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교신문

22.가만히 들여다 보는 경전-빚지다

입력 : 2018-09-14  | 수정 : 2019-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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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 http://milgyonews.net/news/detail.php?wr_id=29762
작성 : 밀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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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트로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1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가게 된 오딧세우스(로마 신화에서는 율리시스). 배를 타고 바다를 지나야 하는데 아주 큰 함정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바다에는 노래를 부르는 사이렌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 목소리가 어찌나 아름답고 애절한지 선원들은 노랫소리에 홀려 자신도 모르게 바다로 뛰어들었습니다. 누구나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노랫소리를 듣는 순간 이성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그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오딧세우스는 선장인 자신도 예외일 수는 없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선장이며 대장입니다. 사이렌의 노래에 이성을 잃고서 엉뚱한 지시를 내린다면 자기 한 사람의 파국에서 멈추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선원들에게 명령을 내립니다.

 

모두들 밀랍으로 귀를 막아라! 그리고 나를 돛대에 꽁꽁 묶어라! 행여 내가 그곳을 지날 때 무슨 명령을 내리더라도 따라서는 안 되며, 나를 돛대에서 풀어주지도 말아라.”

 

그리하여 세이렌의 노래가 울려 퍼지는 바다를 지나는 동안 오딧세우스와 선원들은 유혹에 흔들리지 않았고 무사히 죽음의 바다를 지나왔지요. 이 신화는 훗날 오딧세우스의 로마표기인 율리시스라는 이름을 따서 율리시스 약정(Ulysses contracts)’이라는 말로도 회자되고 있습니다. , “구속력 있는 자제력 협약을 이용해서 장기적인 이익에 부합하게 하는 것을 가리킵니다.(댄 애리얼리 지음 <부의 감각>중에서)이성을 지녔는데 설마 파멸로 가는 길임을 빤히 알면서도 쉽게 유혹에 이끌릴까 싶기도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이성은 전혀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어쩌면 이리 저리 재느라고 지친 나머지 충동적인 결정을 내릴 수도 있습니다. 인간이란 그토록 지혜롭고 이성적인 존재임과 동시에 불행을 자초하는 길인 줄 알면서도 거침없이 그 길로 내달리기도 하는 비이성적인 존재이기도 합니다.그런데 현대는 전혀 다른 세이렌의 노랫소리가 들려옵니다. 돈의 노래요, 소비의 노래입니다. 그러다 대부분 사람들이 결국 빚을 지고 말지요. 수많은 사람들이 저축은커녕 빚을 지고, 빚을 갚느라 또 빚을 지며 빚의 굴레에서 허덕이며 살아가게 되었지요. 결국 빚의 노래인 21세기 세이렌의 유혹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이런 빚의 문제는 이 시대만의 고민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600여 년 전 부처님의 법문을 보아도 빚이란 커다란 고통이다라고 말씀을 하시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그 빚의 연쇄고리에 대해서도 지금과 거의 똑같은 실태를 예로 들면서 법문을 하고 계시니 예나 지금이나 돈과 빚은 동전의 양면과 같았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초기경전에 따르면,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세상의 보통 사람들에게 가난은 괴로움이다. 그런데 돈 한 푼 없어서 가난한 자가 빚을 지고 이자를 약속한다면, 그 이자도 세상의 범부들에게 괴로움이다. 또한 빚을 졌는데 제때에 이자를 갖지 못한다면 독촉을 당할 텐데 이 또한 범부들에게는 괴로움이다. 나아가 빚독촉을 받는데도 이자를 갚지 못하면 더욱 심하게 추궁을 당할 텐데 이 또한 범부들에게는 괴로움이다. 그런데 심하게 추궁을 당해도 갚지 못한다면 끝내 구속을 당하여 옥에 갇히거나 신체 자유에 제약을 받을 것이니 이 또한 괴로움이 아니겠는가.”(앙굿따라 니까야)

 

돈을 벌어야 살아갈 수 있는 세속 범부들에게 가난은 두렵습니다. 가난해도 기본적으로 써야 할 것은 써야 하니 빚을 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나마 꼬박꼬박 이자를 갚고 원금까지 제때 갚을 수 있다면 뭐가 문제일까요? 수많은 채무자들은 그걸 못합니다. 결국 합법적인 체벌이 가해지거나, 불법적인 폭력이 따르게 됩니다.

가난--이자-독촉-파멸

 

이 끝나지 않는 악순환에서 풀려날 수만 있어도 그 인생은 성공한 것이라 해도 좋을 지경입니다. 국가에서도 가난한 자들의 빚을 덜어주기 위해 이런저런 대책을 세우고 있지만 쉽지는 않습니다. 설령 다행스럽게도 빚을 갚았다 해도 세상은 또다시 빚을 지도록 유혹합니다. 아무래도 오딧세우스처럼 부하들에게 자신을 돛대에 묶게 하고 자신의 명을 따르지 말라는, 자발적으로 자신의 의지를 무력화시키는 특단의 조치를 내리지 않기 전에는 해결이 나지 않을 문제입니다.

 

경전에서 지혜를 구해볼까요?

 

가장 먼저, 자신의 재정 상태를 사실 그대로 파악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고집멸도 사성제 가운데 첫 번째인 고성제(苦聖蹄)괴로움이라는 성스러운 이치입니다. 하지만 괴로움이 성스러울 리 만무입니다. 고성제는 괴로움을 성스럽게 보라는 말이 아닙니다. 자신의 현재 처지가 얼마나 괴롭고 힘든 상태인지를 조금도 가식 없이 사실 그대로 파악하라는 뜻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은 스스로가 힘들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힘들고 괴롭다는 것을 인정하면 어쩐지 지는 것 같아서 그럴까요? 그래서 얼른 어떤 위안거리를 찾아내고, 그보다 더 힘들었던 때를 떠올리거나 자신보다 더 힘든 사람을 떠올리면서 아직은’, ‘그나마 나는 괜찮은데라며 자위합니다. 괴로움을 인정하는 것은 괴로움에 무릎을 꿇는 것이 아닙니다. 현 상태를 사실 그대로 파악하여야만 극복하거나 해결할 길이 보입니다. 아직은 돌려막을 신용카드가 두어 장 더 있다고 스스로 위안을 삼을 것이 아니라, 이렇게 계속 빚을 져서는 안 된다는 현실진단, 이것이 고성제를 적용한 판단입니다.

 

두 번째로는, 세상을 향해 대책 없이 활짝 열린 자신의 감각기관을 잘 단속하는 일입니다. 부처님은 사람들에게 눈, , , , , 의지의 감각기관을 지키라고 수없이 당부하십니다. 예쁜 것, 달콤한 것, 부드러운 것, 큼직한 것. 한도 끝도 없이 쏟아져 나오는 유혹거리에 무방비상태로 자신을 내던지지 말라는 것이지요. 사실 나의 주변만 둘러보아도 모든 것이 넘치고 넘칩니다. 그런데도 세상은 끝없이 신제품으로 우리를 유혹합니다. 어제는 빨간 색이 대세였는데, 오늘은 어떻게 빨간 색으로 만족할 수 있지요? 노란 색이어야 합니다.”라며 소비자들을 채근합니다. 분명 내일은 파란색이 아니면 명함도 내밀지 말라고 소비자를 겁줄 것이 틀림없겠지요. 대체 우리가 몇 가지나 지녀야 저들의 유혹도 끝이 날까요? 저들의 유혹이 끝나길 기다릴 것이 아니라 이만 하면 됐다!”라고 내쪽에서 먼저 자족의 선언을 하는 것이 더 현명하지 않을까요?

 

세 번째로는 끝없는 재물과 물질의 축적으로 내 삶의 가치를 매기는 일을 이제는 멈추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몇 평짜리 아파트에 얼마짜리 승용차로 내 인생을 평가하지 말고, 조금 다른 것으로 내 삶의 가치를 매겨보는 일입니다. 부처님은 재가신자들에게 가난하게 살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부지런히 일해서 열심히 돈을 벌어 그 돈으로 자신과 가족과 이웃이 넉넉하게 살고 또 베풀고 살기를 권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부처님이 우리에게 권한 재산은 따로 있습니다. 일곱 가지 성자의 재물이라는 것(七聖財)입니다.

 

첫째는 믿음(), 즉 종교적 생활을 하셔야합니다. 둘째는 계율(), 즉 오계를 잘 지키며 윤리적 도덕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셋째는 제부끄러움(), 즉 양심이 있어야 합니다. 넷째는 남부끄러움(), 수치심을 느낄 줄도 알아야 합니다. 다섯째는 베품(), 즉 다른 이와 작은 것도 나누는 행동입니다. 여섯째는 공부(), 나이가 들어서도 좋은 법문이나 강좌를 들으러 다니셔야 합니다. 일곱째는 지혜(), 살아오면서 쌓은 삶의 지혜에 더하여 부처님 지혜를 늘 추구해야 합니다.(증일아함경)

 

유혹에 휘말려 끝없이 빚을 지고, 그러다 나락으로 떨어지고 마는 수많은 사람들, 값싸게 잘 샀다고 득템했다고 좋아하지만 그게 결국 빚으로 이어진다는 걸 얼른 알아차려야 하겠습니다. 유혹에 휘말리지 않고 그걸 유혹이라 알아차린다면 더 이상 빚지며 살지는 않겠지요.

 

하지만 요즘 같은 세상, 빚만 안 지고 살아도 그게 어디야?”라며 자족하는 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일곱 가지 재산을 적극적으로 쌓고 모은다면, 우리는 우아하고도 당당하고 불안하지 않는 노후를 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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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령/불교방송FM 진행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