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교신문

보는 바는 모두 다 자기 마음(37)

입력 : 2018-09-14  | 수정 : 2018-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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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 http://milgyonews.net/news/detail.php?wr_id=29759
작성 : 밀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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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체 현상을 보고 듣고 생각하는 것은 사람마다 각기 다릅니다.

 

그것은 사물을 받아들이는 인식(업식)과 지각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을 데리고 넓은 들판을 걷다가 아난아 저기를 보아라. 논두렁에 불쑥 높게 보이는 것이 있지? 저 속에는 무섭고도 고약한 독사가 있다.”라고 말하셨습니다. 그러자 뒤따르던 아난도 걸음을 멈추고 세존이시여, 과연 무서운 독사가 있습니다.”라고 대답하며 서둘러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그때, 그 근처에서 논을 갈고 있던 농부 한 사람이 이 이야기를 듣고 급히 그곳으로 가보니 조금 높은 땅속에는 눈이 부시도록 빛나는 황금덩어리가 묻혀있었습니다. “아니 이건 금덩어리가 아닌가! 이것을 독사라고 무서워하다니 참 이상한 사람들이군. 이렇게 값진 황금덩어리를 가지고...”

 

<대장엄론경>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이 이야기의 끝은 가난한 농부가 금을 팔아 갑자기 큰 부자가 되자 주위 사람들의 의심을 사서 급기야 도둑 누명을 쓰고 관가에 끌려가 큰 고초와 시련을 겪으며 죽을 지경에 이르게 되자 부처님과 아난이 독사다.”라고 한 말씀을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일체 현상과 사물을 바라보는 것은 우리의 육안(肉眼)으로 합니다. 하지만 육안으로 보는 것보다 마음의 눈으로 보는 것이 많으며 특히 부처님의 가르침에는 마음으로 바라보는 것을 더 강조하고 있습니다.

 

어느 보살님 이야기입니다.

초등학교 1학년 아들이 2학년으로 올라가는 첫날, 2학년 교실로 찾아가던 도중 1학년 때 담임선생님을 만났습니다. 그 선생님은 올해 맡은 2학년 반 학생들이 공부도 못하고 시원찮은 아이들이 많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2학년 교실로 찾아가 담임선생님을 보니 조금 전 만난 바로 그 선생님이었습니다.

순간 보살님은 이번에 맡은 시원찮은 학생들 중에 자신의 아들도 포함되어 있음을 알았습니다. 물론 선생님은 이번에 맡은 반에 보살님 아들이 있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한 것이겠지요. 이후 보살님은 그 소리를 법문으로 듣고 아들이 지혜 밝고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는 사람으로 자라나는 서원을 세우고 20여 년 동안 매달 법시 불공을 해주었습니다.

 

불공은 현상적 모습에 집착하는 마음이 아니라 세상이치를 깨닫는 지혜의 눈을 갖고자 수행하는 것입니다.

 

마음은 나무와 같아서 뿌리에서 줄기와 가지가 나와 나중에는 많은 가지가 벌어지니 뿌리는 하나이며, 모든 것을 갖추고 있으나 많은 가지는 망심으로 뿌리를 덮나니 육자진언을 염송하면 망심이 사라지고 뿌리인 자성부처의 지혜가 일어나므로 넉넉해지느니라.”실행론

 

우리의 의식은 아주 섬세하여 마치 고성능 컴퓨터와 같습니다. , , , , , 뜻의 여섯 기관(六根)은 나무뿌리에 비유합니다. 뿌리가 없으면 나무는 서 있을 수도 없거니와 죽게 되듯이 사람도 육근이 있어 형태, 소리, 냄새, ,감각, 마음을 볼 수 있는 각각의 의식을 가지고 있으며 이것을 제6(六識)이라 부릅니다. 6식이 없으면 6근은 제대로 기능할 수가 없습니다. 또한 밤에 잠을 자면 육근 육식은 쉬어도 꿈을 꿀 수 있는 것은 제7식과 제8식이 있어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가 체험하는 그 어떤 것도 식()이 작용하지 않는 것은 없습니다. 이 식을 바꾸어 지혜(깨달음)를 얻는 것을 전식득지(轉識得智)라 말합니다. 불교의 근본 목적은 부처님과 같은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 것으로 달리 말하면 전식득지를 통해 지혜로워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의식 가운데 가장 심충적인 마음이라 불리는 제8식 아뢰야식은 청정하고 완전한 지혜의 대원경지(大圓鏡智)라는 지혜로 바뀌게 되고, 7식 말라식은 자아의식을 버리고 모든 것을 평등하게 보는 평등성지(平等性智)로 바뀌는 것입니다. 6식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통찰하는 묘관찰지(妙觀察智)로 바뀌며, 5식은 실제 행동하는 구체적인 행위가 모두 지혜로운 성소작지(成所作智)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식의 작용은 분수에 비유되기도 합니다. 분수가 계속 새로운 물줄기를 뿜어내는 것 같지만, 사실은 자신이 뿜어내었던 물을 다시 빨아 들여 내뿜는 것이듯 우리는 항상 지혜롭게 보고 듣고 생각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자신이 지었던 업의 종자(業識)의 작용이 분별하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진언염송을 통해 본심인 심인이 밝아졌을 때 자기의 업식에 끄달려가지 않고 지혜로운 깨달음으로 바꿀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늘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 봅니다. 어떻게 보고, 듣고, 생각할 것인가?

 

심법정 전수/유가심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