 말을 전해 들었을 쭌다를 상상해 봅니다. 신들과 인간의 스승이신 부처님을 너무나 고통스런 이질에 걸리게 한 장본인이었던 자신, 이 세상에 완전한 행복과 평화를 안겨다 줄 스승을 죽음으로 내몬 자신. 부처님 ‘죽음’의 직접적인 원인제공자가 되고 말아 영원히 불행을 겪을 것만 같은 자신. 그 엄청난 죄책감과 자책감으로 그는 두려움에 떨고 있었을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당신이 그 음식만 올리지 않았더라면…”이라며 날카로운 비수를 꽂을 것만 같아서 집밖 출입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세세생생 죄인 아닌 죄인으로 살아가리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힌 쭌다를 향해 부처님은 “괜찮다”고 위로만 하시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대의 공양은 부처님 생애 가장 뜻 깊은 것이었다’고 격려했습니다. 오히려 ‘그대는 큰 복을 지었고 커다란 행복을 불러올 선업을 지었다’고 격려했습니다.
쭌다는 부처님이 지상에서 드신 마지막 공양을 올린, 참 귀하고 복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아마 그는 남은 생애를 행복하게 살면서 더 열심히 선업을 지었을 것입니다. 깊은 절망의 구렁텅이에 떨어질 뻔했던 그를 크게 격려하고 용기를 불어넣어준 부처님처럼, 격려는 한 생명을 다시 살게 해줍니다. 지금 누군가에게 그 훈훈한 응원이 몹시 필요할 것입니다. 격려하고 지지해서 그를 다시 용기 내어 살게 해줘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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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령/불교방송 FM 진행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