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교신문

나만의 ‘자기 성찰적 공간’이 그립다

입력 : 2018-03-13  | 수정 : 2018-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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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 http://milgyonews.net/news/detail.php?wr_id=27034
작성 : 편집부

얼마 전 EBS 교육방송에서 ‘나무’라는 프로를 우연히 보게 됐다. 시각장애인 피아니스트 김예지와 나무 인문학자 고규홍이 함께 만나 나무에 대한 느낌과 감성을 체험을 통해 기록한다. 피아니스트 김예지는 비록 보지는 못하지만, 인간의 가장 원초적 감각인 촉감과 소리, 향기를 통해 인류 시원인 오래된 미래로 돌아가 온몸으로 체험하고 관찰한다. “나무를 만져보고 안아 보면 어디가 아픈지 얼마나 아픈지 알 수 있다.”는 그녀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나는 TV를 보는 내내 뜬금없이 소비주의와 속도 지상주의가 낳은 LTE 급 빠름의 일상에 지쳐있는 우리를 그녀가 위안이라도 하는 듯 느껴졌다. 그러면서 불현듯 간디의 정신적 스승이기도 했던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2010년 열반한 법정 스님의 유품에서 발견된 유일한 책도 데이비드 소로우가 쓴 자연주의 문명비판서인 <월든> 한 권뿐이었다. 소로우는 <월든>에서 인간은 ‘자연의 일부’라는 아주 단순한 인식에서부터 출발한다. “풀에게 좋으면 우리에게도 좋은 것”이란 소로의 인식은 곧 인간과 자연을 구성하는 존재들 사이의 상호 의존성과 존중성은 다시 공생공존의 관계로까지 확장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가 제시한 ‘간소한 삶’이란 불필요한 욕망의 억제와 인간의 자기절제의 삶은 온전히 법정 스님의 ‘무소유’ 정신과 닮아 있다. 소로우는 1845년부터 1847년까지 2년 2개월 동안 월든 호숫가에서 100m 떨어진 곳에 오두막을 짓고 생태주의적 삶을 체험하고 관찰한다. 그러면서 온갖 동식물의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소박하고 검소한 삶으로 집필에 몰두하며 홀로 살았다. 

초광속의 속도로 변해 가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속도 지상주의로 여기저기서 몸살을 앓고 있을 것이다. 이 분주한 세상에 절제된 단순함과 소박한 삶을 위해 잠시 욕심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삶에도 과감한 다이어트가 필요하다. 그래서 정신을 위한 특별한 안식처인 나만의 자기 성찰이 머무는 공간이 가장 절실할 때일수도 있다. 가만히 눈을 감고 자신을 진정으로 성찰할 수 있는 자기만의 조용히 쉬며 명상할 수 있는 작은 방, 소로우식으로 말하자면 이른바 작은 오두막이다. 집 안에서 자기만의 영역을 정하고 영혼이 쉬어갈 수 있는 작은 오두막을 각자 스스로 만들어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몇 해 전 나는 나만의 은밀한 장소를 만들어 가끔 그곳에 들어가 한참을 쉬고 온다. 그 쉼터에서 모든 시름을 다 내려놓고 노래도 흥얼거려보고 혼잣말을 하기도 하며 하루해를 보낸 적이 있다. 그러고 난 그다음날은 확연히 달랐다. 몸과 마음이 그렇게 가볍고 홀가분할 수가 없었다. 거창하게 꾸미고 화려하게 클 필요도 없지만, 더더군다나 TV와 휴대용 컴퓨터와 스마트폰은 절대 사절이고 소로우가 <월든>서 제시했던 것처럼 고독과 우정과 세상을 위해 3개의 의자를 놓았던 것처럼 나는 일회용 다기와 몇 권의 시집과 앉은뱅이책상과 방석만 있으면 족했다. 때로는 조용히 눈을 감고 염송삼매에 들어가기도 하고, 실행론과 시집을 읽기도 하면서 나만의 정신적 안식처에서 일탈을 벗어나 심연의 평화로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나는 부처님과 인연을 맺고 교화를 시작하면서부터 부처님과 종조님 은혜를 어떻게 갚을 것인가를 늘 고민해 왔다. 그래서 교화 초기부터 나와 다짐한 3가지 약속이 있었다. 첫째 기도하는 심인당, 둘째 봉사하는 심인당, 셋째 독서하는 심인당이 되기를 늘 꿈꿔왔다. 세상과 동떨어진 무인도에서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소통하며 혼자만의 아침을 맞이할 수 있어야 한다고 나는 늘 생각했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집 밖이 아니라, 집 ‘안’에서 모든 정신적, 물질적 활동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 각자 취향에 따라 구역을 정하는 것도 중요하다. 예를 들면 하루 중 특정한 때나 일주일 중 특별한 날에 시끄럽게 굴어도 좋은 방, 혼자 조용히 쉴 수 있는 방, 조용한 방 등의 구역을 정해 놓고 일주일 중 특정한 날에 윌리엄 파워스의 저서 <속도에서 깊이로>서 제안했던 ‘월든 존(디지털 문명으로부터 벗어난 구역)’의 의미를 실천해 보는 것이다. 어찌 됐건 중요한 것은 오롯이 공간 전체를 ‘자기성찰의 공간’으로 만든다는 사실에 주목하면 된다. 그리하여 세상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안에서 머무르면서 얼마든지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이 ‘영혼의 쉼터’로써 충분히 거듭날 수 있고 언제든지 사찰이 아니어도 템플스테이를 경험하며 우리는 날마다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

수진주 전수/정정심인당