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교신문

다그치지 마세요

입력 : 2018-03-13  | 수정 : 2018-03-13

뉴스 원문 정보
원문 : http://milgyonews.net/news/detail.php?wr_id=27035
작성 : 편집부

몇 개월 전 친구네 집에서 풍로초 꽃을 처음 봤다. 손톱만 한 크기다. 앙증맞은 모습이 옹알이하는 아기 같다. 밖에는 찬바람이 쌩쌩 부는데 베란다에선 봄인 양 꽃 잔치가 한창이다. 탐이 나서 당장 나누어 달라고 졸랐더니 한 줄기를 잘라 준다. 물만 제때 주면 일 년 내내 꽃을 피운다며 자랑을 늘어놓는다. 생명력이 끈질겨 새로운 곳에서도 적응을 잘 한단다. 번식력도 대단해서 금방 새끼를 친다니 마음은 벌써 꽃길을 걷는다. 작은 화분에 심어 애지중지 모셔 왔다.

물을 흠뻑 주고 볕이 잘 드는 곳에 두었다.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식구가 많이도 늘었다. 자리가 비좁았다. 잎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연분홍 꽃이 조롱조롱 매달렸다. 분갈이할 화분이 마땅찮아 대추나무를 심었던 큰 화분으로 옮겼다. 적당한 화분이 없다는 핑계로 넓은 곳에 심어 당장 더 많은 꽃을 보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길게 늘어진 줄기는 중간중간 잘라내 빈자리에 듬성듬성 꽂았다. 화분 지름이 60센티미터가 넘는지라 심은 둥 만 둥이다. ‘빈자리를 곧 꽃으로 가득 채우겠지.’ 콧노래를 불렀다.

어느 날 살펴보니 시퍼런 잎이 너풀너풀하다. 원래 잎은 콩알만 한데 하도 커서 다른 종류를 심었나, 착각이 들 정도다. 반가움에 아침저녁으로 들여다본다. 기쁨도 잠시뿐, 여러 날이 지나도 남아도는 터에 제 몸만 살찌운다. 더 이상 새끼를 치지도 않고 꽃도 피우지 않는다. 참 염치없는 놈이다. 넓은 자리를 차지했으면 자리 값을 해야지 이게 뭔가. 사람이나 식물이나 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더니. 얄미워 뽑아버릴까 하다가 그냥 둔다. 매몰차게 굴기엔 지금껏 쏟은 사랑이 아깝다. 자리 값을 하든 말든 네 맘이다 싶어 던져놓고 오다가다 맞닥뜨리면 에멜무지로 물을 준다. 여태까지도 저하는 대로 보고 있지 않았는가. 인제 와서 무슨 간섭을 더 하랴. 녀석에게 엎어져 있던 마음을 거둔다.

날씨가 쌀쌀해져 화분을 집안으로 들이려다 보니 그 녀석이 또 눈에 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눈을 의심하며 다시 크게 뜬다. 줄기마다 뿌리 내려 큰 잎에 걸맞은 꽃등이 줄줄이 매달려 있다. 하는 일 없이 호의호식하며 빈둥거린다고 타박했는데 인제 보니 그게 아니었다. 몽그작댄 이유가 있었다.

겨우 자리 잡고 한숨 돌리는데 또 넓은 곳으로 이사를 했으니 제 딴에는 힘들었던 모양이다. 아무리 적응력이 뛰어나도 바뀐 환경이 낯설었겠지. 옹기종기 붙어 있다가 넓은 공간으로 오니 어디서부터 어떻게 자리를 잡아야 할지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으리라. 그 와중에 주인의 마음이 돌변해 살가운 손길도 느낄 수 없었으니 서럽고 외로웠겠지.

녀석의 이런 마음도 모르고 가벼운 잣대로 성급하게 입방정을 떨었구나. 간섭하지 않고 맡겨 놓으면 해결되는 것을. 내 생각에 갇혀 나만 옳다고 나대는 꼴이 얼마나 우스웠을까. 보란 듯이 당당한 모습에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작은 풀꽃 하나도 지켜봐 주지 못하고 잔소리를 해댔으니 딱한 노릇이다.

“자신의 관점으로 보는 것, 자신을 옳다고 하는 것, 자신을 드러내는 것 그리고 자신을 내세우는 것은 모두 설거지통에 버려질 음식 찌꺼기이거나 몸에 난 종기 혹은 할 필요가 없는 군더더기 행위와 같은 것들이다. 왜냐하면 자연의 원칙과 너무나 거리가 먼 행위 방식들이기 때문이다.”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말이다.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다.
‘다그치지 말고 기다려 주세요. 당신이 나를 얼마나 알고 있나요? 잘 알지도 못하면서 왜 함부로 자신만이 옳다고 생각하세요? 낯선 곳에 와서 낯가림도 하지 않고 늠름하게 잘 살아 남았는데 또다시 엉뚱한 곳으로 옮기니 놀랄 수밖에요. 당신의 그 욕심에 화도 났고요. 이곳저곳 살림을 옮겨 다니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요. 그것도 시도 때도 없이 말이에요. 그런데도 잘살아 보겠다고 노력했는데 그 정도는 참고 지켜봐 주셔야지요. 우물에서 숭늉을 찾아서야 될 일인가요. 저 나름대로의 방식이 있다고요. 자기 일 아니라고 쉽게 생각하는 당신이 야속해요.’
꽃의 아우성이 들리는 같아 어디라도 숨고 싶다.

백승분/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