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교신문

28.가만히 들여다 보는 경전-노력하다

입력 : 2019-02-01  | 수정 : 2019-04-03

뉴스 원문 정보
원문 : http://milgyonews.net/news/detail.php?wr_id=30365
작성 : 밀교신문

20181231095351_2c5973a4d08b04993b0ece3a91f85f39_hhhp.jpg

노력하다

 

 

지혜의 칼을 꺼낼 때까지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일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무엇을 할 것인지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그것이 내게 이롭다고 판단되면 즉각 실천합니다.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먼저 뭔가를 하겠다고 뜻을 일으켜야 하겠지요.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열심히 하기, 노력하기가 아닐까 합니다. 이런저런 조건들이 맞지 않을 때 사람들에게는 그 일을 그만두어야 할 이유가 수 십, 수 백 가지 떠오릅니다. 하지만 관둬야 할 이유가 떠오를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해낼 것이다라고 더욱 마음을 굳히고 실천을 멈추지 않는 일이 중요합니다. 노력과 정진은 그런 까닭에 힘이 드는 일이고, 힘이 들수록 더 노력하고 정진해야 합니다.

 

노력이란 한자어에는 힘 력()자가 들어 있고, 정진을 뜻하는 산스크리트어 비랴(virya/팔리어로는 viriya)에도 용감하게 저돌적으로 뚫고 나간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정진이란 말 앞에는 용맹이란 단어가 붙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경전을 보면 정진하라는 말이 참 많이 나옵니다. 어쩌면 중생의 속성이 적당히 하다가 그만 두는 것임을 꿰뚫어보았기 때문이 아닐까요? 바라던 바가 금방 이뤄지면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어떤 바람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시간만 필요한 게 아니라 정성과 노력이 필요한 경우도 많습니다. 처음에는 들뜬 마음에 시작했지만 조금 지나다보면 처음 마음도 식어버리고, 애를 쓰는 일도 힘이 들어 관두는 경우가 잦습니다. 작심삼일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하면 작심삼일을 피할 수 있을까요? 어떤 이는 이런 묘안도 제시합니다. 작심삼일을 사흘마다 한 번씩 하라고 말이지요. 도중에 관두느니 이것도 좋은 방법 같습니다.

 

그렇다면 부처는 정진해서 목적을 이룬 존재요, 중생은 적당히 하다가 온갖 핑계를 대고 그만두는 존재-이렇게 나누어도 좋겠습니다. 경전에는 정진을 강조하는 아주 재미있는 설화가 있습니다. 무기 다섯 개를 지니고 있다고 해서 오무기(五武器)라 불리는 왕자 이야기가 대표적입니다.

 

아주 오랜 옛날, 갠지스강을 끼고 번성한 도시인 바라나시에 왕자 한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 왕자는 일찍이 스승에게 나아가서 학문뿐만 아니라 온갖 기술은 물론이요, 무술까지도 섭렵했지요. 왕자가 어찌나 열심히 배웠던지 오래지 않아 스승은 왕자에게 다섯 가지 무기를 주며 말합니다.

 

이제 더 가르칠 것이 없구나. 나를 떠나도 좋다.”

 

왕자가 스승을 떠나 길을 나섰는데 어느 깊은 숲으로 들어가게 됐습니다. 사람들이 왕자를 말렸습니다. 그 숲에는 사람을 잡아먹는 무시무시한 야차가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왕자는 조금도 겁먹지 않았습니다. 그에게는 다섯 가지 무기가 있기 때문이지요.

 

왕자가 숲으로 들어간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야차를 만나게 됐습니다. 거대한 나무보다 더 키가 컸고, 어마어마한 송곳니를 지닌 야차는 소름끼치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게 섰거라. 드디어 내가 굶주림을 벗어나게 됐구나.”

 

내가 겁먹을 줄 아느냐. 너야말로 조심해야 할 것이다. 내게 덤비면 이 독화살로 널 쏘아버릴 테다.”

 

왕자는 자신을 덮치려는 야차를 향해 맹독이 묻은 화살을 쐈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화살은 야차의 몸에 꽂히지 않고 그 몸의 털에 덜커덕 붙고 말았습니다. 마치 먼지를 털어버리듯 화살을 가볍게 털어내면서 야차가 점점 다가왔습니다. 왕자는 얼른 칼을 뽑아들었습니다. 하지만 칼도 야차의 털에 붙어 버렸습니다. 칼을 내버리고 다시 긴 창을 뽑아들었지만, 창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왕자는 자신이 들고 있던 마지막 무기인 몽둥이를 꺼내들었습니다. 야차를 향해 몽둥이를 휘둘렀지만 그 몸에 닿기가 무섭게 역시나 털에 붙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지금까지 그가 휘두른 독화살과 칼, , 몽둥이는 아무 쓸모가 없었고, 이제 왕자가 제 목숨을 지키기 위해 꺼내들 무기는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왕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스승은 분명 제자인 왕자에게 무기를 다섯 개 주었는데 그 마지막 다섯 번째 무기는 대체 무엇이고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왕자는 자신에게로 다가오는 야차를 향해 돌진했습니다.

 

그깟 무기가 쓸모없어졌다고 겁먹을 내가 아니다. 나는 육탄전을 벌여도 너와 싸워 이길 자신이 있다. , 덤벼라. 너를 가루로 만들어버리겠다.”

 

왕자는 이렇게 외치며 오른손을 휘둘러 야차를 내리쳤습니다. 하지만 앞서 네 가지 무기처럼 그의 오른손은 야차의 털에 붙고 말았습니다. 이어서 왼손으로 야차를 내리쳤지만 마찬가지. 두 손이 야차에게 들러붙자 왕자는 오른쪽 다리로 왼쪽 다리로 야차를 걷어차려 했지만 두 다리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두 손과 두 발이 다 묶이자 왕자는 머리를 야차에게 세게 부딪쳤습니다. 머리라고 별 수가 있을까요?

 

사지와 머리가 야차의 털에 들러붙은 왕자는 이제 꼼짝없이 야차의 밥이 될 지경이었습니다. 과연 야차는 이런 왕자가 당돌하게 보였습니다. 어차피 자신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을 때도 됐는데 여전히 포기하지 않는 왕자의 기세에 놀라기도 했습니다. 그저 빨리 삼켜버리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야차가 왕자를 삼키려고 입을 쫙 벌리자 왕자는 소리쳤습니다.

 

오냐. 네가 제대로 나오는구나. 그렇지. 그렇게 나를 삼켜라. 우리 스승님은 내게 무기 다섯 개를 주셨다. 지금까지 꺼내든 네 개의 무기는 그렇다쳐도 마지막 하나의 무기가 아직 내게 남아 있다.”

이것 봐, 젊은이. 그렇게 말로만 떠들 게 아니라 그 마지막 무기라는 걸 내게 보여주지 그래?”

야차가 비웃으며 말했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그걸 꺼내들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 나를 삼켜라. 내가 네 뱃속에 들어가면 그때 그 무기를 꺼낼 것이다. 내 뱃속에는 칼이 하나 들어 있다. 지혜의 칼이라는 거지. 네가 나를 삼키면 나는 네 뱃속에서 그 지혜의 칼을 꺼내들고 네 뱃가죽을 찢고 나올 것이다. 그러니 어서 삼켜라!”

 

왕자의 말을 듣는 순간 야차는 움찔하고 말았습니다. 왕자의 용기에 주눅이 들고 말았다고 해야 할까요? 대부분의 희생자들은 자신의 그림자를 보기만 해도 지레 겁을 먹고 숨이 끊어지기도 했습니다. 용감하게 맞서 싸우던 이도 있었지만 야차의 털에 자신들의 무기가 들러붙으면 그 순간 무릎을 꿇었고 그래서 야차의 밥이 되어버렸지요.

 

그런데 왕자는 달랐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그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기세등등하게 자신보다 크고 강력한 상대를 향해 맞섰습니다. 야차는 일찍이 본 적이 없는 이런 기백에 크게 흔들렸습니다. 그는 왕자를 놓아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함부로 생명을 해치고 잡아먹은 짓을 크게 뉘우치며 용서를 구했습니다.

 

오무기 왕자는 야차를 물리치고 무사히 숲을 빠져나와 궁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당당하게 왕위에 올랐습니다. <본생경(자타카)>에 들어 있는 이 이야기는 부처님이 게으름에 빠져 수행을 소홀히 하고 있는 제자에게 들려준 것입니다.

 

살면서 하루 24시간, 일평생 죽어라 노력 정진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완급을 조절해가면서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완급 조절에 실패할 때가 많습니다. 쉬어야 할 때 쉬고, 서둘러야 할 때 서두르고, 속도를 내야 할 때 속도를 내어야 바라고 뜻하던 일을 이루는 법인데, 그렇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부처님은 게으른 제자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시면서 노력해야 할 때 노력한 결과 왕위를 얻기까지 한 왕자처럼, 수행하는 사람도 그리해야 한다고 당부하십니다. 게으르지 말고 정진해서 진리의 왕위에 올라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지요.

 

오무기 왕자 이야기에서 마지막 무기가 바로 지혜의 칼이라는 점이 흥미롭지 않습니까? 우리가 열심히 살아가는 것은 행복하게 이번 생을 지내기 위함이지만, 적어도 불도수행의 길에 들어선 사람이라면 자신의 몸속 깊이 들어 있는 지혜의 칼을 찾을 때까지 쉬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지도론>에서는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이렇게 강조합니다. “수행하는 이도 이와 같으니 몸으로 마음으로 쉬지 않는 것이 정진이다.”(계속)

 

7면-노력1 삽화.jpg

이미령/불교방송 FM 진행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